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3

2017.08.30

김민경의 미식세계

해산물이 듬뿍, 칼칼한 맛이 일품

모두 모아 나눠 먹는 모리국수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7-08-28 16: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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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경북 포항시의 작은 동네 구룡포에 종종 들렀다. 아버지 고향인 경북 경주시 감포에 갈 때면 포항 죽도시장까지 둘러보곤 했는데, 장을 보고 나서도 시간이 여유로울 때 가던 곳이 구룡포다.

    바닷가 작은 마을 구룡포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예스러운 집과 골목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우리는 주로 감포에서 회를 먹고, 경주에서 황남빵을 사고, 포항에서는 반찬을 할 다양한 해산물과 건어물을 장 봤다. 그러나 구룡포에 가면 여기저기 걸으며 신기한 풍경을 둘러볼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서른이 가까워서야 구룡포에서 어깨를 들썩거리며 후루룩 먹는 모리국수를 맛봤다. 아버지는 왜 모리국수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을까. 모리국수는 원래 바닷가에 흔한 해물을 주섬주섬 구해 집으로 가져와 끓여 먹던 음식이다. 지금에야 구룡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가 됐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끼니때가 되면 내내 우려먹을 만큼 흔했다.

    너무 흔했기에 아버지는 구룡포에 가도 이 ‘별미’를 떠올리지 못했나 보다. 먹을거리가 풍성해져 가정집에서 인기가 떨어진 모리국수는 어부와 부둣가 노동자들의 아침식사가 됐다. 동 트기 전 바다로 일을 나간 어부들이 육지에 돌아오면 모리국수로 겨울 한기와 새벽 허기를 달랜다.

    그날그날 잡은 싱싱한 생선과 미더덕, 게, 조개, 콩나물, 대파 등을 냄비에 듬뿍 담은 뒤 고추장을 풀고 고춧가루도 넉넉하게 넣어 얼큰하게 끓인다. 아귀나 바다메기처럼 시원한 맛을 내는 생선을 주로 넣었고 내장도 함께 끓여 구수한 맛을 더했다. 여기에 게와 조개까지 들어가면 달달한 감칠맛까지 보태진다. 벌겋게 펄펄 끓는 국물에 납작납작한 칼국수를 넣어 더 끓인다. 칼국수가 익으면 먼저 건져 먹는다. 칼국수는 금방 붇기 때문에 나중에는 흐물흐물 풀어져 국물에 잔뜩 퍼진다.



    이렇게 퍼진 칼국수를 숟가락으로 떠 먹는 맛도 나쁘지 않다. 모리국수는 계속 끓이며 먹는데, 칼국수의 녹말기와 해산물의 맛이 푹 우러나 걸쭉해진 진국의 맛은 일품이다. 모리국수의 첫맛은 얼큰하고 시원해 숙취가 말끔히 사라진다. 그러나 끓일수록 깊어지는 맛에 또다시 탁주나 소주 한 잔을 부르게 된다.

    모리국수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모여서 먹는 국수, 모조리 다 넣어 끓이는 국수라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 ‘모디국수’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국수 이름이 무어냐 묻는 질문에 ‘나도 모른다’고 하던 식당 주인의 대답에서 생겨났다는 설도 있다. 마지막으로 구룡포항에 일본인이 많이 살았기에 일본어에서 왔다고도 한다. 일본어 모리는 ‘나무 빽빽할 삼(森)’자로 원래 숲을 의미하지만 구룡포에서는 ‘많다’는 뜻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모리국수는 추울 때 먹어야 제격이다. 하지만 요즘 유명해지면서 줄을 서야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돼 정작 필요한 사람이 제때에 못 먹는 일이 태반이라고 한다. 한겨울 모리국수는 추위와 허기를 이기며 새벽 일을 한 분들에게 양보하고, 우리는 계절 좋은 지금 맛보면 좋겠다. 뜨거운 열기와 얼큰한 맛에 땀 줄줄 떨구며 한 그릇 비운 뒤 바다로 나가보자. 멀리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부른 배와 가벼운 마음을 살랑살랑 기분 좋게 쓰다듬고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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