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0

2017.10.25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맥주 애호 뮤지션이 만든 맥주를 부르는 음악

모노톤즈의 ‘into the night’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7-10-23 16: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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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뮤지션은 맥주를 사랑한다. 맥주를 사랑하지 않는 뮤지션이 있다면 둘 중 하나다. 아예 술을 마시지 않거나 발효주에 취약한 체질이거나. 나는 맥주를 마시지 않는 뮤지션의 음악을 좋아한 적이 없다. 좀 더 나가자면, 맥주 한 잔 못 마시는 뮤지션이 진짜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단언해도 좋다. 물론 아주 약간의 예외는 있지만 아무튼.

    생각해보자. 무대 위에서 맥주를 마셔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공연 장르가 음악 말고 또 있나. 음악과 맥주는 그런 관계다. 15년 넘게 뮤지션들의 언저리에서 살았다. 그들과 마신 술이 대부분 맥주였다. 맥주를 마시면서 많은 음악 이야기를 했다. 물론 여자 이야기는 더 많이 했다. 때로는 진지한 이야기도 했다. 많은 뮤지션과 많은 술을 마셨지만 특히 잊을 수 없는 밤이 있다. 




    2004년 여름이었다. 당시 다니던 잡지사에서 첫 휴가를 받았다.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장소는 일본 도쿄,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한창 일본 음악에 빠져 있었고 친구이자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인 차승우가 거기 있었다. 노브레인의 원년 기타리스트인 그는 ‘청춘 98’ ‘청년폭도 맹진가’라는 한국 펑크의 걸작을 내놓았고 팀 탈퇴 후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다. ‘청년폭도 맹진가’를 제작할 무렵에는 스튜디오에 맥주 피처를 사놓고 녹음 도중 틈틈이 마시면서 줄담배와 함께 잡스러운 이야기나 녹음 아이디어를 나누곤 했다.

    도쿄 북부 변두리에 있던 그의 허름한 집에 묵었다. 관광은 옵션이었다. 매일 밤 술을 마셨다. 느지막이 일어나 도쿄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가난한 유학생과 가난한 잡지 기자의 만남이니 비싼 술집은 갈 수 없었다. 그때는 ‘나마 비루’(생맥주)의 거품이 얼마나 훌륭한지도 모르던 시절이다. 싸구려 맥주와 사케로 간을 적셨다.



    귀국 전날 밤, 우리는 역시나 취해 그의 집 인근 공원을 찾았다. 근처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호기롭게 사들고 앉았다. 한국에 있을 때에 비해 그는 많이 야위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옷 한 벌 사려고 일주일씩 밥을 굶곤 했으니까. 한국에서 그는 최고 록스타였다. 음악뿐 아니라 스타일도 멋졌다. 모두가 그를 사랑했다. 도쿄 주택가 공원에서도 그는 여전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100% 스타일로 무장한 채였고, 호쾌한 성찰의 언어를 내뱉었다. 옛날 일들, 그래봐야 몇 년 안 된 그런 일들을 되짚어가며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 다시 사고를 쳐보자고 다짐했다. 취한 밤의 결의였지만 느슨하진 않았다. 너무 단호하지도 않았다. 적당히 진지했고 적당히 여유로웠다. 딱 맥주에, 이국에서 조우에 어울리는 밤의 대화였다.

    그는 지금 ‘모노톤즈’라는 밴드에서 활동 중이다. 이 팀의 데뷔 앨범 ‘into the night’는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3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최우수 록 음반상’을 수상했다. 이 앨범에 실린 모든 곡이 뛰어나지만 맥주가 생각나는 밤이면 동명의 타이틀곡을 고른다. 안개로 가득한 도시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노래다. 기분 좋게 취해 홀로 집으로 돌아갈 때, 가끔 느끼는 그 신비로운 낭만의 표상이 이 노래에 번진다. 도쿄에서 우리가 보낸 밤을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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