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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어른들의 별별 놀이터

참을 수 없는 파괴의 즐거움

물건 부수며 스트레스 푸는 홍대 앞 ‘서울레이지룸’

참을 수 없는 파괴의 즐거움

야구 방망이로 사람 모양의 샌드백을 치는 모습(위), 과녁으로 물건을 던져 깨거나 방망이로 쳐서 깬다.(아래)[지호영 기자]

야구 방망이로 사람 모양의 샌드백을 치는 모습(위), 과녁으로 물건을 던져 깨거나 방망이로 쳐서 깬다.(아래)[지호영 기자]

‘눈앞에 있는 물건을 죄다 집어던져버리고 싶다.’ 

누구나 한 번쯤 극도로 화가 나거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반복될 때 해볼 법한 상상이다. 하지만 실행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다. 물건의 가격, 물건을 부쉈을 때 주변 사람의 시선 등이 어른거려 그저 마음을 다스리는 것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음껏 물건을 부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울레이지룸(Seoul Rage Room)’은 일정한 비용을 내고 방음 처리된 방에 들어가 접시나 가전제품을 부수는 곳이다. 3월 영업을 시작해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자유롭게 물건을 부술 수 있다는 독특한 서비스 덕에 입소문을 타 최근에는 ‘홍대 스트레스 해소방’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11월 20일 서울레이지룸을 찾았다. 입구에서 들여다보니 매장 분위기는 파괴나 분노와는 거리가 있었다. 벽면은 깔끔한 흰색이고, 차분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카운터 주변은 아기자기한 봉제인형들로 장식돼 있었다. 각 방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예상과는 상반된 분위기에 처음에는 가게를 잘못 찾아왔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서울 마포구 서울레이지룸의 깔끔한 가게 초입(왼쪽)과 코스별 가격 안내표.

서울 마포구 서울레이지룸의 깔끔한 가게 초입(왼쪽)과 코스별 가격 안내표.

조용한 입구를 지나면 분노 표출 공간

복합기를 부수는 모습. 원하는 가전제품이 있다면 
선택 가능하며 1만 원 추가 비용을 내면 직접 가져온 제품을 부술 수도 있다.[지호영 기자]

복합기를 부수는 모습. 원하는 가전제품이 있다면 선택 가능하며 1만 원 추가 비용을 내면 직접 가져온 제품을 부술 수도 있다.[지호영 기자]

 그때 한 방에서 방음벽을 뚫고 괴성이 들렸다. 누군가가 지르는 고함과 함께 그릇이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서울레이지룸 관계자는 “물건을 부순다는 점 때문에 폭력을 조장한다는 오해를 살 것 같아 대기실은 파괴와는 거리가 먼 분위기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곳 서비스는 2만 원에서부터 18만 원까지 5가지 코스로 나뉜다. 각 코스마다 부술 수 있는 물건의 개수와 시간, 가격이 다르다. 서울레이지룸 측에 따르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4만 원인 ‘빡침(Demolition)’. 1, 2인이 15분간 즐길 수 있는데, 그릇 20개와 가전제품 1대가 제공된다. 코스 가격은 방과 물건을 쓰는 것에 대한 비용이다. 그렇기에 방에 1명이 들어가든 2명이 들어가든 가격은 같다. 가장 인기 높다는 ‘빡침’ 코스를 체험하기로 했다. 

공격적으로 물건을 부수기 전 각종 주의사항을 듣는다. 부주의하게 물건을 부수다 보면 파편에 다치거나 본인이 휘두른 방망이에 함께 들어간 사람이 다칠 수 있기 때문. 부주의로 인한 부상 등의 책임을 가게 측에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한다. 그러고 나서 안전장비를 착용한다. 날카로운 파편에 다치지 않도록 상하의 안전복을 입고 안전모도 썼다. 안전모에는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실드가 달려 있었다. 매장 한켠에는 귀마개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귀마개를 사용하지 않았다. 김현우 서울레이지룸 대표는 “초기에는 물건이 깨지는 소리에 손님이 놀랄까 싶어 귀마개를 구비해뒀다. 하지만 최근에는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며 사용하지 않는 손님이 더 많다”고 말했다. 

안전장비를 갖추고 방에 들어가자 빠른 박자의 음악소리가 크게 들렸다. 방 안 분위기는 살풍경했다. 바닥에는 부서진 물건들의 잔해가 보였다. 부러진 기타 목은 물론, 가전제품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플라스틱 조각들도 쌓여 있었다. 그 주변에는 깨진 사기그릇 조각들이 가득했다. 입구 앞 선반에 쇠망치와 함께 그릇 20개가 차곡차곡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여기저기 실금이 간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가 세워져 있었는데, 실금 사이사이에 유리나 사기 조각으로 추정되는 가루가 끼어 반짝 빛났다. 방 한켠에는 사람 모양의 샌드백이 있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목이 반쯤 부러져 뒤로 넘어간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그릇을 위로 던져 방망이로 쳐 깨뜨리려 했다. 타이밍 맞추는 게 의외로 쉽지 않아 두 번 연속 헛방망이질을 했다. 세 번째 만에 그릇을 맞혔다. 그릇이 깨지는 큰 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튀는 조각들을 보니 갑자기 후련함이 느껴졌다. 처음이 어렵지, 일단 감이 생기면 재미가 붙는 것은 금방이었다. 어느새 기자도 괴성을 지르며 그릇을 벽에 던지거나 방망이로 깨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10분도 지나지 않아 준비된 그릇이 모두 조각나 바닥에 흩어졌다.


정신 차려보니 남아 있는 그릇이 없더라

방 안에는 부서진 물건의 잔해가 가득하다(왼쪽). 사람 모양의 샌드백은 얼마나 맞았는지 목이 반쯤 넘어가 있었다.[지호영 기자]

방 안에는 부서진 물건의 잔해가 가득하다(왼쪽). 사람 모양의 샌드백은 얼마나 맞았는지 목이 반쯤 넘어가 있었다.[지호영 기자]

그릇이 끝났으니 이제 가전제품으로 눈을 돌릴 때. 이날의 가전제품은 프린터·스캐너 복합기였다. 기기를 쇠망치로 내리치자 플라스틱 덮개가 조각나며 튀어 올랐다. 그다음 망치질에 희생된 부분은 프린터 내부. 스캐너 기능을 하던 유리판과 내부 부품이 산산조각이 났다. 가전제품을 부술 때는 그릇을 깰 때와는 달리 부위별로 소리와 손맛에 차이가 있었다. 망치로 후려치거나 들고 바닥에 던지다 보니 이미 기기는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금세 10분이 지나갔다. 남은 시간 동안 야구 방망이로 벽에 걸린 타이어를 때리거나 샌드백을 두들겼다. 부수지 않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여러 걱정거리를 잊을 수 있었다. 물건을 깰 때보다는 못하지만 확실히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있었다. 15분 동안 쉬지 않고 물건을 부수고 방망이를 휘두르다 보니 몸이 땀범벅이었다.

대기실에서 만난 대학생 김유명(23) 씨와 이민하(21·여) 씨도 “물건을 부순다는 것이 처음에는 약간 무섭게 느껴졌지만 막상 해보니 묘한 즐거움이 있다. 다른 데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새로운 공간을 만들게 된 계기를 김 대표에게 물었다. 그는 “과거 공기업에 다닐 때 물건을 부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을 창업으로 발전시켰다. 당초에는 직장인만을 대상으로 영업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지금보다 가격이 비쌌고 파괴 수위도 높았다. 하지만 폭력성 논란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는 생각에 대학생도 이용 가능할 정도로 가격과 수위를 낮췄다”고 밝혔다. 

어떤 손님이 주로 오느냐는 질문에 그는 “초기에는 대학생 커플의 이색 데이트 코스로 주목받았다. 요즘은 회사원이 점점 늘고 있고, 혼자 와서 즐기고 가는 사람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물건을 부수고 나온 뒤 가장 궁금한 점은 그릇 공급처였다. 가전제품은 중고제품 티가 났지만 그릇은 새것처럼 새하얗고 깨끗했기 때문. 김 대표는 “부술 물건을 어디서 구해오는지는 영업비밀이다. 확실한 것은 전부 구매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입력 2017-11-28 16:26:23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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