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2

2017.08.23

인터뷰

“대한민국 의료, 언제까지 ‘돌격 앞으로!’만 외칠 건가”

이국종 |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8-18 17: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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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밤 휴대전화 수신음에 잠이 깼다.

    ‘오늘 먼 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중략) 환자는 살았습니다. 외과 이국종 배상.’

    8월 15일 오전 1시 47분 도착한 문자메시지다.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머리로 한동안 ‘이게 무슨 소린가’ 생각했다. 기억 저편에서 수술실로 걸어 들어가던 이국종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아주대 의대 교수·사진)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그를 인터뷰하러 갔었지.’

    비로소 그날 있던 일이 하나둘 눈앞에 흘러가기 시작했다.





    “미안합니다, 지금 환자가…”


    이국종 교수는 …1969년생. 아주대 의학박사. 외과전문의. 미국 UC샌디에이고와 영국 로열런던병원에서 외상외과 연수를 받았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 구출 작전 당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후 열악한 국내 중증외상환자 치료 시스템 개선에 앞장섰다. 현재 아주대병원 외상외과장이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이다. 그의 사무실에는 ‘When you do your best, everyone benefits’(당신이 최선을 다하면 모두가 이익을 얻는다)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아주대병원을 방문한 응급의학 전문가 제임스 던퍼드 UC샌디에이고 교수가 이 교수를 격려하며 써준 메시지다.

    이 교수를 만난 건 개소한 지 갓 1주년 된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외상센터)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이 교수가 그동안 수많은 중증외상환자의 생명을 구한 공로로 최근 ‘포니정 혁신상’을 받게 된 데 대해서도 물어볼 참이었다.

    이 교수는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 이후 사경을 헤매던 석해균 선장을 극적으로 살려낸 바로 그 의사다. 당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한가운데서 그는 줄기차게 ‘우리나라 외상환자 진료 실태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 결실로 이듬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급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언론이 ‘이국종법’이라고 부른 이 법에 따라 외상센터가 건립되기까지는 그 후로도 한참이 더 걸렸다. 외상센터 1주년 기념식이 7월 12일 열렸으니,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교수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응급환자가 수시로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외상은 물리적 압력으로 인한 신체 손상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우리 주위에서 발생하는 사고가 대부분 외상을 유발한다. 이 교수와 이야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벽에 페인트를 칠하다 추락한 70대 노인이 외상센터로 실려 왔다. 이 교수와 강병희 교수, 허요 교수 등 외상센터 의료진이 곧 환자에게 달라붙었다. 기록을 보니 사고가 접수된 게 오후 3시 5분, 환자가 외상센터에 도착한 건 3시 13분이었다.

    외상센터 트라우마 베이(Trauma Bay·외상소생실) 침대에는 엑스레이(X-ray) 촬영 장비가 설치돼 있다. 구급차에 실려 온 환자가 이 침대로 옮겨지자마자 의료진은 즉각 장기를 촬영해 손상 부위와 정도를 살폈다. 의료진이 방사선 노출에 대비해 보호복을 입고 있는 게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리로 오는 환자는 즉각 처치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전문의가 최대한 빨리 상태를 파악하고, 필요하면 즉시 수술에 돌입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죠.”

    이 교수가 설명했다. 그가 기자 쪽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했다는 건 환자 상태가 분초를 다툴 만큼 급박하지는 않다는 걸 의미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사람은 참 쉽게 죽는다. 체중의 2%가량만 피를 쏟아도 생명이 위험해진다. 체중 70kg인 건장한 남자도 1.5ℓ 출혈에 사경을 헤매게 된다.

    “그 정도 피를 흘리는 데 얼마나 걸릴 거 같아요? 생각보다 훨씬 금세입니다. 그래서 피를 흘리는 환자는 되도록 1시간 안에 의사를 만나야 해요. 전문가들이 사고 후 1시간 이내를  ‘골든아워(Golden Hour)’라고 부르는 이유죠.”

    이 교수의 말이다. 그가 죽음 문턱에서 살려낸 환자 가운데는 2t짜리 철문에 깔린 이가 있었다. 달리는 승용차 선루프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다 사고를 당해 차 밖으로 튕겨나간 이도 있다. 이들은 뼈가 다 으스러지고 온몸의 장기가 터졌지만 죽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들처럼 운이 좋지 못한 환자가 매우 많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이 35.2%에 이른다. 미국(15%) 등 선진국에 비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좀 더 많은 이를 ‘예방 가능한’ 죽음에서 구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교수와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는데, 이번엔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환자를 보내겠다는 연락이 왔다. 외상센터에는 중환자실 40병상, 일반실 60병상이 있다. 일반 병원은 중환자실 비율이 10%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곳에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환자가 오면 전원(轉院)을 하는 것이다.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들

    물론 사회 저명인사나 고관대작이 그 대상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 교수는 “얼마 전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공직자가 서울 유명 병원을 거쳐 외상센터로 넘어온 일이 있긴 하다”고 운을 뗐다. 알고 보니 환자가 사고 충격으로 의식을 잃은 데다 동행도 없어 해당 병원이 그의 ‘신분’을 확인하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고 한다. 이 같은 예외 상황을 제외하면 이른바 ‘VIP’는 보통 서울 유명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반대로 돈 없고, ‘빽’ 없고, 유명 병원에 ‘아는 의사’ 한 명 없는 사람은 골든아워 안에 병원에 도착하고도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할 수 있다.

    “개복하면 바로 어레스트야! 잘못하면 우리가 덤터기 쓰고 병원은 송사에 걸린다고!”

    2013년 방송된 KBS 2TV 드라마 ‘굿 닥터’에서 외과 과장이 신참 의사에게 한 말이다. ‘어레스트’는 심정지(cardiac arrest)를 뜻하는 의학 용어다. 당시 드라마에서 ‘어레스트 위험’에 처한 환자는 이미 5개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당한 뒤 해당 병원까지 오게 된 어린이였다. ‘뭘 모르는’ 의사가 그 아이를 수술하겠다고 나서자 과장이 빨리 다른 병원으로 보내라고 종용한 것이다. 주인공은 “그렇다고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낼 순 없습니다. 그게 무서워서 응급환자 수술을 거부합니까”라고 맞섰다.

    이 ‘픽션’은 지난해 9월 전북에서 더 참혹한 ‘현실’로 모습을 드러냈다. 교통사고를 당한 두 살 어린이가 13개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당한 뒤 끝내 사망한 것이다. 이 아이는 사고 7시간 만에 ‘돌고 돌아’ 아주대병원에 도착했지만 손쓰기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이 교수가 외상센터 소속 간호사와 “(대형병원에서 보낸다는 그 환자) 우리가 받아야지”라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자, 당시 여러 언론이 떠들썩하게 보도했으나 어느새 잊힌 이 사건이 떠올랐다. 그때 정부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중증외상환자는 여전히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한다. 그중 한 명이 몸을 의탁하게 될 외상센터 중환자실로 걸음을 옮겼다.

    고층건물에서 추락하고, 차에 받히고, 흉기에 찔린 이들이 각종 의료장치를 주렁주렁 매단 채 40개 침대에 빼곡히 누워 있었다. 마지막 수술일이 8월 9일로 기록된 한 환자는 이곳에 들어온 뒤 지금까지 수술을 네 번 받았다고 했다. 위기 상황은 넘겼지만 이 남자가 제 발로 걸어 병실 문을 나설 수 있을지, 그러기까지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이들로 이미 중환자실이 가득 찼는데, 서울에서 넘어올 환자를 어떻게 또 받는다는 걸까. 이 질문에 이 교수는 “새로 환자가 오면 그동안 여기 있던 환자 가운데 상대적으로 상태가 나은 사람을 일반 병실로 옮긴다. 일반 병실도 꽉 차면 빈자리가 있는 다른 병동의 협조를 얻어 그쪽으로 보낸다. 쉽지는 않지만 어쩌겠나”라고 했다.



    ‘이국종법’ 이후 5년

    이른바 ‘이국종법’으로 외상센터에 대한 정부 지원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주대 외상외과는 1년에 수억 원씩 적자를 냈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돈 안 되는’ 환자가 늘고 수익은커녕 병원 적자만 커지는데도 이 교수는 계속 환자를 받았다. ‘더는 못 버티겠구나’ 생각할 무렵 ‘석 선장’이 살아났다.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덕에 외상외과 의사로서 생명이 좀 더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제 그 시간조차 얼마 남지 않았는지 모른다.

    이 교수는 이날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지쳤다는 걸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한 고위 공무원이 그가 없는 자리에서 “이 교수는 좀 안타까워. 본인만 가만히 있으면 에브리보디가 해피할 텐데 그걸 몰라”라고 하더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도 한다. 그를 둘러싼 주변 시선이 차가워지는 사이, 이 교수의 몸과 마음도 축났다. 그에 따르면 외상센터 후배 의사 가운데 한 명은 1년에 네 번밖에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간호사 사직률은 연간 35%에 이른다. 이 교수도 과로와 스트레스로 왼쪽 시력을 거의 잃었다. 그는 “이건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정부에서 이번에 의료 보장성 확대를 얘기하는 걸 보고 뭔 소린가 싶었어요. 지금 의료 현장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잖아요. 그런데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건 전방 병사들이 온몸을 던져 간신히 전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에요. 거기에 보급을 강화할 생각은 안 하고 ‘돌격 앞으로!’만 외치니, 그게 되겠습니까.”



    ‘The Closer, The Better Outcome’

    목소리를 높이던 이 교수가 시계를 보더니 “아, 그런데 저녁은 드셔야죠”라며 말을 멈췄다. 어느새 오후 6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잠시 후 도시락이 배달됐지만, 채 포장을 뜯기도 전  다시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 어. 가야지.”

    경기 안성에서 40대 남자가 지게차에 깔렸다는 소식이었다. 이날 수원에는 굵은 비가 내렸다. 그러나 그는 헬기를 타고 환자에게 날아가기로 했다. 인터뷰는 다시 중단됐다. 이 교수는 그날 수차례 되풀이한 “미안합니다만, 지금 환자가…”라는 말로 양해를 구하고는 헬멧과 ‘플라이트 서전(Flight Surgeon)’이라고 적힌 형광 점퍼를 챙겨 들었다. 이번 발걸음은 병원 옥상 헬기장으로 향했다.

    이 교수는 한국 의료계에 중증외상외과라는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캠퍼스(UC샌디에이고) 의대에서 이 분야를 배웠다. 당시 그에게 의사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제임스 던퍼드 교수는 “샌디에이고 땅 구석구석 어디 한 곳 내가 착륙하지 않은 데가 없다”고 할 만큼 수많은 헬기구조 경험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군의관 출신으로 이 교수에게 큰 영향을 미친 브루스 포텐자 교수도 늘 그에게 ‘The Closer, The Better Outcome’(의사가 환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그분들에게서 외상외과 의사는 병원에서 환자를 기다릴 게 아니라 사고가 발생한 현장으로 최대한 빨리 달려가야 한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그래야 ‘골든아워’를 지킬 수 있고, 환자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의료장비가 갖춰진 헬기는 응급수술이 가능한 ‘움직이는 병원’이다. 이 교수가 한 해 수백 번씩 헬기를 타고 환자에게 날아가는 이유다.

    그는 최근 한 대중강연에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촬영 영상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사고 현장에서 가까운 전남 목포 팽목항에 구조헬기가 줄지어 착륙해 있는 모습이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그날 줄잡아 5000억 원어치가 넘는 구조헬기가 그렇게 땅에 ‘앉아’ 있었다.

    “당시 해경이 구조헬기 이륙을 불허했거든요. 헬기가 뜨기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죠. 하지만 많은 사람이 배에 갇혀 있는데, 물속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아지는데 구조대원 위험할까 봐 구조를 포기한다는 게 맞는 건가요.”

    이 교수가 분통을 터뜨리며 한 얘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젠 지쳤다’며 고개를 떨어뜨리던 그의 눈빛에 금세 분노가 가득 찼다. 그리고 이내 그는 이륙 준비를 끝내고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를 내는 헬기에 몸을 실었다. 이 교수가 휴대전화를 받은 건 오후 6시 30분, 의료장비가 든 백을 멘 채 헬기에 몸을 싣고 이륙한 건 6시 48분이었다. 헬기 출발과 동시에 지상에서는 환자를 맞을 준비가 시작됐다. 허요 교수와 간호사 등 외상센터 의료진 6명이 산소호흡기가 장착된 침대를 헬기장 옆으로 옮긴 채 대기했다.

    “오늘도 저녁 먹기는 글렀어.”

    누군가 웃음 섞인 투정을 내놓았을 때야 비로소 이들에게는 이것이 ‘긴 밤’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7시 11분 하늘 먼 곳에서 헬기가 되돌아오는 게 보였고, 이 교수와 함께 도착한 환자는 즉시 지상 의료진에 둘러싸여 엘리베이터로 옮겨졌다. 이 남자가 트라우마 베이 침대에 눕혀진 건 7시 16분이다. 이때부터 트라우마 베이는 기자가 막 외상센터에 도착했을 때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 됐다. 건물에서 추락한 70대가 도착했을 때처럼 의료진은 다시 환자에게 달라붙었고, 이 교수는 손가락에 그 환자의 피를 묻힌 채로 헬기에서 진행한 응급 처치 내용을 브리핑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진단 결과 이번 환자는 응급수술을 해야 할 상황으로 판명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가 직접 수술실에 들어가기로 했다.

    “수술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같은 질문은 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환자 경과를 관찰하고 철저히 계획해 진행하는 일반외과수술에서도 당초 짐작과 다른 상황이 펼쳐지는 일이 부지기수 아닌가. 막 부상당한 환자를 실어온 상황에서, 일단 배를 열어 출혈을 잡고 망가진 장기를 꿰매 어떻게든 그가 생의 끈을 다시 붙들도록 해야 하는 외상외과 의사가 수술 시간을 짐작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서민 의료를 위한 ‘골든아워’

    수술실 문 앞에서 이 교수와 급하게 인사를 나눴다. 아까 그와 함께 먹으려 했던 도시락엔 차마 손을 댈 수 없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이날 외상센터에 실려 온 환자가 하나같이 평범한 서민이었다는 생각이 났다. 한 명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건물 벽에 페인트를 칠했고, 다른 한 명은 서울 유명 병원에서 버티지 못했으며, 또 한 명은 지게차에 깔렸다. 이 교수가 “외상센터야말로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라고 강조한 게 실감났다.

    그리고 이튿날 오전 1시 47분, 그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이 교수가 지난 5시간여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 내내 수술실에 붙어 있었든, 아니면 예고 없이 들이닥친 또 다른 환자와 씨름했든, 그는 그제야 ‘(안성) 환자는 살았습니다’라는 소식을 전할 여유를 찾은 것이다.

    “이렇게 오래는 못 갈 거예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러다 헬기에 올라타던, 수술실로 들어서던 이 교수의 모습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에게 끝내 1주년 된 외상센터의 성과를 묻지 못했다. ‘포니정 혁신상’ 수상 소감도 듣지 못했다. 외상외과 의사로서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골든아워’가 끝나기 전 진짜 서민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만들 수 있을지 물어야 할 질문만 더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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