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3

2017.08.30

사회

의료용 응급 헬기는 왜 중랑천변에 내리나

수요 못 따라가는 헬기장 인프라 … 촌각 다투는 생명 구조 가로막는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8-25 16:13:49

  • 글자크기 설정 닫기
    8월 22일 서울에는 장대비가 내렸다. 잠시 빗줄기가 멈추자 서울 중랑천변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하나 둘 나타났다. 자전거도로 건너편 둑길에 차를 대고 천변을 바라봤다. 바닥에 선명한 ‘H’ 마크. 헬기장이었다. 소방방재청(현 소방청) 119구조구급국장 등을 지낸 ‘소방맨’ 문성준 전 한국소방산업기술원장이 얘기한 바로 그곳이다.

    “중랑천에 딱 붙어 헬기장이 있어요. 비가 많이 내리면 범람 위험이 있는 곳이죠. 날이 좋을 때는 또 운동하는 사람이 많아 헬기 이착륙이 어렵습니다. 소방대원이 출동해 주변 통행부터 차단해야 해요. 구급차가 바로 진입할 수 없는 위치라 환자를 들것에 싣고 차 있는 데까지 옮겨야 하는 것도 난점이고요.”

    문 전 원장이 지적한 모든 문제가 한눈에 들어왔다. 도봉산과 가까운 이 헬기장은 서울시 119특수구조단 소방항공대(서울소방항공대)가 등산 도중 부상한 사람을 이송할 때 자주 착륙하는 곳이다. 환자는 여기서 구급차로 옮겨진 뒤 의료 처치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다시 이송된다.

    “예전에 모 VIP가 강원 속초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적이 있어요. 즉시 응급 처치해 위기를 넘기고 헬기에 태워 서울까지 옮겨왔는데, 정작 문제는 그다음이었죠. 헬기가 서울 정릉 군용헬기장에 내렸거든요. 환자가 구급차 타고 병원에 들어온 뒤 보니, 속초~서울 이동시간보다 정릉~서울대병원 이동시간이 훨씬 더 걸렸더군요.”

    신상도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의 얘기다. 이 VIP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행운이 허락될지는 미지수다.





    헬기가 바로 병원에 갈 수는 없을까

    응급구조의 ‘골든아워’는 사고 발생 후 1시간이다. 이 안에 전문 의료 처치를 받으면 환자 대부분이 목숨을 건진다는 뜻이다. 그 후부터는 생존 확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 때문에 의료선진국에서는 ‘골든아워 사수 도구’로 헬기를 널리 사용한다. 헬기는 KTX에 맞먹는 속도(시속 300km 안팎)로 하늘을 날고 긴 활주로 없이도 이착륙이 가능하다. 언제 어디서나 환자를 태우고 병원으로 직행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헬기가 떠도 골든아워를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헬기장 인프라 때문이다.

    “경북대병원은 2012년 권역외상센터로 선정되고도 아직까지 헬기장을 못 만들었잖아요. 인천지역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는 가천대길병원(길병원)도 헬기장 문제로 오랫동안 고생했고요. 한국 현실이 그래요. 큰 병원이라도 헬기가 뜨고 내리는 게 쉽지 않죠.”

    한 응급구조 전문가의 귀띔이다. 우리나라에서 헬기를 이용한 환자 이송에 관심이 높아진 건 2011년 이른바 ‘아덴만 여명작전’ 이후다. 당시 총상으로 사경을 헤매던 석해균 선장을 구해낸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골든아워를 강조했다. 이후 정부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급의료법)을 개정해 전국 각지에 석 선장 같은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권역외상센터’를 짓기로 했다. 이를 유치하려는 병원은 반드시 권역외상센터와 연결된 헬기장을 갖춰야 한다. 의료진과 의료시설이 아무리 훌륭해도, 응급환자를 즉시 이송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으면 예산을 지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지난 5년간 전국 16개 병원이 이 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권역외상센터가 정식 개소한 곳은 9개에 불과하다.

    5년째 사업이 표류 중인 경북대병원의 경우 앞서 언급했듯 헬기장이 발목을 잡고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초 경북대는 병원 옥상에 헬기장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대구시와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혔다. 재산권 침해, 도심 정비 사업 차질 등이 이유였다. 헬기장이 생기면 헬기 진입구역과 헬기장 반경 일정 범위 내 건축물 높이가 제한된다. 경북대병원은 이후 대구스타디움 등 인근 장소를 헬기장으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려 했지만, 이번에는 골든아워 엄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보건복지부 측 반대에 가로막혔다. 원칙대로라면 권역외상센터는 선정 후 3년 안에 개소해야 한다. 그러나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는 경북대병원에 헬기장이 완공되기를 기다리는 상태다.

    인천 길병원이 헬기장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 시작한 건 이보다 더 오래됐다. 길병원은 2011년 보건복지부가 의료 환경이 취약한 도서·산간지역 환자 이송을 위해 도입한 ‘닥터헬기’ 시범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 헬기는 당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등 서해안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주택가와 가까운 길병원 옥상 헬기장에서 헬기가 뜨고 내릴 때마다 소음, 먼지, 진동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제기돼 운용에 어려움이 적잖았다는 후문이다. 닥터헬기 보관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이후 이 헬기는 병원 인근의 인천시청 운동장, 좀 더 떨어진 인천 SK행복드림구장 등을 이착륙장으로 사용하다, 끝내는 14.5km 떨어진 김포공항 헬기장까지 밀려났다. 지금은 직선거리가 그 3분의 1 정도인 인천 부평구 한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그 안에 둥지를 튼 상태다.

    문성준 전 원장은 도봉소방서장 시절 이 문제를 풀 방법을 고민하다 소방서 옥상에 헬기장을 만들었던 인물이다. 그는 “도봉소방서는 산악지역 응급환자 이송과 산불 진압 지원 등으로 소방헬기 사용 빈도가 높았다. 그런데 매번 중랑천변, 덕성여대 운동장, 군용 헬기장 등 이착륙 장소를 옮기느라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2006년 12월 도봉소방서 옥상에 전국 소방서 가운데 처음으로 헬기장이 건설됐다. 이후 한동안 이 헬기장은 봄가을 등산철이 되면 하루에도 몇 차례씩 헬기가 오갈 만큼 자주 사용됐으나, 2015년 이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이 이유는 당시 내려온 한 공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닥터헬기도 내릴 곳이 없다

    ‘도봉소방서 옥상 헬기장은 소음 등의 민원발생으로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을 지양하고 서울창포원 공원 인근 중랑천변 헬기장을 적극 이용할 것을 알려드리니, 각 부서에서는 업무에 참고하기 바랍니다.’

    도 봉소방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근처 대형쇼핑몰과 고층아파트 등에서 민원이 발생했고, 해결책을 찾다 중랑천변 헬기장을 확장, 보수해 이용하게 된 것이 맞다”고 밝혔다. 다만 “중랑천변 헬기장이 소방서와 매우 가까운 데다 이착륙 환경이 옥상에 비해 더 쾌적해 헬기장 변경으로 구조에 어려움이 생긴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지금도 옥상 헬기장을 꾸준히 관리 중이라 필요시 언제든 헬기 이착륙에 사용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문 전 원장은 “구급대원이 상주하는 소방서 헬기장에서 환자를 받고, 옥상에서 지상까지 이어지는 환자 이송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즉시 구급차로 옮기는 것에 비하면 아무래도 시간이 더 들지 않겠나”라며 아쉬워했다.

    현재 우리나라 상공을 나는 의료용 헬기는 닥터헬기와 소방헬기 두 종류다.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는 닥터헬기는 길병원을 비롯해 전남 목포한국병원, 강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경북 안동병원, 충남 단국대병원, 전북 원광대병원 등 전국 6개 병원을 중심으로 운행 중이다. 소방헬기는 중앙119구조본부와 각 시도 지방자치단체에 있는 소방항공대가 운영한다. 서울의 경우 김포공항에 있는 서울소방항공대 본부에 헬기를 두고 유사시 각지로 출동하는 방식이다. 서울소방항공대 소속 한 헬기 조종사는 “신고를 받으면 서울 시내 어디든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이송체계만 잘 갖춰지면 골든아워를 지키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그가 말하는 ‘이송체계’가 바로 헬기에 태운 환자를 무사히 의료진에게까지 연결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우 리나라에는 ‘민원’ 외에도 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적잖다. 지난해 대전에서는 심 정지 환자를 태운 의료용 헬기가 병원 옥상에 착륙하고도 환자를 의료진에게 인계하지 못해 결국 환자가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등산 중 갑자기 쓰러진 이 환자는 헬기를 타고 즉시 해당 병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병원 관계자가 ‘병원 설비가 강풍에 취약하다. 헬기 프로펠러를 멈추지 않으면 환자를 못 받는다’고 하는 바람에 바로 응급실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헬기는 병원에서 다소 떨어진 정부대전청사로 기수를 돌려 착륙한 뒤 대기 중이던 구급차에 환자를 실어 해당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러나 그사이 환자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항공응급의료의 나아갈 길’을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도 이러한 환자 이송체계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전문가들은 이자리에서 “구급차와 헬기 사이 환자 인계가 어려워 소방대원이 헬기를 부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헬기가 학교 운동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시민의식만 탓하면 문제 풀리나”

    신상도 서울대 교수는 “여러 이유로 닫혀 있는 대형병원 옥상 헬기장의 이용률을 높이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서울지역에서 유일하게 중증외상센터를 갖춘 국립중앙의료원은 옥상에 헬기장이 있는데도 이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등 주요 시설을 중심으로 일정 범위 내 설정된 비행금지구역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립중앙의료원이 권역외상센터로 선정되고도 아직 본격 운영을 시작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신 교수는 “서울대병원 역시 비행금지구역에 자리한다는 이유로 헬기장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병원이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이 발생할 경우 환자 이송과 치료를 담당해야 하는 ‘재난거점병원’으로 지정돼 있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신 교수에 따르면 관련 전문가들은 지난 정부 시절 수차례 이 문제를 지적했다. 등록된 의료용 헬기만이라도 주요 병원 옥상 헬기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정부가 지정한 재난거점병원은 전국적으로 40곳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갖가지 이유로 헬기 이착륙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사고가 발생할 경우 환자 이송의 손발이 묶일 수 있는 셈이다.

    서울소방항공대 소속 한 조종사는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북한산 인수봉 절벽에 매달린 환자를 구하려고 헬기를 바싹 붙이면서 ‘이러다 나와 구급대원들이 먼저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출동하다 보면 그렇게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상황이 온다. 그런데도 헬기 조종대를 잡는 건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항공 의료 인프라가 개선돼 더 많은 환자가 아까운 생명을 잃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현대 헬기 제작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 헬기 제작자 이고르 시코르스키는 생전에 일반 비행기와 헬기를 비교하며 “헬기는 각종 사고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인간 비행의 역사에 가장 영광스러운 페이지를 차지한다”고 평했다. 이런 헬기를 100% 활용하려면 필요한 때 필요한 장소에서 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국종 교수는 “의료선진국 시민은 헬기의 기능을 잘 알고, 그 때문에 주거지 주변에서 헬기가 이착륙해도 ‘생명을 구하는 일’로 여기며 불편을 감수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헬기의 필요성과 가치에 대한 이해가 더 넓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