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3

2017.08.30

사회

“내가 먹기 찜찜한 달걀은 남에게 팔지 말자”

살충제 달걀 파문에 자연방사형 양계 각광 수익성 있지만 판로 확보를 지원해야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8-25 16: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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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끼오~.’ 수탉의 힘찬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외부인을 경계하는 건지, 아니면 반기는 건지 수탉들은 쉼 없이 울어댔다. 여기에 일반 양계장에선 듣기 어려운 닭들의 건강한 소음이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8월 22일 찾은 강원 춘천시 오탄농장에서는 뜨거운 햇살 아래 많은 닭이 여유롭고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더운 여름 날씨였지만 농장 주인 신화자(59) 씨는 “닭들이 놀기 좋은 날”이라고 했다. 햇볕이 닭들의 원기를 북돋운다는 것이다.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산란계를 넓은 지역에 자연방사해 기르는 방식이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농장이 현저히 적어 달걀을 구하기 어렵다. 또 자연방사형으로 닭을 기르면 공간과 인력이 많이 필요한 데다 생산량이 적어 유통업계가 원하는 물량을 맞추기도 어렵다. 이에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농장에선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가 판로 확보에 도움을 줘야 자연방사형 농가가 늘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풀어 키운 닭의 달걀, 날로 먹어도 비린 맛 없어

    오탄농장은 2012년 동물복지인증을 받았다. 지금 닭 2만 마리를 기르고 있다. 이 중 4500마리는 4958㎡(약 1500평) 규모의 자연방사형 계사에서 자란다. 이 계사에서 나온 달걀은 전부 직거래로 소비자에게 개당 500원에 납품된다. 나머지 1만5500마리는 12~15마리씩 집단을 이뤄 30㎡ 남짓한 닭장의 개방형 계사에서 자란다. 이곳에서 나온 달걀은 인근 지역 마트에 납품된다.



    농장을 찾아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양계농장이 대부분 좁은 공간에서 닭들을 키우다 보니 농장 근처에만 가도 특유의 가축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래서 근처까지만 가면 쉽게 농장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탄농장은 입구에서도 가축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농장 입구에서 헤매던 발길을 잡아끈 것은 수탉들의 울음소리였다. 이 농장에선 자연 유정란을 생산하기 위해 암탉 12~15마리당 수탉을 한 마리씩 풀어놓았다. 그물로 된 마당 앞 울타리 부근에 서니 그제야 옅은 가축냄새가 느껴졌다.

    넓은 공간에서 뛰놀고 모래목욕도 할 수 있는 닭들은 외견부터 튼튼해 보였다. 닭 볏은 빳빳이 서 있었고 깃털에는 윤기가 흘렀다. 운동량이 많은 닭들이라 다리도 굵었다. 닭들은 탄탄한 다리로 흙을 헤집거나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풀을 쪼아댔고, 밤과 이른 아침에는 계사에서 알을 낳거나 잠을 잔다. 오전 8시 계사가 열리면 닭들이 마당으로 나왔다 저녁 모이가 나올 무렵인 오후 6시 다시 계사에 들어오는 식이다.

    신씨는 “닭을 풀어 키우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뭐 더 볼 게 있다고 이렇게 먼 거리를 오셨느냐”고 말하며 웃는 얼굴로 기자를 반겼다. 그는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항상 달걀 하나씩을 권한다. 넓은 공간에서 충분히 움직이며 자란 닭이 낳은 달걀은 시중 달걀과는 맛이 다르다”면서 달걀을 건넸다. 달걀 윗부분을 살짝 깨 내용물을 입에 털어 넣었다. 날달걀인데도 비린 맛이 전혀 없었다.

    자연방사형 사육은 자동화 사육에 비해 손이 많이 간다. 일반 양계농장의 경우 달걀을 자동으로 거둘 수 있지만, 자연방사형 농장에서는 닭장에 들어가 일일이 달걀을 꺼내야 한다. 게다가 닭들이 깔고 앉는 볏짚을 수시로 갈아줘야 하고, 가끔 방사장을 탈출한 닭들을 잡아오는 일도 고역이다.

    신씨는 “우리 아저씨(김구봉 오탄농장 대표)의 신조가 ‘내가 먹기 찜찜한 달걀은 남에게 팔지 말자’다. 그래서 매일 닭에게 지극정성이다.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좋은 달걀을 보내줘 감사하다는 고객의 전화를 종종 받다 보니 이제 그 마음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최근 오탄농장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닭을 자연방사형으로 기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문이 폭주해 쉴 틈이 없기 때문. 신씨는 “근래 동물복지인증 달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재고 물량이 없다. 원래 팔리지 않고 남은 달걀은 하루 정도 창고에 보관해왔지만 요즘은 창고 문을 열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밝혔다.

    개방형 계사의 상태도 좋았다. 계사의 창문과 입구가 열려 있어 닭들이 밖에서도 노는 모습이 보였다. 자연방사가 아니지만 비교적 넓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자라는 만큼 닭들은 건강했다. 외견상으로는 자연방사형 산란계와 개방형 계사의 산란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신씨는 “개방형 닭장에서 나온 달걀도 자연방사형 닭들이 낳은 달걀에 비해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방사형 계사에서 자란 닭들이 개방형 닭장에서 자란 닭들보다 기운이 더 좋다. 개방형 닭장 수탉들이 자연방사형 계사의 수탉들에게 꼼짝을 못 한다”고 말했다.



    판로만 개척하면 자연방사 양계도 높은 수익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양계농가는 케이지 사육을 선택한다. 생산성 측면에서는 케이지 사육을 하는 농가가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농가에 비해 훨씬 유리하기 때문. 충북에서 개방형 계사 양계농장을 운영하는 김모(44) 씨는 “현재 닭 9000마리를 개방형 계사에서 기르고 있는데 이 규모의 땅에 대량사육 양계장을 지으면 최소 20만 마리를 사육할 수 있다. 따라서 달걀을 아무리 비싸게 판다 해도 안정적인 수익을 내려면 케이지 사육을 하는 편이 더 낫다”고 밝혔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팀이 지난해 발표한 ‘산란계 동물복지인증 농가의 생산실태 조사’ 논문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개방형 계사 농장의 달걀 가격은 개당 200~250원 선. 같은 시기 일반 달걀의 평균 납품가가 110원 선임을 감안하면 들이는 노력에 비해 동물복지인증 달걀의 납품 가격이 높은 편은 아니다.

    좋은 달걀을 생산해도 제값을 받지 못한 이유는 유통구조 때문이었다. 경기 인근 자연방사형 양계농장 관계자는 “동물복지인증을 받았다는 것은 일단 대형유통상과 거래를 포기했다는 의미다. 대형유통상과 거래하려면 산란계를 최소 20만 마리 이상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농장은 많아야 닭 2만~3만 마리를 기를 수 있다. 결국 지역 중소 규모 유통상을 찾아가게 되는데 거기서 제시하는 가격이 200~220원 선이다. 대부분 농가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헐값에 달걀을 넘기게 된다”고 밝혔다.

    오탄농장은 소비자 직거래에서 활로를 찾았다. 물론 처음부터 수익이 난 것은 아니다. 8년간 농장을 운영했지만 만족할 만한 수익이 나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언론보도 등을 통해 농장이 알려지면서 직거래 양이 크게 늘어난 것. 직거래로 소비자는 납품가에 달걀을 구매할 수 있으니 개당 500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달걀이 잘 팔렸다.

    신씨는 “적정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유통 경로만 있다면 달걀 생산량이 적어도 수익을 낼 수 있다. 지금 딸 내외가 함께 일하고 있다. 서울에서 월 300만~400만 원씩 받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와 농장 일을 하는데 수입은 오히려 더 나아졌다”고 밝혔다. 조광호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도 “동물복지인증 달걀의 단위당 생산비는 일반 농가보다 1.16배 높지만 산란계 마리당 순수익은 3.1배 높아 투자한 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닭은 평균 1년가량 산란이 가능하다. 반면, 건강 상태가 좋은 동물복지인증 농장의 닭은 길게는 3년까지 산란을 할 수 있다.

    산란계는 대부분 가로세로 24cm의 닭장이 아파트처럼 쌓여 있는 자동화 농장에서 사육된다. 닭장 앞으로 물과 사료가 자동 공급되며, 실내온도도 25도 내외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생존과 산란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만 갖춰진 닭장에서 산란계들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알을 낳는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자동화 농장의 닭들은 자연방사형 농장에서 자란 닭들에 비해 건강 상태가 나쁘다. 게다가 좁은 공간에 밀집돼 있다 보니 닭 한 마리가 전염병에 걸리거나 이, 진드기 같은 해충이 생기면 빠르게 퍼진다. 해충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닭이 폐사하거나 다른 전염병에 걸리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그래서 자동화 사육방식을 채택한 양계농가에서는 살충제가 필수품이다.



    케이지 밖 닭들에게 살충제는 필요 없다

    정부에서는 양계농가의 경우 특정 약물에 한해 살충제 사용을 허가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농가가 이를 지키지 않고 허가되지 않은 피브로닐, 비펜트린 성분이 함유된 살충제를 사용하다 이번처럼 살충제 달걀 파동이 발생한 것. 김재홍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닭이 해당 성분이 든 살충제를 먹거나 피부에 살충제가 노출될 경우 이 성분이 지방 조직에 축적된다. 이 중 소량이 혈류를 타고 산란하는 장기, 난황, 달걀흰자 쪽으로 갈 개연성이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번에 문제가 된 살충제는 닭 진드기를 제거하려고 사용했는데, 지난여름과 올여름 기온이 크게 상승하면서 닭 진드기의 증식 속도가 과거에 비해 빨랐던 것으로 보인다. 즉 기존 약이 효과가 없을 정도로 진드기의 증식이 워낙 빠르고 내성까지 생겨 살충 효과가 떨어지자 불법 살충제를 사용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닭을 자연방사형으로 기르면 살충제를 거의 쓸 필요가 없다. 피부에 붙은 해충을 닭들이 모래목욕으로 스스로 떼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동량이 많고 사료 외 자연에서 먹이를 찾아 먹다 보니 닭의 면역력이 강해져 잔병치레도 줄어든다.
     
    정부에서도 자연방사형 사육의 장점을 확인하고 인증 제도를 도입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2011년부터 자연방사 및 그에 준하는 환경의 양계농장에 동물복지인증을 도입했다. 동물복지인증을 받으려면 ㎡당 9마리 이상 닭을 기르지 않고 마리당 15cm 이상 홰를 확보해야 한다. 이 밖에 30여 개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 비로소 인증을 받을 수 있다. 현재 동물복지인증 농가는 전국에 89곳뿐이다. 여기서 나온 달걀은 정부의 살충제 달걀 관련 전수조사에서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다. 



    유통망 확보 위한 세부 정책 만들어야

    정부는 이번 살충제 달걀 파동을 계기로 동물복지인증 농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8월 2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참석해 “동물복지형 농장의 비중을 올해 8%에서 2025년 30%로 확대하고 앞으로는 동물복지형 농장만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정작 동물복지인증 양계업계의 반응은 차갑다. 전남의 한 동물복지인증 농장 관계자는 “동물복지인증 양계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초기 유통 판로 확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양계장이 동물복지인증 달걀을 지역마트에 적정 가격을 받고 유통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거나 공립학교 등 급식시설에서 동물복지인증 달걀을 일정량 사용하게 하는 등 세부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팀도 지난해 논문에서 ‘동물복지 계란에 대해 소비자가 구매 의사를 보이기는 하나 일반 계란과 가격 차이가 커 실제 판매가 저조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동물복지인증 농장의 확대가 달걀 값 인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물복지인증 달걀의 가격은 일반 달걀의 2배 수준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공시에 따르면 8월 기준 달걀 개당 소비자가는 233원. 하지만 동물복지인증 달걀은 평균 458원이다. 양계업계 관계자는 “모든 국민이 개당 500원짜리 달걀을 사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물복지인증 농장의 단순 확대보다 달걀 가격 안정화 등 다양한 방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높은 달걀 수요도 동물복지인증 농가 확대의 걸림돌이다. 대한양계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인당 연간 달걀 소비량은 254개로, 우리나라 인구가 520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하루 평균 달걀 소비량은 3600만 개 수준이며 하루 평균 4300만 개 달걀이 공급됐다. 동물복지인증 농가가 자동화 시스템을 채용한 농가에 비해 달걀 생산량이 현저히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달걀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화 양계농장 관계자는 “동물복지인증 기준을 충족하는 농가가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동물복지인증 농가 위주의 생산 방식으로는 달걀 수요를 다 소화하기 어렵다. 달걀 수급량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자동화 양계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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