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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은 왜 대표팀에서만 작아지나

움직일 공간 좁고 팀 동료의 지원 못 받아

손흥민은 왜 대표팀에서만 작아지나

2017~2018시즌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리버풀FC와 경기에서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골을 넣고 기뻐하며 팀 동료인 해리 케인에게 안기고 있다.[동아일보]

2017~2018시즌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리버풀FC와 경기에서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골을 넣고 기뻐하며 팀 동료인 해리 케인에게 안기고 있다.[동아일보]

토트넘 홋스퍼 골키퍼 위고 요리스가 재빨리 공을 던졌다. 역습은 상대가 전열을 채 갖추지 못했을 때 효과가 더 큰 법. 공이 측면 공간으로 흘렀다. 토트넘 공격수 셋, 상대인 리버풀FC 수비수도 셋이다. 시선은 자연스레 중앙으로 향했다. 득점이 나오려면 중앙으로 공을 패스해야 한다. 측면에서 공을 잡은 해리 케인이 계산을 마쳤다. 패스 방향과 세기, 그리고 쇄도하는 동료의 속도까지. 그사이 손흥민이 중원을 내달렸다. 가속을 붙여 수비를 따돌렸고 슈팅 지점을 잡았다. 이어 나온 왼발 마무리가 그물을 출렁였다. 10월 23일 영국 런던 웸블리스타디움에 운집한 8만 관중이 벌떡 일어섰다. 현지 해설자는 이렇게 외쳤다. “완전히 날아 들어갔죠!” 

손흥민은 사흘 뒤 또 날았다. 10월 26일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진출 뒤 100번째 경기였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을 2도움으로 장식했다. 해결사가 아닌 조력자로 팀 내 최고 평점을 기록했다. 손흥민은 2015년 여름 잉글랜드 무대를 밟은 이래 경기당 61.7분을 뛰었다. 풀타임 소화 횟수는 얼마 안 되지만 31골 17도움을 올렸다. 11월 5일 크리스털 팰리스 전에서는 결승골을 기록, EPL 통산 20골 고지를 밟으며 역대 EPL 아시아 선수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최근 아시아 출신으로 이만큼 강렬한 공격수가 있었을까 싶다. 손흥민은 만 스물다섯 살에 불과하니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박지성은 손흥민을 가리켜 “부상만 잘 피해가면 나보다 더 높이 올라갈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손흥민은 상대가 달려들 때 오히려 쉽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 리버풀전에서 터진 골의 수준은 굉장했다. 폭발력 있게 뛰쳐나가 차분한 슈팅 임팩트로 마침표까지 찍을 줄 아는 공격수는 유럽 무대에도 결코 흔치 않다. 하지만 정작 손흥민을 보유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암울하다. 당연한 줄 알았던 월드컵 본선행을 간신히 확정했다. 러시아, 모로코와 평가전에서는 2연패를 당했다. 손흥민도 못했다. 모로코를 상대로 넣은 페널티킥 골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370일 만에 뽑아낸 득점이었다. 이는 축구전문가 무리에게도 미스터리한 일이다. 전·현직 선수, 지도자, 해설위원 모두 의아해한다. 왜 손흥민은 대표팀에만 오면 작아지는지. 

핵심은 토트넘과 대표팀이 어떻게 다르냐다. 측면 및 전방에서 골을 노리는 역할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각 팀이 처한 상황을 여러 관점에서 뜯어볼 수 있다. 

먼저 ‘공간’ 문제. 공격수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어떤 선수는 골문 앞에서 기가 막히게 자리를 잡는다. 상대가 곤혹스러워할 위치를 선점하고 군더더기 없는 슈팅으로 골문을 열어젖힌다. 또 어떤 선수는 연계에 능하다. 직접 득점뿐 아니라 활발한 움직임으로 상대팀 시선을 유도한다. 있는 힘껏 싸우며 동료 공격수를 편하게 하는 이타적 플레이를 펼친다. 손흥민은 기본적으로 공간이 따라야 하는 타입이다.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인 뒤 왼발, 오른발 가리지 않고 슈팅 타이밍을 잡는다. 그만큼 성큼성큼 뛰어나갈 면적이 존재해야 비로소 시원한 맛을 낸다. 

이 경우 약팀보다 강팀과 맞붙을 때 더 편하다. 스스로 ‘할 만하다’고 여기는 상대는 정상적으로 공격한다. 뒤에서 웅크리기보다 앞쪽에 무게중심을 둔다. 공방을 거듭하는 역동적 양상은 균열을 낳기 마련이다. 돌격하는 상대를 제어하느라 수비 부담은 늘어날지 몰라도, 역습 등으로 받아칠 틈이 생긴다. 손흥민이 유럽 무대에서 뽑아낸 득점 대다수가 이에 기인한다. 약팀일지라도 대부분 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서로 전진하며 맞불을 놓으니 공간이 났다. 반대로 페널티박스 주위를 사수하는 식이라면 손흥민도 힘쓰기 어렵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등 손흥민이 지금까지 만난 상대는 객관적 전력상 한국보다 몇 수 아래였다. 그렇다고 이 팀들이 과거처럼 허술하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개인 기량의 향상으로 제법 버틴다. 이들이 추구하는 색깔은 분명하다. 선수 사이 간격을 좁혀 골문 앞 공간을 죽인다. 실점을 최소화하고 역습 한 방을 기대한다. 

다음은 ‘팀 동료 도움’.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라는 진리와 맞닿는다. 가령 야구는 타석에 들어선 이가 홈런을 때려 점수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축구는 홀로 상대 수비벽을 다 부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10년에 몇 명 날까 말까 한 천재라면 모를까. 공격수도 결국 팀에서 유기적인 도움을 받아야 한다. 특히 두세 명으로 꾸린 공격 조합이 부분 전술로 낼 시너지 효과가 중요하다. 솔로 플레이의 성공 확률이 높지 않기에 너도나도 공격하며 교란하는 게 포인트다.


손흥민도 함께할 때 마침내 빛이 난다

한국 축구대표팀에서 뛰는 손흥민.[동아일보]

한국 축구대표팀에서 뛰는 손흥민.[동아일보]

세세히 짚어보자. 대표팀 소속 손흥민이 좁은 공간에서 허덕일 때 누가 얼마나 거들어줬나. 손흥민과 함께 공격진을 짠 공격수와 그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이 측면 수비수다. 현대 축구에서 측면 수비수는 수비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측면 공격수와 거리를 좁히며 다양한 패턴으로 상대 수비 조직을 와해할 수 있어야 한다. 

FC바르셀로나 리오넬 메시에게는 옛 동료 다니 아우베스(파리 생제르맹)가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화력은 마르셀루가 수년째 지원해오고 있다. 두 팀 모두 이러한 측면 조합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등 세계무대를 집어삼켰다. 빼어난 측면 수비수 없이 훌륭한 측면 공격수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대표팀은 이 부문에서 수년간 헤맸다. 이영표가 은퇴한 후 좀처럼 찾지 못한 대안. 현재로선 박주호(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윤석영(가시와 레이솔), 김진수(전북현대모터스) 모두 실패다. 이천수 JTBC 축구 해설위원이 지적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만큼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손흥민 개인’도 꼬집어볼 만하다. 좁은 공간, 미비한 공격 전술에 손흥민 스스로도 답답함을 느끼는 모습이다.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가상하나, 자칫 매몰되기 십상. 동료를 활용할 시점에도 고개 푹 숙인 채 자기 플레이를 고집할 때가 있다. 한두 번 안 뚫리니 급해진다. 시야도 좁아지고, 소통은 단절돼간다. 경기 후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온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축구는 템포 싸움이다. 패스도, 슈팅도 제 타이밍을 포착하는 게 생명이다. 집중 견제에 시달리는 에이스일수록 놓치기 쉬운 대목. 공을 오래 끌며 분투하기보다 빨리 처리해 동료를 살리는 것도 방법이다. 내가 묶인다는 건 곧 우리 팀 일원 누군가는 자유롭다는 얘기다. 

러시아월드컵까지 남은 시간은 7개월 남짓이다. 대표팀의 공격은 답답하고, 미드필더는 부실하며, 수비진은 취약하다.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 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이럴 때일수록 에이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내뿜는 파괴력의 어느 정도만 재현해내도 대표팀 전체가 받는 탄력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11월 A매치 2연전. 손흥민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콜롬비아전(2-1 승), 세르비아전(1-1 무) 모두 인상적이었다. 강팀을 상대로 충분한 공간을 누렸고, 동료의 경기력 역시 올라왔다. 본인까지 덩달아 신이 나 더할 나위 없는 시너지 효과를 냈다. 신태용호는 5경기 만에 첫 승을 거뒀다. 내년 본선 무대를 향한 희망도 밝혔다.




입력 2017-11-14 13:39:15

  • 홍의택 축구칼럼니스트 releaseh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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