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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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시네+아트

’ 바흐의 피아노가 새소리처럼 들릴 때

퍼시 애들론 감독의 ‘바그다드 카페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6-07-19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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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시 애들론 감독의 영화 ‘바그다드 카페’(1987)에선 두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서로를 처음 본다. 독일인 관광객 야스민(마리안네 제게브레히트 분)은 여행 중 남편과 심하게 다툰 뒤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면, 사막이나 다름없는 네바다 주의 한적한 도로 위에 혼자 내려버린다. 무심하고 이기적으로 보이는 남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무거운 여행가방을 끌고 아스팔트도로 위를 걷는 야스민의 얼굴에선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이 범벅이 돼 흘러내린다.

    사막 주변의 허름한 모텔 ‘바그다드 카페’ 여주인 브렌다(CCH 파운더 분)는 혼자 버둥대며 모텔과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남편은 빈둥거리고 아들과 딸도 집안일엔 거의 무관심하다. 브렌다는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앞에 두고 의자에 혼자 앉아 있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린다. 두 여성은 손수건을 꺼내 얼굴의 물기를 닦을 때 서로를 처음 본다. 말하자면 울고 있는 여성이, 역시 자기처럼 울고 있는 다른 여성을 만나는 게 영화 도입부다.

    이때부터 영화의 끝까지 멀리서, 또 가까이서 들리는 음악이 제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이다. 10대처럼 보이는 브렌다의 아들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인데, 매일 카페에서 바흐의 곡으로 피아노 연습을 한다. 브렌다가 시끄럽다고 피아노를 못 치게 하면 종이 건반을 앞에 놓고 연습할 정도로 열심이다. 그의 피아노 앞엔 ‘우상’ 바흐의 초상화가 턱하니 걸려 있다. 아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주로 ‘평균율 클라비어곡’ 제1권 1번이다. 이 음악이 상황에 따라 변주되는 게 ‘바그다드 카페’의 매력적인 장치다. 이를테면 도입부에서 두 여성이 만날 때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은 별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그야말로 피아노 연습곡처럼 들린다. 그런가 하면 아들의 젖먹이가 울어댈 때면 ‘평균율 클라비어곡’도 덩달아 짜증을 내며 연주되는 식이다.



    두 여성은 처음엔 모든 면에서 대조적으로 보인다. 유럽 출신 백인과 미국 서부의 흑인, 정장 차림 독일인과 간편 복장의 미국인, 부드러운 성격과 성마른 성격 등으로 비교된다. 너무나 달라 보이는 두 여성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바그다드 카페’의 매력이다. 처음 야스민은 먼지가 덕지덕지 붙은 지저분한 카페 안으로 들어가기를 꺼린다. 그를 카페 안으로 이끈 게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이다. 브렌다도 마치 중세 갑옷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야스민을 좋아하지 않는다. 유럽 백인의 외부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복장에서 느껴졌기 때문일 테다.



    햇살이 가득한 어느 날, 야스민이 ‘갑옷’을 벗고 브렌다처럼 편안한 복장에, 머리칼도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게 한 채 카페의 피아노 옆에 앉을 때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은 초봄 새소리처럼 맑게 연주된다. 울면서 만났던 두 여성이 피아노곡의 흐름에 따라 서로에게 의지하며 마치 자매처럼, 또는 연인처럼 가까워지는 것이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은 그런 행복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할 것이다(7월 14일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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