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0

2017.10.25

마감有感

공범자들

  • 서정보 편집장 suhchoi@donga.com

    입력2017-10-23 09: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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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언론 근방에 가서는 얼씬거리지 말아야겠다.”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개입 논란으로 임명 9일 만에 서동구 전 KBS 사장이 물러나자 신문의 날(4월 7일) 기념식 축사에서 한 말이다. KBS 사장 등 언론이 인선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정연주 한겨레 논설주간이 후임 KBS 사장이 되자 지명관 KBS 이사장이 “지난번 서동구 씨를 밀었던 청와대 라인 쪽에서 ‘이번엔 정연주 씨를 민다’는 의사를 전달해왔다”고 폭로하면서 언론에 얼씬거리지 않겠다던 노 전 대통령의 말이 허언이 돼버렸다.

    노 전 대통령처럼 언론의 자유와 독립에 신념이 있던 사람도 권력의 방송 장악 측면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비단 노 전 대통령만이 아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공영방송 사장 임명과 관련된 권력 개입의 흔적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최근 MBC 사장 임명 권한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의 김원배 이사가 사퇴했고, 김경민 KBS 이사도 물러났다. 그전엔 유의선 방문진 이사 역시 사퇴했다. 모두 옛 여권이 임명한 이사들이다. 해당 노조가 직장, 교회, 집 등을 찾아가 사퇴 시위를 벌였다. 일종의 간접 압력을 받은 것이다. 한 교수는 현직 이사가 아닌 전직 이사인데도 노조 측에서 카메라를 들고 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노조는 영화 ‘공범자들’에서 보듯 ‘방송의 미래를 망친 자들’을 빨리 몰아내는 것이 ‘적폐청산이자 방송 독립의 출발점’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정연주 KBS 사장을 경영 부실과 배임 등을 이유로 해임했다. 과거 정권에서 민주당과 노조는 사장 임명 방식을 정권의 입김이 닿지 못하도록 고쳐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이제 정권을 잡은 그들은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사람만 바꾸면 과거와 다를 바 없다. 급하다고 바로 힘으로 집행하면 그들도 방송의 미래를 망친 공범자들 반열에 오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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