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2

2017.11.08

사회

서울 이색시장 덜 지원해야 잘된다?

103억 들인 ‘서울풍물시장’은 한산 …인근 완구, 벼룩시장은 북적

  • 입력2017-11-07 11: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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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 문구  ·완구거리에 설치된 조형물.[박세준 기자]

    서울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 문구  ·완구거리에 설치된 조형물.[박세준 기자]

    서울 흥인지문(동대문) 인근엔 특색 있는 전문시장이 밀집해 있다. 의류도매시장인 평화시장을 넘어서면 창신동 동대문 문구·완구거리(완구시장)를 시작으로 숭인동 동묘 벼룩시장, 신설동 서울풍물시장(풍물시장)이 차례로 이어진다. 이름만큼이나 세 시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주중에도 손님이 대거 몰리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마치 박물관처럼 조용한 곳도 있다.

    이제는 외국인도 찾는 완구  ·문구거리

    서울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 문구  ·완구거리.[박세준 기자]

    서울 종로구 창신동 동대문 문구  ·완구거리.[박세준 기자]

    10월 24일 오후 흥인지문 근처 시장 거리를 찾았다. 완구시장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흥인지문 건너 평화시장 손님들이 주로 찾는 식당가가 바로 옆에 붙어 있기 때문. 골목을 살피면서 앞으로 가다 보니 거리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긴 연필 몸체에 루빅스큐브(3×3 형태의 정육면체 퍼즐)가 꼭대기에 올라타 있는 조형물이었다. 연필에는 ‘동대문 문구 완구 거리’라는 글귀가 양각돼 있었다. 

    조형물이 설치된 방향으로 가도 완구시장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바닥에 깔린 도로 위 버스 ‘타요’ 타일이 완구시장으로 안내해줬다. 그제야 거리 끝까지 완구 가게가 들어선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마다 경쟁적으로 가판을 설치해 왕복 2차선 도로는 성인 남성 둘이 서면 꽉 찰 정도로 좁았다. 평일이었지만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 거리를 채웠다. 

    이 시장은 주로 완구를 취급한다. 문구류와 파티용품, 체육용품을 파는 곳도 있다. 조형물 글귀에 ‘문구’라는 글자가 ‘완구’보다 앞에 온 것은 과거 이곳이 문구 전문시장이었기 때문. 1960년대부터 국내 학용품 유통의 중심지였으나 완구 가게가 점차 늘어났고, 지금은 국내 최대 완구 도매시장이 됐다. 

    장난감으로 꽉 찬 거리를 5분가량 걷다 보면 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네 방향 모두 완구, 문구 가게들이 들어서 있었다. 사거리 중심에는 이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승진완구가 있다. 이 가게 1층에는 곰, 2층에는 고릴라 모형이 자리하고 두 모형의 손에는 ‘동대문 문구 ·완구거리’라는 팻말이 들려 있었다. 



    시장 내 장식물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세워진 것이다. 2015년 1월 서울시는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특구활성화 사업계획’의 일환으로 약 1억5000만 원을 들여 조형물과 타일을 설치했다. 관광특구가 된 것이 소문이 났는지 외국인이 종종 보였다. 영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시장 투어프로그램의 하나인 오디오 안내에 따라 시장 구석구석을 도는 중이었다. 비교적 한국이 익숙한 일본, 대만 관광객들은 직접 가게에 들어가 완구 몇 가지를 사기도 했다. 

    승진완구 관계자는 “관광특구 지정 이후 손님이 안정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도 찾아온다. 요즘은 완구점을 하겠다며 도매 물량으로 장난감을 구매하는 손님도 많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날 가족 단위 방문객 외에도 남녀노소가 완구시장을 드나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대학생 윤모(25) 씨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소개된 완구시장을 보고 구경 삼아 왔다. 어른을 위한 장난감도 많이 있어 하나 살까 고민 중이다. 어릴 때 갖고 놀던 추억의 장난감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고전 완구 마니아는 주기적으로 이곳을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가게에서는 매출이 별로 늘지 않았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손님들이 대형 완구 가게만 찾는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정모(47) 씨는 “시장을 찾는 사람이 늘어도 머무르는 시간이 짧으면 가게 매출은 별로 늘지 않는다. 완구시장의 경우 볼거리는 많지만 화장실 같은 편의시설이 부족하다. 그래서 유명한 가게에 들러 물건만 빨리 산 뒤 떠나는 손님이 대다수”라고 밝혔다. 실제로 시장 안에는 공중 화장실이 없는 데다, 시장 밖 대로변의 큰 건물 가운데 일부만 화장실을 개방하고 있는 상태다. 

    주차공간도 마땅치 않다. 시장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도 도보로 10분 이상 걸렸고, 공간도 넓지 않았다. 한 완구점 관계자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개인, 가족 단위 손님이 편하게 시장을 구경하려면 주차장이 필요하다. 인근 건물주들과 협의해 주말만이라도 주차장이나 화장실을 개방한다면 장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물건만큼 다양한 손님

    평일 오후인데도 손님으로 붐비는 서울 종로구 숭인동 동묘 벼룩시장.[박세준 기자]

    평일 오후인데도 손님으로 붐비는 서울 종로구 숭인동 동묘 벼룩시장.[박세준 기자]

    완구시장을 지나면 서울지하철 1·6호선 동묘앞역과 서울동묘공원을 중심으로 동묘 벼룩시장이 들어서 있다. 이 시장은 청계천을 경계로 동묘역 쪽은 중고 의류나 잡화를 주로 팔고, 신당역 방향에서는 그릇 등 중고 주방용품이나 가구 등 비교적 부피가 큰 물품을 취급한다. 

    동묘앞역 일대 중고 라디오나 TV를 취급하는 노점에서는 방송 소리가 크게 흘러나왔다. 그 앞에 장년층 손님들이 모여 앉아 방송을 들었다. 사람들이 모이니 그 옆으로 간단한 음식과 술을 파는 노점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노점 앞 손님들은 이곳에서 술을 한 잔 사들고 잡담을 나눴다. 벼룩시장을 자주 찾는다는 최모(75) 씨는 “(이곳에는) 구경거리도, 말동무도 많다. 시장 중간에 공원이 자리해 가만히 앉아 사람 구경하기 좋고, 공원에 화장실도 있어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벼룩시장에) 온다”고 말했다. 

    다양한 잡화를 취급한다지만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옷과 신발이었다. 동묘 벼룩시장 곳곳에서 “4장에 5000원”이라는 구호가 반복됐다. 구호를 외치는 상인은 돗자리를 깐 뒤 그 위에 중고 의류를 산처럼 쌓아놓았다. 그 앞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옷더미를 헤집어가며 옷을 골랐다. 

    동묘 벼룩시장은 1980년에 생겼지만 다양한 중고품 노점이 모인 것은 2000년대 초반. 청계천 복원공사로 갈 곳을 잃은 일부 상인이 이곳 벼룩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중·장년층 손님이 대부분이었지만 ‘무한도전’ 등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저렴하게 중고 의류를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젊은 손님이 크게 늘어났다. 

    1년에 서너 번 이곳을 찾는다는 대학생 박모(20) 씨는 “패션에 관심은 많지만 지갑이 가벼운 학생이라면 중고 의류를 찾게 마련이다. 서울에 중고 의류 판매시장이 여러 곳 있는데 동묘 벼룩시장이 가장 저렴하다. 물론 그만큼 좋은 옷이 없긴 하지만 괜찮은 옷을 하나라도 찾아내면 매우 흡족하다”고 말했다. 벼룩시장 한편에는 젊은 층이 입을 만한 중고 의류를 모아둔 가게가 몇 개 보였다. 이들 가게에는 특히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15년 넘게 이곳에서 잡화점을 운영했다는 김모(52) 씨는 “방송에 나와 한창 사람이 많이 들 때만 해도 1~2년 뒤 시들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까지 시장을 찾았고, 일부 청년은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물품이 세분화되고 다양해지니 시장을 찾는 사람이 줄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식사시간이 가까워져도 북적북적한 시장 분위기는 여전했다. 벼룩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노점에서 핫도그나 토스트 같은 길거리 음식을 사 들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시장 나들이를 즐겼다. 벼룩시장을 지나 신설동에 들어서자 거리 인파가 크게 줄었다. 

    풍물시장 근처에는 장년층 남성이 간혹 모여 있었지만 벼룩시장에 비해 인원이 훨씬 적었다. 주말에는 풍물시장 진입로를 음식 노점들이 채우지만 평일에는 조용했다. 음식 노점 자리는 공터가 돼 있었다. 식사시간이라 식당에 사람이 몰려 있나 싶어 시장 안으로 들어가봤지만 식당들도 한산했다.

    인파가 끊긴 곳에 풍물시장이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서울풍물시장 입구. 손님이 거의 없다(왼쪽). 서울풍물시장 식당가는 식사시간인데도 한산하다. [박세준 기자]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서울풍물시장 입구. 손님이 거의 없다(왼쪽). 서울풍물시장 식당가는 식사시간인데도 한산하다. [박세준 기자]

    풍물시장은 동묘 벼룩시장과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청계천 복원공사로 갈 곳을 잃은 상인 가운데 일부가 풍물시장에 안착한 것. 이들은 2003년 폐쇄된 동대문운동장으로 자리를 옮겨 동대문풍물벼룩시장을 개설했다. 이후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으로 벼룩시장이 철거되자 서울시는 2008년 신설동 숭인여중 대지에 103억 원을 들여 풍물시장을 지었다. 

    풍물시장은 완구시장이나 동묘 벼룩시장에 비해 월등히 좋은 시설을 자랑한다. 2층 건물에 가게 800여 개가 입점해 있다. 층마다 화장실과 식당이 자리하며 취급하는 물품에 따라 구획이 구분돼 있다. 27억여 원을 들여 만든 2층 규모의 주차시설도 있다. 이곳 상인들은 서울시에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있다. 

    서울시는 2014년부터 ‘서울풍물시장 활성화사업단’(활성화사업단)을 결성했다. 이들은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풍물시장 2층에 청년 상인이 주축이 된 ‘청춘 1번가’를 열었다. 청춘 1번가는 풍물시장으로 젊은 층을 유입하려는 시도다. 이곳은 다방, 이발소 등을 재현한 테마존과 청년 상인의 공방이 섞인 형태로 구성돼 있다. 청춘 1번가 관계자는 “주말이면 꽤 많은 사람이 시장을 찾는다. 최근에는 시장 상인들도 각종 지원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 지원이 무색하게 풍물시장은 앞서 두 시장에 비해 손님 수가 현저히 적었다. 1층 골동품 가게에는 손님이 종종 보였지만 의류 가게나 2층 잡화 가게는 몇 사람만 눈에 띄는 정도였다. 게다가 이들은 빠르게 가게를 훑으며 구경만 할 뿐 지갑을 열지는 않았다. 

    한 잡화 가게 상인은 “1층 골동품 가게나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근처 가게만 장사가 좀 되는 편”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풍물시장’이라는 이름 외에는 다른 중고품시장과 차별화되는 특색이 없다는 것. 풍물시장이라는 이름이나 TV에 소개된 모습을 보고 찾은 손님들도 실망해 다시 방문하는 경우가 드물다. 올봄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았던 허모(40·여) 씨는 “시장이 전체적으로 깨끗하지 않았다. 입구에서는 노인들이 모여 담배를 태우거나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아이들이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상인도 간혹 있었다. TV 프로그램을 보고 가족과 나들이차 찾았지만 실망스러웠다”고 밝혔다. 

    일부 상인은 각종 지원책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2층에서 의류 및 잡화를 취급하는 송모(68·여) 씨는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을 한다 해도 손님이 거의 늘지 않는다. 구경하러 오는 사람은 확실히 증가했지만 테마사업을 하는 곳과 그 주변을 빠르게 훑은 뒤 시장을 떠난다. 그래서 이들이 물건을 사는 손님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차라리 노점이 낫다?

    한 뿌리에서 나왔지만 풍물시장보다 동묘 벼룩시장에 더 많은 인파가 모이는 이유는 뭘까. 노점 위주의 동묘 벼룩시장은 시장에 들어서면 진열된 물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완구시장 역시 마찬가지. 가게 앞 노점 형식으로 진열해놓은 상품이 방문객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풍물시장은 건물에 여러 가게가 모여 있다 보니 진열할 공간이 부족했다. 

    1층 가게들은 외부로 물건을 내놓을 수 있어 사정이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2층 가게들은 물건을 가게 밖까지 진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가게 간 거리가 사람 둘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좁기 때문. 또 골목골목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각 가게가 어떤 상품을 취급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풍물시장이 신설동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시장 앞에 노점을 내는 상인들이 있었다. 풍물시장에 가게가 있는 상인들이 손님을 모으려고 시장 밖 노점에서 장사를 했던 것. 최근에는 그 자리에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간이음식점들이 들어서 영업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풍물시장에 많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시장의 특색을 고려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완구시장은 완구, 동묘 벼룩시장은 중고 의류라는 모객상품이 있다. 하지만 풍물시장이 내세운 전통, 풍물은 콘셉트가 모호하고 모객상품으로도 적합하지 않다는 것. 

    과거 활성화사업단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풍물시장은 관광명소보다 물건을 파는 시장의 기능을 먼저 회복해야 한다. 상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홍보가 아니라 판매 및 접객 교육이다. 과거 장사 방식에 익숙한 상인은 손님을 맞는 과정에서 친절하지 않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이 밖에도 매대에 팔 물건을 전부 올려놓기보다 전략적으로 배치해 손님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최근 활성화사업단과 서울시가 ‘상인학교’를 열어 풍물시장 상인들을 재교육시키고 있다. 동시에 풍물라디오 등 특색 있는 모객사업을 통해 시장을 찾는 사람을 늘리고자 노력 중이다.

    전통시장 지원으로 득 본 것은 건물주

    정부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후 환경 개선 등 다양한 지원책을 펴왔지만 이것이 오히려 상인들에게는 독이 돼 돌아왔다. 개선된 시장에 사람이 모여들자 매출보다 임대료가 더 크게 오른 것. 

    정부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통시장의 △노후 설비 현대화 △시장경영 혁신 △주차장 환경 개선 사업을 진행해왔다. 정부는 이 사업에 2012년부터 5년간 약 1조7000억 원 국가 예산을 투입했다. 

    정부 지원으로 전통시장 매출은 소폭 올랐다. 10월 11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2015년 3년간 전국 전통시장 매출액은 약 20조1000억 원에서 21조1000억 원으로 3%가량 올랐다. 

    하지만 상인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판이다. 임대료가 더 빠른 속도로 올랐기 때문. 같은 기간 시장 내 가게의 평균 월세는 64만1000원에서 74만1000원으로 15.6% 증가했다. 평균 보증금도 2012년 1733만 원에서 2015년 2052만 원으로 18.4% 상승했다. 송 의원은 “전통시장 노후 환경 개선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사업이 결국 임대업자와 건설업자의 배만 불린 격이다. 환경 개선 외에도 소비자 수요에 맞춘 다양한 서비스 및 상품 개발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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