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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역사 교과서 논쟁

완강한 반대 여론에 국정화 추진 난항

“좌편향 교과서 수정 필요” vs “친일·독재 미화 시도” 팽팽한 여론전

완강한 반대 여론에 국정화 추진 난항

완강한 반대 여론에 국정화 추진 난항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9월 1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항의 집회를 벌였다.

지난주 국회 국정감사의 최대 화두는 바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였다. 여당 주요 인사들이 지난해부터 공개석상에서 군불을 지펴왔던 교과서 국정화 이슈는 ‘추석 전까지 국정화 결정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최근 보도 이후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여론의 반대가 거세 정부가 국정화 의지를 관철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과서는 크게 국정 교과서와 검인정(검정, 인정) 교과서로 나눌 수 있다. 국정 교과서는 국가에서 직접적으로 교과서 저작에 관여해 그 내용 등을 결정한다. 검인정 교과서는 민간 주도로 만드는데, 검정 교과서의 경우 국가가 정한 ‘편찬상의 유의점’에 따라 민간 출판사가 교과서를 개발하고 국가기관의 검정 심사를 통해 교과서로서의 적합성을 검증받는다. 인정 교과서는 민간에서 개발한 도서를 교육부 장관과 각 지역 교육감의 승인을 받아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한국사 교과서는 광복 이후 검인정 제도를 지속해오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4년 국정제를 도입했다. 국정화 이전까지 한국사 교과서는 중학교용 11종, 고등학교용 11종이 있었으나 국정화 이후 1종의 국정 교과서로 통일됐다.

‘정치 편향’ 논란이 국정화 추진으로 이어져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는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 유지됐다. 그러나 5·16군사정변을 비롯한 현대사에 대한 평가를 두고 국정 교과서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근현대사’를 한국사에서 분리하면서 검정제를 적용했다. 근현대사 외 한국사는 2010년에서야 검정제로 돌아왔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 이후로는 중학교 9종, 고등학교 8종이 사용되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의 시작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교학사에서 발행한 국사 교과서에 대해 일제 식민통치와 친일 행각,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부분이 지적되면서 ‘우편향’ 논란이 일었고, 오류가 많아 교과서로 부적합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여론 악화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던 학교들이 채택을 철회하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여기서 다른 국사 교과서의 ‘좌편향’을 지적해왔던 여당이 내놓은 카드가 바로 ‘국정’이었다. 2014년 1월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최경환 부총리는 교학사 교과서로 인한 ‘불필요한 논란’을 없애야 한다며 국정제 재도입을 언급했다.

“다양한 시각을 가진 교과서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한 교과서 검정 제도로 지나친 좌편향 한국사 교과서밖에 없다는 논란이 있어왔다. 검정 제도가 오히려 국민적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되고 불필요한 논란을 확대 생산한다면 국정 교과서로 다시 돌아가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교육부 또한 2014년 1월 13일 새누리당과의 당정협의회에서 2014년 6월 말까지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에 대한 개편안을 내놓기로 협의했다. 그러나 6월 나오기로 했던 개편안은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이후 다시 발표했던 10월까지도 나오지 못한 채 무산됐다.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국정 교과서 문제는 올해 중순부터 다시 점화됐다. 7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미국 방문 중 교민과 대화에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8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교실에서부터 역사에 의해 국민이 분열되지 않도록 (역사를)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며 “필요하면 (교과서) 국정화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국정 교과서 이슈가 격랑을 타게 된 것은 9월 9일. ‘청와대와 교육부, 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확정하고 추석 전 발표할 예정’이라는 ‘동아일보’ 보도가 발단이었다. 공교롭게도 국정감사 바로 전날 보도가 나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는 시작부터 국정화 문제로 난타전이 벌어졌다.

여론은 국정화 반대가 압도적

시중 교과서 대부분이 ‘왜곡된 역사관’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혼란을 막기 위해 국정 교과서로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 찬성 측 주장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한창 불거지던 지난해 5월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시판되는 한국사 교과서 7종 중 5종은 계급투쟁 사관으로 기술된 반(反)대한민국 교과서”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많은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먼저 전국 역사 교사들이 들고 일어섰다. 9월 2일 전국 1669개 중고교 역사 교사와 초교 교사 2255명은 공동으로 발표한 선언문에서 “정부가 공인한 하나의 역사 해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결과를 가져올 국정 교과서는 역사 교육의 본질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교육부는 ‘균형 잡힌 교과서’를 강조하고 있지만, 그 진실은 국정 교과서를 통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거나 희석시키려는 시도”라고 반발했다.

대학 교수들의 반대도 이어졌다. 같은 날 서울대 국사, 동양사, 서양사, 역사교육, 고고미술사 교수 34명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헌법 정신에 위배되고 교육의 본질에도 어긋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제출했다. 9월 15일에는 부산대와 덕성여대 교수들이 국정화에 반대하는 선언을 발표했으며, 16일에는 고려대 인문사회계 교수 160여 명이 반대 선언을 발표했다.

한편, 교과서의 정치적 편향성 논쟁과는 별개로 수험생들의 평가 측면에서 교과서 국정화를 옹호하는 측도 있다. 황우여 부총리가 9월 10일 국정감사에서 “한국사가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필수이기 때문에 (수험생들의) 혼란이 없도록 하기 위해 한 가지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국정화가 되면 교과서 일원화로 학생들의 학습량이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교과서가 일원화될 경우 변별력을 위해 사소한 부분까지 외워야 하는 부담이 커진다는 주장(여인철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도 있고, 현재 검인정 제도하에서 집필 기준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도 정부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대부분 근현대사, 그중에서도 건국 이후 현대사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국정 교과서 시절의 한국사 교과서들이 현대사를 어떻게 다뤄왔나를 살펴보면 ‘단일한 역사 교육’ 주장의 허구성이 드러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현대사 서술은 당시 정권 입맛에 맞게 바뀌어왔기 때문이다.

완강한 반대 여론에 국정화 추진 난항

9월 1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교육부 국정감사에 참석한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왼쪽)과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역사 과목 자체를 고사시키기 위한 시도”

5·16군사정변과 유신에 대한 평가에서 서술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4년 처음으로 등장한 국정 교과서는 5·16군사정변을 ‘국민을 부정부패와 불안에서 해방시켜 올바른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감행된 ‘혁명’으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82년 전두환 정부에서 펴낸 교과서에서는 ‘유신 이후 성립한 제4공화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적 징후를 보였다’며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90년 노태우 정부 시절에 간행된 교과서는 ‘유신 체제는 (중략)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변질시킨 권위주의 체제’라며 5·16과 제3공화국에 대해 더욱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개발에 참여했던 한 편집자는 온라인매체 ‘슬로우뉴스’에 익명으로 기고한 글에서 위와 같은 사실들을 지적하며 ‘지금까지 한국에서 국정 교과서가 겪어온 역사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하겠다는) 그런 신뢰를 주기에는 심히 미덥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나온 국정 교과서인 초등 5-2 사회(역사) 교과서가 간행되자마자 많은 오류 등으로 연구자들에게 질타를 받은 상황에서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점점 난맥상으로 빠져들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대해 “아직까지 정해진 것이 없다”며 공식 답변을 회피했다.

후지이 다케시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정부 여당이 교과서 국정화의 목적으로 제시하는 ‘교과서들의 각기 다른 서술로 인한 혼란 방지’를 “‘역사’라는 과목 자체를 고사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교과서가 여러 개면 해석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것이 역사를 생각하는 데 기본이 된다. 역사를 통해 (학습자가)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 역사 교육의 핵심인데 국정 교과서로 일원화되면 ‘사고’가 아닌 ‘암기’를 해야 한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특정 관점으로 획일화된 역사를 교육시킴으로써 국민을 특정 주체로 만들고자 했다면, 현 정권은 국민 스스로 생각하는 주체로 성장할 가능성을 차단하려 한다는 것이 후지이 교수의 진단. “역사에는 항상 해석 가능성이 열려 있다. 과거는 언제든 다르게 보일 수 있으며, 현재나 미래 또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국정화 시도는) 그런 가능성을 차단하고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주간동아 2015.09.21 1006호 (p74~76)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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