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5

2017.09.13

사회

구멍 숭숭 응급의료체계

39개 재난거점병원 평가 4점 만점에 2 .1점 불과 … 내년 예산 깎여 악화 우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9-12 10: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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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9일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의 키워드는 ‘복지 확대’다.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의 의료급여 지원을 확대하는 등 보건의료 예산을 크게 늘렸다. 반면, 응급의료기관 관련 예산은 삭감됐다. 2018년도 예산안에서 응급의료기금도 2052억 원으로 올해 대비 6.7%(148억 원) 줄었다. 응급의료기금은 중증외상전문진료체계 구축, 해양원격응급의료체계 지원, 응급의료전용헬기 운영지원 등에 투입돼왔다. 관계자들은 현재 전국에 지정된 권역외상센터 전부가 필요 전문의 수를 채우지 못하고 있을 만큼 만성적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이번 조치가 그렇잖아도 열악한 국내 응급의료 환경을 더욱 악화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한 종합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등을 통해 우리나라 응급의료 시스템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지속적 관심과 투자가 필요한데, 다른 현안에 밀려 이 문제가 소홀히 다뤄질까 봐 걱정”이라고 밝혔다.



    인력 부족, 소통 난맥

    또 다른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응급의료체계는 크게 현장단계, 이송단계, 병원단계로 나뉜다. 각 단계를 담당하는 기관이 자기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해야 응급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각 단계에 전부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사례로 꼽은 것이 6월 충북 충주에서 발생한 인터넷 설치 기사 살해 사건이다. 당시 피해자는 목과 배 부위를 칼에 찔린 뒤 피를 쏟으며 도망쳐 나와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고, 곧 119구급대가 출동해 환자를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그러나 이 병원에서 적절한 처치를 하지 못했고, 환자를 헬기에 태워 강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다시 옮겼다. 그사이 피를 많이 흘린 환자는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 전문의는 “해당 사건의 전모를 전해 듣고 가장 안타까웠던 점이 현장 구급대원의 판단이다. 충주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 배치된 닥터헬기의 관할 지역이다. 현장에서 바로 헬기 구조를 요청했다면 응급의료 전문의가 헬기에 타고 환자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헬기 안에서 적절한 처치를 하며 해당 병원의 권역외상센터로 환자를 옮겨 즉시 응급수술을 했다면 환자가 목숨을 잃지 않았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우리나라 응급구조 현장에 전문적 판단을 내릴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구급차에 응급구조사 등 전문 인력이 타도록 규정해놓았다. 그런데 3~4년제 대학 관련 학과를 졸업하거나 3년 이상 현장 경력을 쌓아야 취득할 수 있는 1급 응급구조사와 달리 2급 응급구조사 자격증은 관련 이론 과목 수강 후 실무실습 100시간을 이수하면 취득할 수 있다. 의사, 간호사, 1급 응급구조사 등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일부 민간 운영 구급차의 경우 응급구조사를 아예 태우지 않은 채 운행하는 사례도 적잖다. 이에 대해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가장 좋은 건 2급 응급구조사가 1급 응급구조사와 함께 현장에 출동해 자연스럽게 경험과 전문성을 쌓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성적 예산 부족 탓에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현행 응급환자 이송단계에도 문제가 적잖다. 해당 사건 당시 환자가 처음 이송된 대학병원 응급실에는 긴급 수술을 맡아 할 수 있는 외과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에 따르면 응급환자 이송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관계 기관 간 원활한 의사소통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응급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이 문제를 지적받으면서도 시스템을 정비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두 달 만에 동부전선 일반전방초소(GOP)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군과 소방당국 사이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헬기 출동이 1시간 넘게 지연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응급의료 관계자들은 “지금도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는 닥터헬기와 해양경찰의 해경헬기, 각 지방자치단체 소방본부가 관할하는 소방헬기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민안전처가 해체된 상황에서 부처 간 의사소통 난맥상이 더욱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헬기장도 없는 ‘재난거점병원’

    그렇다면 응급의료체계의 마지막 단계인 ‘병원’ 상황은 어떨까. 정부는 세월호 참사 후 국내 응급의료체계를 정비하면서 전국 40개 병원을 ‘재난거점병원’으로 지정했다. 대규모 재난이 발생했을 때 다수의 사상자를 적절히 분산 수용하고, 특히 중증환자를 효과적으로 이송해 수술을 포함한 전문적 처치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다. 문제는 해당 병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도록 했을 뿐, 재난거점병원이 반드시 갖춰야 할 시설과 장비에 대한 기준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병원이 위급 상황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해 응급의학연구회가 전국 39개 재난거점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설 및 장비 현황 평가에서도, 조사 대상 병원의 평균 점수가 4점 만점에 2.1점에 그쳤다. A~D 네 단계로 구분할 경우 간신히 C에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일부 병원은 중증환자 이송의 필수 요소인 헬기장조차 갖추지 않고 있어 이 평가에서 D를 받았다.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중증환자 치료 거점 구실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한 소방헬기 조종사는 “2014년 경주에서 발생한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당시 구급차가 현장에 닿기까지 60분 이상이 걸린 것으로 안다. 이러한 대형 재난 상황에서 신속히 구급 활동을 하려면 헬기를 원활히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자면 재난거점병원이 최소한 헬기 이착륙 인프라 정도는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응급환자를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않으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로 규정한다. 이들의 생명을 구하려면 선진국처럼 ‘구조요청 접수 후 5분 내 출동, 20분 내 현장 도착 및 응급처치, (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 1시간 내 수술’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이강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응급의료 예산이 오히려 삭감된 상황에서 관계자들의 걱정이 깊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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