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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국민교육헌장 발표 50주년

10일 70주년 맞는 ‘세계인권선언’, 북한의 ‘유일사상 10대 원칙’과 비교해보니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입력2018-11-30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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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국민교육헌장 선포 4주년 기념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축사하고 있다. [동아DB]

    1972년 국민교육헌장 선포 4주년 기념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축사하고 있다. [동아DB]

    12월 5일은 국민교육헌장이 발표된 지 50주년 되는 날이다. 4050세대 중 상당수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이 헌장을 기억한다. 393자나 되는 이 헌장을 국민(초등)학교 때부터 외우지 못하면 체벌까지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부 학교에선 암송경연대회까지 열렸다. 

    박정희 정부는 이 헌장 제정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1968년 6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교육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방향의 정립과 시민생활의 건전한 윤리 및 가치관의 확립’을 위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총망라한 교육장전(敎育章典)을 제정하라고 지시한다. 권오병 문교부 장관은 철학자 박종홍, 사학자 안호상, 교육학자 정범모 등 26명의 기초위원과 48명의 심의위원을 선정해 3차례 초안회의를 거쳐 최종 문안을 완성한다. 이는 11월 26일 국회 동의까지 거친 끝에 12월 5일 박 대통령의 이름으로 발표된다.

    민족중흥의 사명

    이렇게 공을 들인 만큼 일회성 발표에 머물렀을 리 만무하다. 초중고 각종 국정교과서 맨 앞에 인쇄됐을 뿐 아니라 각급 학교 교사와 학생은 물론, 공무원과 일반 회사원까지 암기해야 했다. 제대로 암기하지 못하면 온갖 불이익이 떨어졌으니, 말 그대로 온몸으로 체화할 것을 국가적 차원에서 강제했다. 

    그 내용은 철저히 개인보다 국가와 민족을 앞세우라는 국가주의로 점철돼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민족중흥에 있고, 자기계발 또한 국가를 위한 것(‘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이며, 반공이 국시(‘반공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라는 것이다.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민족과 국가의 역린을 건드리는 행위로 취급받았다. 1978년 6월 27일 송기숙 등 전남대 교수 11명은 “국민교육헌장은 행정부의 독단적 추진에 의한 그 제정 경위 및 선포 절차 자체가 민주 교육의 근본정신에 어긋나며 일제하의 교육칙어를 연상케 한다”고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했다. 그 핵심은 4가지로 요약되는데 △교육의 민주화 △인간적 양심과 민주주의에 대한 정열 △외부 간섭의 배제 △3·1 정신과 4·19 정신의 계승전파와 자주평화통일의 역량 함양이었다. 



    오늘날 시각에선 대부분 수긍할 만한 내용이지만 성명서 발표 직후 교수 11명 전원이 당시 중앙정보부로 연행됐다. 6월 29일~7월 1일 이에 항의해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지만 관련 교수들은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구속, 또는 전원 해직됐다. 시위 학생 가운데 30여 명도 구속되고 휴교령이 내려졌다. 

    그 1년 뒤 박 대통령이 시해되고 신군부가 집권했지만 국민교육헌장은 계속 살아남았고,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까지 매년 교육부 주관으로 관련 기념식이 열렸다. 이후 초중고 교과서에서 국민교육헌장이 삭제됐고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11월 27일 대통령령 제18143호에 의거해 국민교육헌장선포 기념일이 공식 폐지됐다. 박정희 정부 시절 대통령령으로 정부 주관 기념일이 된 때가 1973년이니 30년 만이었다.

    일본 교육칙어의 클론

    세계인권선언의 산파 역할을 한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부인)가 스페인어로 된 세계인권선언을 보고 있다. [사진 제공 · 프랭클린 루스벨트 도서관]

    세계인권선언의 산파 역할을 한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부인)가 스페인어로 된 세계인권선언을 보고 있다. [사진 제공 · 프랭클린 루스벨트 도서관]

    국민교육헌장의 가장 큰 문제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도 암기가 강제되던 ‘교육칙어’의 유사품이라는 데 있었다. 교육칙어는 1890년 메이지 일왕이 충량한 신민(臣民)이 되도록 교육에 힘쓸 것을 독려하며 내린 글이다. 얼핏 보면 유교국가의 삼강오륜을 강조한 듯하지만 일본 왕실의 조상을 뜻하는 황조황종(皇朝皇宗)의 유훈임을 내세우면서 ‘국가에 위급한 일이 생길 때 의용을 다하라’고 촉구한 내용이며, 이후 군국주의가 발호할 때 그 캐치프레이즈로 활용됐다. 

    특히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에도 교육칙어에 입각한 교육령이 공포되면서 일왕의 충량한 신민으로서 군국주의의 부름에 응하는 것을 내면화하는 도구로 쓰였다. 일제가 정한 신정(1월 1일), 기원절(일본 개국기념일), 천장절(일왕의 생일), 명치절(메이지 일왕 생일)을 일컫는 ‘4대 명절’ 때는 학교에서 전교생을 소집해놓고 엄숙하게 교육칙어를 낭독했다. 그러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1946년 미국 점령군사령부에 의해, 1948년 일본 중의원과 참의원에 의해 교육현장에서 사라졌다. 

    일본 본토에서 사라진 교육칙어가 20년 뒤 식민지였던 한국에서 부활해 36년이나 생명력을 이어간 셈이다.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역대 조선총독부 인사들이 지하에서 “역시 조센진은 어쩔 수 없어”라며 박장대소하지 않았을까. 

    이제 12월 5일은 잊고 그 닷새 뒤인 12월 10일을 기억해야 한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것을 기념하는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이다. 세계인권선언은 1개 문장으로 이뤄진 전문과 30개 조로 구성된다. 

    국민교육헌장이 발표되기 20년 전에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이렇게 시작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해야 한다.’ 

    북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의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 [노동신문]

    북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의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 [노동신문]

    억울한 생각이 드는가. 그럼 고개를 들어 북한을 보라. 북한 주민은 지금도 ‘유일사상 10대 원칙’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야 한다. 1974년 탄생한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은 서문과 10개 조로 구성돼 있는데, 10개 조가 모두 똑같은 문구로 시작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다. 가장 중요한 조항은 제10조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개척하신 혁명 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하며 완성하여 나가야 한다’는 구절 때문이다. 김씨 왕조가 대를 이어 북한을 통치해야 한다는 내용이니 황조황종의 유훈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교육칙어의 국가주의적 전통을 면면히 계승하고 있는 나라는 남한과 북한 중 과연 어디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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