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2

2017.11.08

IT

‘스타크래프트’ AI 인간 이길 날 머지않았다

현재는 인간이 초반 전략으로 완승…AI 심화학습하면 곧 추월 예상

  • 입력2017-11-07 14: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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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AI)과 대결을 펼친 프로게이머 송병구 선수.(오른쪽)[shutterstock,뉴스1,]

    인공지능(AI)과 대결을 펼친 프로게이머 송병구 선수.(오른쪽)[shutterstock,뉴스1,]

    인공지능(AI)이 새로운 점령지를 찾고 있다. 바둑을 넘어 이번에는 유명 개인용 컴퓨터(PC) 게임인 ‘스타크래프트’ 정복에 나선 것. 스타크래프트는 미국 블리자드에서 1998년 출시한 PC용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저그, 테란, 프로토스 3개 종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뒤 상대방 진영을 격퇴하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출시한 지 20년이 다 돼가는 고전게임이지만 여전히 국내 PC방 점유율 순위 7~8위권을 유지할 정도로 인기 있다. 

    10월 31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학생회관에서는 ‘인간 vs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으로 인간과 AI의 스타크래프트 대결이 펼쳐졌다. 이날 대결에서는 ‘AI 스타크래프트’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2개 팀(ZZZK봇, TSCMOO)과 세종대가 개발한 MJ봇이 AI를 대표해 나섰다. 인간 측에서는 프로게이머 송병구 선수가 대표로 나와 맞붙었다. 결과는 인간의 완승이었다. 송 선수는 AI들을 각각 5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차례차례 격파했다. 아직 스타크래프트에서는 AI가 인간에 미치지 못하는 것. 

    하지만 AI 측에도 성과는 있었다. 이 대결에 나선 AI들은 세밀한 유닛 컨트롤이나 분당 대응속도(Action Per Minute·APM) 등 특정 부분에서는 인간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일부 전략적 부분만 보완한다면 최정상급 프로게이머를 이길 가능성도 엿보였다.

    ‘스타크래프트’ AI, 매년 진화한다

    지난해 3월 프로바둑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의 대국이 있은 뒤 제프 딘 구글 수석연구원은 “게임을 테스트베드(실험장) 삼아 AI를 강화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에 AI를 적용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이윤열 선수 등 유명 프로게이머들도 “AI와 승부하고 싶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하지만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가 “AI와 인간의 스타크래프트 대결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일축해 대결이 무산됐다. 

    대결은 불발됐지만 구글 측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전부터 게임과 관련된 AI 실험을 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6월 16일 ‘휴먼테크놀로지 어워드 2016’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정재승 KAIST(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뇌공학과 교수는 “이미 게임하는 AI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행됐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고전게임 ‘벽돌깨기’를 예로 들었다. 



    벽돌깨기는 떨어지는 공을 튕겨내 화면 상단부 벽돌들을 깨는 게임이다. 정 교수는 “AI에게 벽돌깨기 게임을 연습시켰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을 압도하는 플레이를 했다. AI는 며칠 만에 ‘오락실 죽돌이’ 수준의 플레이를 보여줬다. 한 달가량 지나자 공의 각도를 치밀하게 계산해 벽돌을 없애는 등 인간이 할 수 없는 경이적인 게임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자체 학습을 하는 데다 단기간에 많은 경험을 축적하는 AI의 특성상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게임에서 인간을 압도할 개연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스타크래프트 분야에서도 다양한 AI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AI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그중 하나다. 2010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AIIDE(Artificial Intelligence and Interactive Digital Entertainment)의 스타크래프트 부문에서 다양한 AI가 경합을 벌인다. 2012년과 2013년에는 호주 ‘스카이넷’이 우승했고, 2014년에는 일본 ‘아이스봇’, 2015년에는 노르웨이 ‘TSCMOO’가 정상에 올랐다. 올해 대회에서는 호주 ‘ZZZK봇’이 1위를, 2015년 우승자인 ‘TSCMOO’가 2위를 차지했다.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가 주관하는 ‘CIG 스타크래프트 대회’도 있다. 이 대회는 AI들이 서로 수천 번씩 대결한 뒤 최종 승률에 따라 순위가 정해지는 방식이다. 이 대회에서 ‘ZZZK봇’은 2374게임 중 1790승584패, 승률 75.40%로 1위를 기록했으며 ‘TSCMOO’는 2375게임 중 1750승625패, 승률 73.68%로 2위에 올랐다.

    AI, 중급자엔 압승-프로게이머엔 완패

    10월 31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학생회관에서 펼쳐진 ‘인간 vs 인공지능’의 스타크래프트 대결.[뉴스1]

    10월 31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학생회관에서 펼쳐진 ‘인간 vs 인공지능’의 스타크래프트 대결.[뉴스1]

    스타크래프트 AI는 매년 성능이 향상돼 최근에는 인간의 플레이를 유사하게 흉내 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과거 AI에는 확실한 약점이 있었다. 스타크래프트는 제한된 시야를 극복하며 정보를 획득한 뒤 이를 바탕으로 아군 진영을 발전시키고 상대를 공격하는 게임이다. 따라서 승리를 거두려면 상대 진영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그에 따라 적절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과거 AI는 상대 진영의 위치를 파악하지 않은 채 자기 진영을 개발하는 데만 집중했던 것. 그나마도 AI가 일부 맵에만 한정돼 작동되는 등 인간과 대결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AI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게임 초반 빠른 정찰로 상대 위치를 파악하고, 상대 전략을 예측해 맞춤형 대응에 나섰다. 예를 들어 상대 진영에서 공중 병력이 만들어지는 것을 파악하면 그에 대비해 대공 요격 건물을 설치하고, 지상 병력이 모이면 공중 병력을 집결시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AI는 상대 전략에 대응하는 것 외에도 상대방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상대의 자원 채취를 막으려고 공중 병력 한 기를 보내 전 지역을 실시간으로 계속 확인한 것. 병력 조종에서도 AI는 이미 인간을 압도하는 실력을 선보였다. 이날 대회에서 AI들의 APM은 2만 번까지 치솟았다. 1분에 2만 번의 명령을 내리고 있다는 것. 세계 최정상급 프로게이머의 APM이 평균 300 정도니 AI가 프로게이머보다 70배가량 빠른 반응 속도를 갖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인간에 필적하는 전략과 빠른 반응 속도를 갖춘 AI의 경우 게임 실력이 중간인 인간을 손쉽게 제압했다. 이날 대회에서 AI들은 일반 게이머들을 상대로 6 대 1 승리를 거뒀다. 하수(下手)격에 속하는 래더점수 1100점의 이승현 선수는 3경기 중 1승을 거뒀고, 중수(中手)로 볼 수 있는 래더점수 1500점의 최철순 선수는 3경기 전패했다.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전략과 압도적인 병력 조종 실력을 갖춘 AI를 상대로 송병구 선수가 손쉽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전략의 차이 때문이다. 다수의 병력이 나오는 후반부에는 승기를 잡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초반 단기 결전으로 승부를 본 것이다. 게임 초반 상대 진영을 정찰하는 시스템을 아직 갖추지 못한 AI는 속수무책으로 대패했다. 

    MJ봇을 개발한 김경중 세종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경기 시작 전 “스타크래프트 대결에 사용된 AI는 알파고와 달리 자체 학습능력을 갖추지 못한 비교적 낮은 단계의 AI”라고 소개하면서 프로게이머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알파고처럼 학습능력을 갖춘 AI가 스타크래프트에 사용된다면 인간이 승리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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