주간동아 1117

2017.12.13

황승경의 on the stage

“아리랑은 일본 열도에 울려 퍼진 유행가였다”

토크쇼 ‘아리랑과 인문학의 만남’

  • 입력2017-12-12 10: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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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성 국악평론가와 한윤정 신민요연구회 회장, 한대식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 이수자(왼쪽부터)가 대중가수와 신민요 소리꾼들을 소개하고 있다.[사진제공·경서도소리포럼]

    김문성 국악평론가와 한윤정 신민요연구회 회장, 한대식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 이수자(왼쪽부터)가 대중가수와 신민요 소리꾼들을 소개하고 있다.[사진제공·경서도소리포럼]

    11월 2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시어터에서 열린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erican Music Awards · AMAs)의 히어로는 방탄소년단(BTS)이었다. 그들이 축하공연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객석은 열기와 함성으로 들끓었다. 외국인들이 ‘떼창’으로 부르는 한국어 노래 가사는 세계에 실시간으로 울려 퍼졌다. 케이팝(K-pop) 역사에 한 페이지가 채워졌다. 

    방탄소년단 전에도 많은 예술인이 우리 예술을 세계에 알리는 노력을 해왔다. 국악평론가 김문성은 토크쇼 ‘아리랑과 인문학의 만남’에서 아리랑이 그 ‘씨앗’이라고 말한다. 연출과 진행을 맡은 김문성은 이 토크쇼에서 나운규의 아리랑을 소개한다. 

    1926년 서울 단성사에 올려 공전의 히트를 친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의 인기는 몇 해가 지나도 식을 기미가 없었다. 30년 빅타레코드가 발매한 김연실의 영화 주제가 앨범 ‘영화소패 아르렁(아리랑)’은 일본 열도에 ‘조선민요’로 알려져 큰 인기를 얻었다. ‘소패(小唄)’는 노래란 뜻의 일본어. 이에 고무된 빅타레코드는 31년 ‘황금가면’이라는 예명으로 가면을 쓴 채 활동하던 일본 도쿄대 음대 출신인 여가수 고바야시 지요코(小林千代子·1910~76)를 앞세워 ‘아리랑’을 일본어로 번안, 발매했다. 

    관객이 아리랑 이야기에 몰입할 즈음 초창기 아리랑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어 홍순옥, 이춘자 명창이 재현하는 옛 ‘아리랑타령’에 객석은 광복 이전으로 되돌아간다. 

    1945년까지 일본에서만 총 40여 종의 아리랑 음반이 발매될 정도로 아리랑은 일본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았다. 비록 가사는 번안했지만 민족의 애달픈 한(恨)은 고스란히 담겼고, 일본인의 가슴에 녹아내렸다. 우리에게는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절박한 절규의 메아리였지만, 일본에서는 인기 유행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 대목에 등장하는 차수연 명창의 ‘진도아리랑’은 더욱더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김문성은 아리랑을 예술적 테두리가 아닌 문화콘텐츠로 접근했다. 그의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아리랑’을 통해 우리는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꿈꾸는 아리랑을 듣는다. 

    우리의 아리랑은 스포츠 경기장에서는 국민을 하나로 만들고, 영화에서는 애잔하게 심금을 울리며, 통일을 논할 때는 끊임없이 우리 사회와 소통한다. 

    아리랑은 단순히 전통 민요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우리 역사이자 문화, 사회현상이라고 최영숙 명창은 강조한다. 공연의 백미는 토크쇼 출연자 전원이 나와 부르는 엔딩이다. 관객과 한마음이 돼 울려 퍼지는 ‘아리랑목동’과 ‘밀양아리랑’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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