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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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기(卒記)

故 이수영 OCI 회장 “오너 아닌 전문경영인” | 故 김상수 대동공업 회장 한국 농업 기계화의 기수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10-30 14: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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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너라기보다 전문경영인으로 불리고 싶다.” 고인이 살아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자주 하던 말이다. 단순히 말뿐이 아니었다.

    그는 동양화학공업을 동양제철화학으로 바꾼 뒤 에너지 기업 OCI로 변신시켜 국내 태양광발전 산업의 초석을 닦았다고 평가받는다.

    1942년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리던 이회림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70년 경영위기에 봉착한 동양화학공업에 전무이사로 입사한 뒤 단기간에 위기를 극복했다. 이 공적을 인정받아 78년 사장, 96년 회장에 올라 최근까지 회사 경영을 총괄했다.

    고인은 해외 유수 기업과 제휴해 신사업을 발굴했다. 한불화학, 한국카리화학(현 유니드), 오덱 등이 그의 작품. 2006년에는 태양전지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 사업에 뛰어들어 5년 만에 세계 3위권의 폴리실리콘 생산업체로 도약했다. 이어 태양광발전 사업까지 발을 넓혀 2012년 미국 알라모 태양광발전소 계약을 수주, 지난해 완공했다.

    ‘사람은 곧 기업’이라는 창업정신을 강조한 고인은 회사 경영에서 노사화합을 최우선시했다. 덕분에 그가 경영 일선에 있던 기간에는 파업이 한 번도 없었다. 노동자 처지를 이해하려는 그의 경영철학은 재계 전체로 퍼졌다. 2004~2010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복수노동조합 허용’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 등을 지지하며 노조법 개정에 이바지했다.






    ‘농업 기계화를 통한 사업보국’을 기치로 1947년 경남 진주에 설립된 대동공업의 2대 경영자인 고인은 한국 농업 기계화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최초로 경운기,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같은 농기계를 개발, 보급했기 때문. 일본 도쿄공업대에서 공업경영을 수학한 그는 귀국 후 1959년 대동공업에 입사해 제품 개발 및 생산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독일에서 3년, 일본에서 1년 기술 연수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국내 최초로 농기계를 개발할 수 있었다.

    이 업적을 인정받아 고인은 1982년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년 뒤에는 대동공업 회장에 취임했으며, 2011년 차남인 김준식 대동공업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기까지 회사 경영을 총괄했다. 회장 취임 후에는 대구에 대규모 신축 공장을 세우고 150여 개 대리점 망을 확충하는 등 대동공업을 국내 1위 농기계 기업으로 일궜다.

    고인은 국내시장 1위에 만족하지 않았다. 1985년 미국 수출을 시작으로 93년에는 미국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이어 2007년에는 중국, 2010년에는 유럽에 잇달아 법인을 만들었다.

    그가 취임할 당시 연 2000억 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현재 5800억 원까지 상승했다. 해외 수출은 같은 기간 1억 원에서 2000억 원으로 늘었다.

    졸기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마지막 평가를 뜻하는 말로 ‘조선왕조실록’에도 당대 주요 인물이 숨지면 졸기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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