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4

2017.11.22

법통팔달

적폐청산의 길에서 일으킨 파문

법조인의 자살

  • 입력2017-11-21 16: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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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던 변창훈 서울고등검찰청 소속 검사가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투신한 서울 서초구 한 건물의 4층 화장실 창문.[동아DB]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던 변창훈 서울고등검찰청 소속 검사가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투신한 서울 서초구 한 건물의 4층 화장실 창문.[동아DB]

    우리나라 국민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8.7명(2014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자살률(10만 명당 19명)을 크게 상회한다. 법조인의 자살도 적잖다. 법조인이 주로 보는 ‘법률신문’(격주간지)의 한 임원은 2년 전 “과거 법조인의 부고가 오면 고인의 경력과 지병유무가 궁금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겁부터 난다. 젊은 변호사의 경우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부고로는 차마 전할 수 없는 사망 원인(자살)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자살은 삶을 자의적으로 종료시킨다는 점에서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는 ‘이상행동’이다. 게르트 미슐러는 ‘자살의 문화사’라는 책에서 자살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인간의 권리”라고 했다. 반면 칸트는 “자살은 자신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라고 했다. ‘자살론’을 쓴 쇼펜하우어는 정작 천수를 누렸다. 

    자살의 이면에 감춰진 복잡다단한 개인적 특성과 공동체적 함의를 어떻게 한마디로 단언할 수 있을까. 자살 원인을 분석하는 시도는 많다. 하지만 자살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한 분석은 적은 것 같다. 자살은 고통받던 고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족은 물론, 그와 관계를 맺었던 많은 사람에게도 충격과 고통을 준다. 

    새 정부의 적폐청산 수사가 속도를 붙일 즈음 브레이크가 걸렸다. 수사 대상자들의 죽음, 그것도 법조인의 연이은 자살 때문이다. 적폐청산 본류 가운데 하나는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정치 개입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와 재판 방해 의혹이 불거져 이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정원 소속 정모 변호사는 10월 23일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는 주위 동료들에게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쓸 것 같다는 불안감과 억울함을 내비쳤다고 한다. 그는 29일 강원 주문진 해변에 있는 다리에서 자살 시도를 하다 구조됐지만 이튿날 춘천시 한 주차장에서 유서 한 장 없이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11월 6일 서울고등검찰청 소속 변창훈 검사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3~2014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  재판 은폐에 관여한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및 위증교사)를 받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둔 상태에서 선배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서초동 한 건물에서 투신했다. 

    고인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까닭은 무엇일까. 신병구속이라는 불안에서 나온 극심한 스트레스일 수도 있고, 우리나라 특유의 유교적 가치와 조직문화가 그 원인일 수도 있다. 평생 쌓아온 경력이 훼손되거나 불명예가 목전에 있는 경우 타인의 눈에 비칠 자신의 모습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개인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몸담았던 조직을 위해 고민했을 수 있다. 최선이라고 판단한 순간 이를 감수했을지 모른다. 자살 원인과 별개로 고인들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들의 죽음은 주위에 충격과 고통을 남겼다. 일부 검사가 반발하고 분개하고 있다고 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변 검사가 사망하고 며칠 뒤 적폐청산 수사를 주도하는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지검장에게 “사건 관계자의 인권을 보호하며 신속 진행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 조직에 순응했던, 자존심 강했던 분들의 절규가 적폐청산이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그에 반해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이라고 항변하는 전직 대통령의 출국장 기자회견은 구차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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