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5

2017.09.13

특집 | 북한 핵실험 후폭풍

EMP탄 전자장비 ‘먹통’ 만들 가공할 무기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7-09-08 17: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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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SBS 드라마 ‘쓰리 데이즈’는 별장으로 휴가를 떠났다 실종된 대통령을 추적하는 경호원의 활약상을 그렸다. 드라마 초반에 강력한 전파를 쏴 주변 지역을 정전시키고 휴대전화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인위적으로 강력한 전자기펄스(Electromagnetic Pulse·EMP)를 발생시켜 통신·전자기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설정이었다.

    현실에선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장에서 이와 같은 전자장비 무력화 현상을 체험할 수 있다. 대통령경호처는 대통령 주변 반경 100m 정도 지역에 방해전파를 쏴 통신·전자기기의 작동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킨다. 이를 재밍(jamming)이라 하는데 기기는 망가지지 않는다. 방해전파가 사라지는 순간 원상복구된다.

    최근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부각된 EMP의 경우 재밍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시적 마비가 아닌 전자회로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다.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적의 무장을 단숨에 해제시키는 공격 기술을 현실화한 것이 EMP탄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기술정보센터(DTIC)는 전자장비가 많은 현 군대의 방어체계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EMP탄을 ‘대량파괴무기’로 규정하고 있다.


    EMP 효과란

    EMP탄은 전자기펄스로 인해 나타나는 전자 방출 효과를 통해 영향권 내 모든 전자기기를 파괴하는 무기다(그림 참조). 핵폭발 때 강력한 에너지를 지닌 전자가 발생하고 이것이 진동운동을 통해 대기 중에 퍼지면서 전자기펄스, 즉 EMP가 발생하는 것이다. EMP가 전자회로로 들어가면 전류가 되는데, EMP의 엄청난 에너지 때문에 회로가 버틸 수 없는 과전류 상태가 돼 모든 전자기기가 마비되는 것이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220V를 사용하는 가전제품에 갑자기 10만V쯤 흐르게 하면 회로가 타버려 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EMP는 위와 같은 콤프턴 효과(Compton Effect)를 활용한 것이다. 콤프턴 효과는 1925년 ‘빛이 입자’라는 것을 처음 과학계에 소개한 미국 물리학자 아서 콤프턴의 이름에서 따왔다.



    콤프턴 효과는 1962년 태평양에서 시행된 미국의 수소탄 실험 때 입증됐다. 미국이 하와이 서남쪽 존스턴 섬에서 로켓에 핵탄두를 실은 뒤 400km 상공에서 터뜨렸는데, 예기치 못한 이상현상이 멀리서도 발생한 것이다. 핵실험장에서 800km 밖에 있던 관측장비가 파손됐고, 존스턴 섬에서 약 1500km 떨어진 하와이에서는 가로등이 깨지는가 하면 한동안 통신망도 두절됐다. 그뿐 아니라 존스턴 섬 인근 저궤도를 돌던 미국 인공위성 일부도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 원인은 핵폭발 때 발생한 거대한 전자기파였다. 핵폭발 때 폭풍과 열 외에도 전자기파가 나온다는 것이 이때 확인됐다.

    6월 9일 헨리 쿠퍼 전 미국 전략방위구상(SDI) 국장은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미국 의회 EMP위원회 조사를 통해 2004년 러시아의 EMP 기술이 북한으로 이전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EMP는 상대적으로 정확성의 부담이 적고, 대기권 재진입 기술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북한 김정은 정권은 첫 번째 공격 수단으로 핵미사일보다 핵EMP탄을 선택할 개연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쿠퍼 전 국장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스타워즈 구상’을 지휘하던 인물로, 미국의 대표적인 미사일 전문가다. 그는 “몇 년 안에 북한이 EMP 기술을 확보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쿠퍼 전 국장의 기고가 있은 지 석 달도 채 되지 않아 북한은 EMP 위력을 자랑했다.

    9월 3일 6차 핵실험을 단행한 북한이 다음 날 4일 발행한 ‘노동신문’에 김성원 김책공업종합대 학부장 명의로 ‘핵무기의 EMP 위력’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김 학부장은 “일반적으로 핵탄이 30~100km 높이에서 폭발할 때 생기는 강한 전자기임풀스(주 : 북한의 EMP 표기)에 의해 전자기구, 전기기계, 전자기 계통 등이 심하게 손상되거나 전력 케이블, 안전기 등이 파손된다”며 “(EMP가) 지면 가까이에 이르면서 10만V/m(m당 전압·전자파의 세기 단위) 이상의 강한 전기마당(전기장)을 형성하기 때문에 그에 의해 통신시설들과 전력계통들이 파괴되게 된다”고 EMP의 원리를 설명했다. 북한은 핵실험 직전 “우리의 수소탄은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초강력 EMP 공격까지 가할 수 있는 다기능화된 열핵전투부”라고 주장한 바 있다.

    임종인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교수는 “자동차와 선박은 물론, 요즘은 냉장고에도 반도체칩이 들어가기 때문에 EMP탄으로 입을 피해는 상상도 못 할 정도”라고 말했다.
     


    핵EMP, 비핵EMP

    EMP는 크게 핵EMP와 비핵EMP로 구분된다. 핵EMP는 핵폭발 시 방출되는 대규모 전자기파를 이용하는 것으로, 넓은 영역에 극심한 피해를 준다. 그에 비해 비핵EMP는 핵폭발 없이 EMP를 기계적으로 방출하는 장치를 통해 EMP 효과만 거둘 수 있도록 개발된 것이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같은 핵물질 없이도 핵폭발에 버금가는 EMP를 방출해 핵무기를 사용한 것과 유사한 피해를 입힌다.

    핵EMP와 비핵EMP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영향을 미치는 범위다. 핵EMP는 핵폭발 지점에서 직선거리로 닿을 수 있는 범위가 모두 영향을 받는 영역인 데 반해, 비핵EMP는 특정 지역에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북한이 수소탄 실험이라고 주장하는 6차 핵실험 이후, 북한이 핵탄두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요격하기 힘든 100km 이상 고공에서 터뜨려 EMP 공격을 가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만약 북한이 EMP 효과가 극대화되도록 수소탄을 상공에서 터뜨린다면, 그 영향은 수소탄이 터진 곳에서 지평선이 보이는 곳까지 미친다. EMP 효과는 직선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지평선 너머로는 영향을 거의 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북한은 더 넓은 지역에 피해를 주려고 더 높은 고도에서 터뜨리려 할 가능성이 높다.

    EMP 효과를 위해 터뜨린 핵폭탄은 사람에게는 거의 피해를 주지 않는다. 100여km까지 피해를 주는 폭압(暴壓)과 방사선이 없기 때문이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탄의 폭압과 방사선이 피해를 준 지역은 반경 5km가량이었다. 낙진 피해도 거의 없었다. 지구 상공 10km쯤을 흐르는 강력한 제트기류가 낙진을 흩어버리기 때문이다.



    美, 이라크전쟁에서 EMP탄 사용

    그런데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정보기술(IT) 국가이니 북한은 EMP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차폐(遮蔽) 능력을 갖췄다면 피해는 미미할 수도 있다. 진공관이나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구형 전자제품은 EMP 피해를 거의 입지 않는다. IC(집적회로), 신형 IC를 채택한 최신 전자제품일수록 피해를 입을 확률은 높아진다.

    미국은 이미 EMP 효과를 차폐하는 장치를 넣은 무기를 생산하고 있다. 육군이 많이 보유한 야포와 무전기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레이더 등 고성능 전자무기는 피해를 입을 개연성이 높다. 일반인이 쓰는 휴대전화와 컴퓨터는 민감하기에 거의 다운될 것으로 보인다.

    한 전기통신 전문가는 “EMP에 따른 피해는 거리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며 “낙뢰가 떨어졌을 때 가까이에 있는 전자제품은 고압 전류 탓에 화재가 발생하지만, 멀리 떨어진 곳의 전자제품은 잠시 꺼졌다 다시 켜지기도 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EMP에 따른 피해는 아직 실증된 바 없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EMP 효과를 위해 핵탄두를 쓰려는 것은 우리 ‘눈’ ‘귀’와도 같은 전자장비를 무력화해놓고 군대를 투입하려는 목적에서다. 그러나 EMP 효과가 미미하다면 돌격하는 부대는 상대 방어망에 걸려 궤멸할 수 있다. EMP 효과를 자신하지 않는 한 북한은 섣부른 도전을 하기 힘든 것이다.

    2003년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은 재래식 폭탄을 이용해 만든 EMP탄을 사용했다. 재래식 EMP탄은 표적의 2km 이내에서 터져야 효과적이다. 한 방향으로만 전자기파를 쏘기에 반대편에 있는 아군은 마음대로 전자장비를 사용하며 돌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방과학연구소도 EMP탄 개발에 도전했다. 미국과 한국은 어떠한 EMP탄을 갖고 있는지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EMP탄이 전자장비를 무력화할 수 있는 창이라면 EMP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방어기술은 방패라 할 수 있다. 북한의 EMP탄 공격에 대비해 우리 군은 유사시 전쟁지휘소 기능을 할 주요 시설에 EMP 방호시설을 갖췄다. 군의 한 관계자는 “최신예 무기에는 대부분 전자장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EMP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군용 시설과 장비도 EMP탄에 대비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EMP탄을 활용한 참수작전한미연합군이 북한을 상대로 EMP탄을 사용하며 참수작전을 수행하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거의 대부분 참관하고 있다. 북한이 실제 탄두를 올린 화성-14형이나 화성-12형을 쏘려 할 때 이를 포착한 한미연합군이 강력한 EMP탄을 발사해 연료 주입을 하던 북한 미사일을 터지게 하면 어떻게 될까.

    현장 근처에 있던 김정은이 목숨을 건졌다면 즉각 ‘철봉각’ 같은 요새로 도주할 것이다. 따라서 한미연합군은 미국 델타포스(미 육군 특수부대)나 데브그루(미 해군 특수전 개발단), 한국군의 707부대를 태운 MC-130 등을 먼저 출격시킨 후 EMP탄 공격을 한다. 그리고 EA-6B 프라울러나 EA-18G 그라울러 같은 전자전기, F-35B 스텔스 폭격기를 이륙시킨다. 전자전기는 EMP탄 공격에도 작동할지 모를 북한 레이더를 파괴하는 일을 하고, F-35B 관통탄을 투하해 지하에 있는 핵심 기지 등을 파괴한다.

    MC-130에서 뿌려진 한미 특작요원들은 관통탄으로 부술 수 없는 갱도진지로 들어가 핵시설 등을 파괴하고, 가능하다면 김정은을 사살하는 임무도 수행한다. 임무를 마치면 MH-47과 MH-60을 보내 특작요원들을 안전하게 철수시킨다. 이어 현무-2와 에이타킴스(ATACMS) 미사일로 ‘남은 의심 시설’을 초토화한다. 이 공격으로 북한 레이더망이 완전히 파괴돼 공중우세권이 확보됐다고 판단하면 F-15K 등을 띄워 ‘그리고 남은 것’들을 제거하는 초정밀 폭격을 한다. 김정은을 죽이지 못했다면 숨어 있는 갱도진지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묻어버리는 것이다. EMP탄 공격은 수소탄을 개발한 북한보다 한미연합군이 참수작전 때 더 먼저 정확하게 쓸 수 있는 카드인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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