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1

2018.01.10

한창호의 시네+아트

분열된 사랑, 분열된 자아의 기원을 찾다

프랑수아 오종 ‘두 개의 사랑’

  • 입력2018-01-09 13: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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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팝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 · 팝엔터테인먼트]

    프랑수아 오종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멜로드라마 감독이다. 가족이라는 제도에서 잉태된 뒤틀린 사랑과 상처가 그의 영화에선 긴장의 핵이다. 오종의 드라마에서 가족은 평화와 안전의 터전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통째로 허무는 외부의 힘이다. 평생 반려자일 줄 알았던 남편은 어느 날 아내를 버리며 해변에서 유령처럼 사라지고(‘사랑의 추억’), 가부장은 가족에 의해 살해된다(‘8명의 여인들’). 가족, 그리고 그 제도 안에서 개인의 갈등은 오종 드라마의 마르지 않는 샘물인 셈이다. 

    ‘두 개의 사랑’도 오종 특유의 멜로드라마다. 젊은 여성 클로에(마린 박트 분)는 복통을 앓고 있다. 임신을 의심했지만, 의사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며 차라리 정신과 상담을 권한다. 클로에는 젊고 신중한 정신과 의사 폴(제레미 레니에 분)을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엄마와 오래된 갈등을 털어놓자 어느덧 복통도 사라지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극에 긴장이 몰려오는 건 폴에게 숨겨놓은 쌍둥이 루이(제레미 레니에의 1인 2역)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왜 폴은 쌍둥이의 존재 자체를 숨겼을까. 루이도 정신과 의사다. 호기심에 클로에는 루이의 병원을 찾아간다. 그는 폴과 달리 오만하고 공격적이다. 쌍둥이는 똑같은 외모에 정반대 성격을 지녔지만 클로에는 루이와도 사랑에 빠진다. 

    정체성의 분열을 쌍둥이 캐릭터를 통해 풀어놓은 솜씨는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감독의 문제작 ‘데드 링거’(1988)를 떠올리게 한다. ‘데드 링거’도 죽음에 이르는 쌍둥이 의사의 분열증을 그린 ‘컬트’(소수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작품)였다. ‘두 개의 사랑’ 역시 쌍둥이 의사, 즉 두 몸으로 나뉜 하나의 정체성이란 테마를 갖고 있다. 곧 분신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두 개의 사랑’이 새롭게 시도한 것은 이 모든 복잡한 이야기를 환자 클로에의 시각에서 서술했다는 점이다. 이 경우 흥미로운 사실은, 클로에가 사랑에 빠진 폴과 루이가 실제의 인물인지 분명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점잖은 의사 폴, 반대로 사랑에 공격적인 루이. 이렇게 성격이 다른 두 남자와 클로에가 사랑에 빠졌는데, 둘 중 한 명은 가공의 인물일 수 있다. 


    [사진 제공 ·  팝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 · 팝엔터테인먼트]

    더 나아가 오종은 뒤로 갈수록 이런 모호함을 의도적으로 더욱 증폭해놓았다. 이를테면 클로에라는 캐릭터마저 한 인물인지 알 수 없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클로에에겐 혼수상태에 빠져 엄마의 극진한 보호를 받는 동생이 있는데, 그가 실존 인물인지 질투에 의한 상상의 인물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게 만들어놓았다. 



    ‘두 개의 사랑’은 이렇게 사람의 정체성이 단일하고 안정적이란 믿음을 허문다. 우리는 누구나 두 개의 정체성으로 분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분열의 원인으로 제시된 것이 가족이라는 제도에서 잉태되는 질투다. 형제자매 간 사랑의 경쟁, 자식에 대한 부모의 차별이 드라마를 떠받치는 토대다. 

    원작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미국 문학계의 스타 조이스 캐럴 오츠의 ‘쌍둥이의 삶(Lives of the Tw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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