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2

2017.11.08

인터뷰 | 오디오클립 ‘엄마의 방’ 진행자 정우열 정신과 전문의·생각과느낌의원 원장

“아이도 중요하지만 키우는 사람이 더 중요”

‘육아빠’ 생활 5년, 우울증 겪기도…주 양육자도 자기 삶 있어야

  • 입력2017-11-07 10:28:59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육아빠’로 유명한 정우열 정신과 전문의는 엄마들에게 아이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챙겨야 서로가 행복하다고 조언한다.[박해윤 기자]

    ‘육아빠’로 유명한 정우열 정신과 전문의는 엄마들에게 아이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챙겨야 서로가 행복하다고 조언한다.[박해윤 기자]

    아이는 부모를 비추는 창이다. 부모의 양육 방식에 따라 아이는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해간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아이를 좀 더 훌륭하게 키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와 경험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부모, 특히 엄마는 이러한 정보에 따라 아이를 키우려고 고군분투하는 사이 자신의 정체성을 차츰 잃어버린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보건소에서 검사한 산후우울증 고위험 판정 산모는 총 5810명이었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산후우울증을 겪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여성도 간간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몇 해 전부터 엄마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주는 책·방송·강연 등 관련 콘텐츠가 늘어나는 추세다. 

    온라인상에서 ‘육아빠’로 이름을 알린 정우열 정신과 전문의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입지를 다지고 있다. 첫째 딸이 태어난 2012년부터 직장을 나가는 대신 집에서 전업으로 아이를 키우며 인터넷 블로그에 양육일기를 올린 것이 엄마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같은 처지의 아빠들도 그의 양육일기를 자신의 일처럼 반겼다. 

    이듬해 그는 ‘아빠가 나서면 아이가 다르다’ 출간을 시작으로 매년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 ‘엄마 vs 엄마’ ‘엄마 나를 만나는 시간, 엄마 나를 사랑할 시간’ ‘균형육아’ 등 꾸준히 책을 냈다. 또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출연해 상담을 진행했고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남편을 워킹파파로 만드는 법’이란 제목의 강연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오디오클립 ‘엄마의 방’을 진행하고 있다. 육아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는 남자인 정 원장을 만나 엄마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들었다. 

    ‘엄마의 방’ 진행을 2년째 꾸준히 하고 있다. 엄마들의 댓글 반응이 뜨겁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고민 상담을 해오는 분이 많은데, 방송의 경우 파급력은 크지만 편집되는 부분이 꽤 돼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지난해부터 개인 라디오방송을 준비했고, PD와 작가, MC를 뽑았죠. 모두 10년 이상 경력이 있는데 아이를 낳은 후 경력이 단절된 육아맘이에요. 엄마의 처지를 전적으로 이해하면서 제작하다 보니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33회 진행했는데 엄마들이 힘들어하는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남녀차별 없이 자란 딸들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과정에서 일, 꿈, 목표 등을 버리게 되고 정체성도 잃게 되죠.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지만, 계속 일하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이고 엄마답지 못한 선택이라고 느껴 스스로 포기하기도 해요. 집단 무의식 때문이죠. 그러나 육아를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이 될 수는 없어요. 누구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데, 그게 안 됐을 때 심리적 갈등, 우울증이 오죠.” 

    방송에서 여러 해결책을 제시했는데 핵심적으로 코치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아이도 중요하지만 키우는 엄마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엄마도 인간이니까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한계가 있어요. 아이에게 신경 쓰는 것만큼 자신에게 신경 쓰는 ‘균형육아’가 필요하죠. 그게 안 되면 자꾸 분노가 치밀어요. 방송하다 보면 ‘아이에게 자꾸 화를 내게 돼요’라는 주제가 가장 반응이 커요. ‘아이를 잘 키우는 게 먼저’라고 최면을 걸고 참다 보면 무의식에 갇혀 있던 정체성이 자꾸 올라오죠. 결국 아이에게 화를 내는 거예요. 화 내지 않도록 노력할 게 아니라, 일단 엄마에게 자기 삶이 있으면 아이와 심리적 거리가 자리 잡으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긍정적 효과가 나오게 되죠.”

    온라인상 ‘육아빠’로 유명

    지난해부터 그가 진행해온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오디오클립 ‘엄마의 방’은 육아맘들로부터 꾸준히 지지를 받고 있다.[홈페이지 캡쳐]

    지난해부터 그가 진행해온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오디오클립 ‘엄마의 방’은 육아맘들로부터 꾸준히 지지를 받고 있다.[홈페이지 캡쳐]

    5년째 운영하는 정 원장의 블로그는 현재 3만1251명이 구독 중이다. 첫째 딸이 태어난 이후 9개월간 전업으로 육아를 담당하면서 연재를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이듬해 둘째가 태어난 후에도 꾸준히 유지했고, 지금은 오전 9시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오후 5시까지 근무하며 워킹대디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다. 

    ▼엄마 마음을 치유하는 정신과 전문의로 유명해진 계기가 블로그 때문인데, 원래 전업아빠로의 삶을 꿈꿨던 건가.
    “전혀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나중에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되겠어’라고 생각하거나 거창한 이념이 있어서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본 건 아니고, 상황이 그렇게 됐어요. 아내가 출산 후 곧바로 복직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마침 저는 이직을 앞둔 때라 아예 쉬게 된 거죠. 아이를 키우는 일은 바쁘지만 무료했어요. 반복되는 일상에 매너리즘에 빠졌고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친구도 없었죠. 그러다 보니 우울증도 왔고요. 온라인을 살펴보니까 엄마들이 다른 육아맘들과 소통하면서 정보도 공유하려고 블로그를 하더라고요. 저도 아빠 관점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상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고, 점점 소통하는 사람이 늘어났죠.” 

    스스로 ‘육아빠’라 부르며 비슷한 아빠들과 모임도 하던데 통하는 게 많을 듯하다.
    “아이를 데리고 아빠들끼리 만나서 놀기도 하고, 키즈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종종 가져요. 아직까지 남자의 육아휴직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죠. 대부분 간호사, 승무원 등 아내의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육아휴직을 선택한 경우예요. 어쨌든 그분들도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정말 아이를 잘 봐요. 얘기를 나눠보면 다들 육아를 하면서 아이를 더 사랑하게 됐다고 해요.” 

    그러면 원장님은 아이들과 관계가 어떤가.
    “당연히 좋지만, 솔직히 말하면 애증의 관계이기도 해요. 좋으면서도 힘드니까.(웃음) 그런데 가끔 기분이 묘할 때가 있어요. 지난여름 아이들이 수박을 먹다 하나를 집어서 저에게 주더라고요. 옆에 있던 엄마에게도 주겠거니 하고 기다리는데 안 주고 그냥 자기가 먹더라고요. 보통 아빠들이 그런 소외감을 경험하는데 저희는 반대였죠.” 

    아빠가 키우는 아이는 사회성이 뛰어나고 머리가 좋다는 등 연구 결과가 있는데 원장님 아이들은 어떨지 궁금하다.
    “‘아빠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는 분명히 있는데, 그건 청소년기에 나타나요. 머리가 좀 크고 자아가 형성될 때 발현되는 거죠. 지금 우리 집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요. 사실 아빠 효과라는 게 엄마가 아빠보다 더 뛰어나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건 아니에요. 주 양육자인 엄마의 세계관에 따라 성장하기보다 아빠와 엄마의 균형 잡힌 시각 하에서 자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죠.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아빠와 노는 시간이 꼭 필요해요.”

    ‘워킹대디’ 만드는 법? 믿고 맡기는 것부터

    올 여름 홀로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온 정우열 원장은 인터넷 블로그에 후기를 상세히 올리면서 아빠들에게도 강력 추천해 눈길을 끌었다.[사진 제공  정우열]

    올 여름 홀로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온 정우열 원장은 인터넷 블로그에 후기를 상세히 올리면서 아빠들에게도 강력 추천해 눈길을 끌었다.[사진 제공  정우열]

    아빠가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워킹대디’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정 원장의 경우는 이례적이다. 아빠의 의지에 달린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결을 묻자 그는 워킹대디로 살아갈 수 있는 바탕에 ‘아내의 이해’가 있었다고 한다. 정 원장은 엄마들에게 아빠를 육아 무능력자로 치부할 게 아니라, 아이를 믿고 맡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홀로 두 아이를 데리고 일본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온 뒤 강력 추천한다는 글을 올렸던데 힘들지 않았나.
    “아빠 없이 아이와 여행을 떠나는 엄마는 많아요. 아빠가 엄마보다 부족할 게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이렇게 짧고 굵게 여행을 다녀오면 관계도 더 돈독해져요. 무엇보다 아이들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고 느끼는 것도 많죠. 간혹 엄마가 아빠를 못 믿어서 아이와 여행을 허락하지 않기도 해요. 아빠 모임에 갔더니 ‘아이와 홍천강에 카약을 타러 가고 싶은데 아내가 결사반대한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는 아빠가 하고 싶어 하는 활동적인 경험을 매사 탐탁지 않아 하죠. 그러면 아빠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상하고 아이를 돌보고 싶지 않아져요. 이런 고비를 넘지 못하면 아빠 육아도 불가능합니다.” 

    ▼아빠를 믿고 아이를 맡겨도 될까.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해요. 지속적으로 ‘그건 안 돼, 이건 안 돼’라며 한계를 두는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는 자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죠. 아이 스스로 ‘이건 안 되겠지’라며 한계를 두게 되거든요. 마찬가지로 육아에 관심 있던 남편들도 아내가 정한 한계에 자꾸 부딪히다 보면 하기 싫어져요. 좀 못 미더운 부분이 있더라도 일단 믿고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보길 권해요. 일단 육아에 동참하는 게 먼저이니까요.” 

    ▼워킹대디를 자처하는 남편을 둔 아내가 부럽다.
    “남들은 그렇게 얘기하지만, 아내에게도 말 못 할 불만이 있죠. 간혹 자신의 남편과 저를 비교하는 분이 있는데 정말 나쁜 방법이에요. 비교할 거면 자신의 남편보다 못한 경우를 예로 들면서 잘했다고 칭찬해주세요. 가정마다 상황이 다르잖아요. 우리 집도 첫째 때는 전적으로 제가 육아를 담당했지만,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는 아내와 저의 육아 담당 비율이 거의 비슷했어요. 최근에는 제가 급성간염으로 한 달간 누워 있는 통에 아내가 아이들을 전적으로 봐야 했죠. 그러니 상황에 맞게 부부가 공동육아를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상담 후 변화하는 엄마들 볼 때 보람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아빠 육아의 최대 수혜자는 아빠 자신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수혜를 경험했나.
    “많죠. 최근 오키나와 여행을 갔을 때 한참을 운전해 숙소에 도착했는데 아이들이 ‘아빠 힘들지’ 하더라고요.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어요. 또 부부 사이가 좋지 않거나 아내가 화를 낼 때 아이들이 저를 방어해주더라고요.(웃음) 그때는 뭔가 지원군처럼 느껴졌어요. 또 얼마 전에는 둘째와 공원을 거닐면서 ‘너랑 걷는 게 좋다. 왜 그런지 아니’라고 물었더니 ‘아빠가 나를 사랑하니까’라고 답하더라고요.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어요. 친밀감이나 유대감은 인간이 느끼고자 하는 중요한 본능이자 욕구예요. 친구나 사회관계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아이와 나눌 수 있으니 정말 행복하죠.” 

    반복되는 상담 업무와 심신이 지치는 육아로 힘들 법도 한데 정 원장은 일, 육아, 취미 등 다방면에서 삶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에는 엄마들을 위해 직접 작곡한 연주곡이 담긴 앨범 ‘Relaxation Vol.1’도 발매했다. 엄마들에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균형육아를 강조하는 것만큼 자신도 그 원칙에 따라 살아가려 노력한다. 

    상담하면서 어떤 때 가장 보람을 느끼나.
    “균형육아를 실천하는 엄마를 볼 때 느껴요. 최근에는 강의를 주로 나가는데 1~2시간이 너무 짧아요. 바로 바뀌기가 힘들죠. 그런데 한 번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강의 듣고 집에 가는 길에 커피 한 잔 하고 들어갔어요. 해보니 정말 다르네요’라는 피드백을 받아 좋더라고요. 또 아빠한테 아이를 맡기고 여행을 다녀온 분도 있는 등 실천하면서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얘기를 들으면 아무래도 뿌듯하죠.” 

    그런 측면에서 지난해 앨범을 낸 건가.
    “원래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어요.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음악을 전공했을지도 몰라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도 작곡을 꾸준히 했는데 육아하면서 못 했죠.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고, 취미 유지 차원에서 작곡을 하다 지난해 우연한 기회에 앨범을 내게 됐어요. 엄마들의 공허한 마음을 투영한 가사를 만들어 다음 앨범을 내는 게 꿈인데 잘 안 되네요.(웃음)” 

    마지막으로 엄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러 가지 조언을 하지만 모든 가정에 맞는 답은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앞으로 20년 이상 육아를 해야 하잖아요. 부부가 서로를 탓하지 말고, 아이와 관계도 너무 급하게 개선하려 들지 마세요. 작은 것부터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길게 보고 아이를 키우길 바랍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