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3

2017.08.30

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우리가 ‘갑질’을 하는 이유

“비판에 예민, 공감 능력 결여, 인정욕구 강한 나르시시즘”

  •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의학박사 psysohn@chol.com

    입력2017-08-28 15: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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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박찬주 육군 2작전사령관(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공관병에게 ‘보관을 잘못해 천혜향이 상했다’며 집어던지거나, 호출 장치인 전자팔찌를 착용하라고 시키거나, 항의하는 공관병은 전방초소(GOP)에서 근무하게 했다는 등 피해 병사들의 증언이 나왔다. 사실 여부는 법원에서 가려지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8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부처 차원에서 ‘갑질 문화’를 점검하라”고 지시했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을 마련하라”며 진화에 나섰다. 

    갑질에 대한 사회적 폐해 및 인권 침해 논란은 잊힐 만하면 하나씩 불거져 나온다. SK가(家) 2세인 최철원 전 M&M 사장의 이른바 ‘매값 폭행 사건’부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까지 그간 불거진 ‘갑질’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차다. 일반 서민도 대형마트 직원에게 갑질을 한다는 뉴스도 종종 나온다.

    공관병 갑질 사건은 매우 엄격한 서열사회인 군대에서 ‘계급을 이용한’ 직권 남용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대장 계급장 앞에서 소장과 준장은 물론, 영관급이나 위관급 장교도 얼어붙고 긴장하는데, 왜 굳이 사병 계급장을 단 젊은 청년들에게 계급을 이용한 갑질을 했을까 의문이 든다. 필자는 인간의 인격 특성인 ‘나르시시즘(Narcissism)’을 떠올렸다.



    ‘갑질 대장’ 사건 핵심은 계급

    나르시시즘은 ‘자기애(自己愛)’라고도 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애착하는 현상을 뜻한다.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이 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해 물에 뛰어들어 죽은 그 자리에 ‘나르키소스(수선화·Narcissus)’가 피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1899년 독일 정신과 의사 네케는 이 말을 명명하면서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은 자기의 얼굴과 몸을 이성으로 대하며, 스스로 애무하면서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기도취, 자아도취, 공주병, 왕자병, 자뻑, 거울공주, 도도한 사람, 건방진 사람, 안하무인 등 여러 표현이 사용된다. 

    정신의학에서는 ‘인격장애(Personality Disorder)’라고 부르는 병적 현상이 있는데, 이는 한 개인이 평생 혹은 매우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행동 양상으로 인해 사회생활에서 여러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이 가운데 ‘자기애적 인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는 자신의 재능, 성취도, 중요성, 또는 특출성에 대한 과대한 느낌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사람은 타인의 비판에 매우 예민하지만 공감·감정이입 능력이 결여돼 있고, 인정욕구가 강하다. 전문적인 면담이 이뤄지지 않아 박 대장 부부가 자기애적 인격장애를 지녔는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의 행동은 나르시시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나르시시즘을 가진 사람은 종종 자기 마음대로 자격을 부여한다. 군 최고 계급인 대장 자리에 오른 만큼 자신은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대장은 군대에서 직무, 즉 부하 장병들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업무를 하는 지위일 뿐, 상대방의 영혼과 심신을 지배할 권리까지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박 대장 부부는 ‘내 느낌과 욕구가 제일 중요하다’ ‘나는 무엇을 원하든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을 개연성이 커 보인다. ‘타인은 나에게 동의하고 순종하며 위안을 주는 존재’라는 사고방식을 가졌을 수도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누군가가 제 방식대로 행동하면 골치 아픈 사람으로 낙인찍고, 자신의 권리에 도전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감히 네까짓 것이 내 앞에서 나설 수 있어’ 하는 식이다. 공관병이 스스로 판단해 어떤 행동을 하거나 입장을 설명하려고 항변했을 때 이를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더욱 가혹하게 짓밟는 반응을 보인다.

    ‘착취 심리’도 엿보인다. ‘영원히 나를 사랑해주세요’ 하는 욕망이다. 이 경우 타인을 개별적 존재가 아닌, 자신의 연장이라고 본다. 자신보다 아래 있는 사람, 즉 저항하기 어렵거나 저항이 불가능한 사람에게는 비현실적 수준의 추종과 과도한 갑질이 이뤄진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고집하는 대로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여긴다.



    착취 심리, 마법적 사고, 동일시


    ‘마법적 사고’도 존재하는데, 이는 엄청난 왜곡과 환상이다. 즉 내가 대장이니까 ‘하늘이 내린 권력과 위대함을 주변 숭배자들이 음미할 수 있게 기회를 주자’고 상상했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거북해하거나 불편해한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를 매우 특별한 인물로 여겨 경외심을 품고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렇다면 대장이 아닌 대장 부인은 왜 갑질을 했을까. 그는 남편이 대장이므로 자신도 대장과 다름없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세간에는 남편 계급에 따라 군인 아내 사이에서도 서열이 정해진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실제로 이러한 일이 관행처럼 굳어졌다면 이 역시 공과 사의 구별이 이뤄지지 않은 불합리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은 아내의 남편에 대한 ‘동일시(identification)’ 현상을 부추겼을 것이다. 즉 남편과 자신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사람으로 여기거나, 많은 부분에서 남편을 닮아가는 것이다.

    박 대장 부부의 갑질이 과연 누구로부터 비롯됐는지 알 수 없지만, 사실 대장 혹은 장교라는 직위는 남편의 것이기에 일차적 책임은 박 대장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내가 먼저 갑질을 시작했다 해도, 이를 말리거나 자제시키지 못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르시시스트는 위협적이고 매혹적이며 실제보다 훨씬 더 멋있어 보인다. 따라서 사회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고, 때로는 너그럽게 넘기거나 영예롭게 여기기도 한다. 사회 저명인사 가운데 나르시시스트 기질을 과시하는 이가 적잖다. 일반인 가운데 그들의 나르시시즘을 흉내 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나르시시즘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경쟁 문화와 이기심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나르시시즘적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개선하려면 먼저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 노력과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가짐을 갖춰야 한다. 또한 대인관계에서 반드시 ‘주고받기’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금품이나 향응을 주고받자는 얘기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작은 편의나 도움을 받았다면 고마워하고, 나도 그를 위해 무엇인가를 줘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은 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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