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0

2014.08.11

‘클라우디오 아바도’ 없는 허전함이란

루체른 페스티벌의 추억 2

  •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tris727@naver.com

    입력2014-08-11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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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우디오 아바도’ 없는 허전함이란

    2012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지휘하고 있는 클라우디오 아바도.

    2007년 이후 스위스 루체른을 다시 찾은 것은 2012년이었다. 그때 필자는 루체른 페스티벌의 발상지이기도 한 ‘바그너 박물관’을 찾았다. 그곳은 한때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기거했던 빌라로, 루체른 구시가에서 조금 떨어진 트립셴 마을의 호수가 굽어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빌라 안으로 들어가자 바그너가 아내 코지마를 위해 악사들을 배치하고 ‘지크프리트 목가’를 연주했다는 계단, 바그너의 생애 및 예술과 관련한 여러 흥미로운 자료, 흔적들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호수는 정오 무렵 햇살에 화사하고도 은은하게 반짝였다. 빌라 앞 푸른 언덕을 거닐면서 전날 봤던 공연을 되새겼다.

    당초 2012년 루체른 페스티벌은 각별한 기대를 모았다. 그해 초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마침내 말러의 ‘교향곡 제8번’을 지휘한다는 공지가 페스티벌 홈페이지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일명 ‘천인 교향곡’이라 부르는 그 작품은 말러의 음악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봉우리이자, 아바도가 루체른에서 10년 동안 이어온 ‘말러 사이클’ 대미를 장식할 회심의 역작이었다. 모든 이가 그 공연이 아바도 경력에 또 하나 굵직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되리라 예상했다.

    사실 그때 필자는 유럽행을 감행하기에 여러모로 무리가 따르는 상황이었다. 갈등이 적잖았지만 결국 가슴이 머리를 이겼다. ‘아바도 선생이 말러 사이클을 완결하는 현장에서 축하와 감사의 박수를 보내리라.’ 그것이 평소 말러를 들으며, 또 말러에 관한 어쭙잖은 강의를 하며 아바도에게 큰 빚을 져온 필자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별 티켓 오픈 날 일찍부터 컴퓨터(PC)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좌석을 확보하고 ‘그날’이 오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예매일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아바도가 ‘예술적인 이유로’ 프로그램을 변경했다는 e메일이 도착했던 것이다. 실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던 그 기분이란…. 더구나 바뀐 프로그램은 불길하게도 모차르트의 ‘레퀴엠(진혼미사곡)’이었다. 또 한 번 갈등이 일었다. ‘정말 가야 하는가.’ 다행히 고민은 좌석 위치를 바꾸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해 여름, 합창석에서 쌍안경까지 들고 앉아 지켜봤던 아바도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층 여윈 얼굴, 조금은 무뎌진 듯한 박자 젓기 등 5년 전보다 노쇠한 기색이 역력했다. 연주 후 단원들이 모두 퇴장하고 계속되는 관객의 박수에 화답하기 위해 다시 무대로 나오기까지도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특유의 따스함을 머금은 채 은은한 빛을 발하던 그 눈빛만은 여전히 형형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없는 허전함이란

    루체른 바그너 박물관 앞의 호수.

    지금 필자는 얼마 전 발매된 2013년 루체른 페스티벌 공연 실황 영상물(Accentus Music)을 틀어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브람스의 ‘비극적 서곡’, 쇤베르크의 ‘구레의 노래’, 베토벤의 ‘영웅교향곡’ 등을 수록한 이 영상물이 그의 마지막 ‘비디오 리코딩’이라고 한다. 역시 지난해 연주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과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 중에서는 후자만이 음반(DG)으로 발매됐다.

    평생을 음악에 헌신한 거장의 마지막 모습은 한없이 차분하고 온화하며 겸허하다. 그가 없는 올해 루체른 페스티벌은 얼마나 허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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