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인터뷰 | 박관용 전 국회의장

“두 동강 난 국론 모으려면 대통령 스스로 물러나야”

박근혜 대통령, 끝까지 지지자와 함께하면 역사 속에서 후회할 것

“두 동강 난 국론 모으려면 대통령 스스로 물러나야”

“두 동강 난 국론 모으려면 대통령 스스로 물러나야”

박해윤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대한민국 국론은 ‘찬탄’과 ‘반탄’으로 갈라졌다. 낮에는 태극기를 흔들며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치는 시위대가 광장을 뒤덮고,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이면 촛불을 손에 든 ‘탄핵 찬성’ 시위대가 광장을 가득 메운다. 일제에서 해방된 뒤 미국과 소련 등의 신탁통치를 둘러싸고 좌우 정파가 ‘찬탁’과 ‘반탁’으로 극렬하게 갈등을 빚던 상황을 연상케 할 정도다.

대통령 탄핵이란 격랑에 휘말린 대한민국호는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6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대통령비서실장과 국회의장을 역임한 정계 원로 박관용 전 국회의장(사진)은 작금의 한국 사회 갈등을 어떤 심정으로 보고 있을까. 그는 2004년 3월 12일 16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때 의사봉을 쥐어 대통령 탄핵과 인연이 있다.

3월 2일 오전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사이에 위치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클럽에서 박 전 의장을 만났다.

▼ 어제(3월 1일) 이곳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에는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로 의견이 갈린 시위대가 번갈아 광장을 뒤덮었습니다. 어제 집회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이후 지금처럼 국론이 극렬하게 분열된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일제에서 해방된 뒤 일부 과격분자가 좌우로 나뉘어 극심하게 대립했지만, 지금처럼 수백만 명이 편이 갈려 대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찰이 차벽을 치지 않았다면 참극이 우려될 만큼 불안하기 그지없는 상황입니다.”

굴곡진 현대사에서 비롯된 광장 문화

“두 동강 난 국론 모으려면 대통령 스스로 물러나야”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해윤 기자]

▼ 탄핵 찬성과 반대로 크게 의견이 나뉘어 있는데요. 박 전 의장께서는 어느 의견에 더 동의하십니까.

“둘 다 이해를 못 하겠어요. 헌법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정해야 할 최고 규범입니다. 그 헌법을 준수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의무이고요. 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대통령 탄핵이 이뤄진 만큼, 민주시민이라면 헌법재판소(헌재)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보이는 모습은….”

박 전 의장은 이 대목에서 굴곡진 우리 현대사가 지금의 광장 집회문화를 잉태했는지도 모른다고 부연했다. 자유당 때 3·15 부정선거에 맞서 4·19 혁명이 일어났고, 1987년 군사정권의 호헌을 통한 정권 연장 시도를 6월 항쟁으로 무력화한 선배들의 경험이 우리 국민의 마음으로 이어져 ‘대통령이나 정부가 잘못하면 광장에 직접 나가 바꿔야 한다’는 저항의식이 싹텄다는 것이다.

“과거 정부는 군사쿠데타로 집권하고 독재하면서 시민을 탄압했기 때문에 광장에서의 저항이 합리화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통성 있는 정부 아닙니까. 대통령 탄핵은 헌법에 나와 있는 민주적 절차입니다. 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탄핵했으면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이 민주시민으로서 도리입니다. 탄핵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광장에 나온 시민에게 결과를 차분히 기다리자고 호소하고 싶어요.”

박 전 의장은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국회를 에워싸 ‘탄핵 가결’을 압박하고, 이번에는 헌재로 몰려가 ‘탄핵 인용’을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폭력”이라고 일갈했다. 마찬가지로 태극기시위대가 헌재에게 ‘탄핵 기각’을 요구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하는 것은 좋아도, 정부기관의 결정에 압력을 행사하거나 협박하는 행위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직후인 지난해 11월 박 전 의장을 비롯한 정계 원로들은 ‘대통령의 4월 퇴진, 6월 대선 실시’라는 질서 있는 정국 수습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은 원로들의 조언을 수용하지 않고 광장에 나온 민의를 수렴한다며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 박 전 의장은 “정치인들이 대통령 탄핵으로 국론이 분열된 상황을 방조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책무를 방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금 지도자라고 하는 정치인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옳은 선택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현 정치권은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강변하고 있어요. 그래서는 결코 어려운 정국을 원만하게 풀 수 없습니다. 대통령에게 스스로 물러날 기회를 주지 않고 탄핵으로까지 끌고 온 것은 (대통령 탄핵이란) 지금 상황이 대선에서 유리할 수 있겠다는 야당 측의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워요.”

▼ 박근혜 대통령도 탄핵 상황에 이르게 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소통 부족에서 현 사태가 비롯됐죠. 많은 사람의 얘기를 듣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려왔으니…. 박 대통령은 이렇게까지 (최순실) 사태가 커지리라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아요.”

박 전 의장 등 정계 원로들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지난해 10월 말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만나 ‘거국내각 구성, 2선 후퇴와 새누리당 탈당’ 등 정국 수습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원로들의 조언대로 발 빠르게 정국 수습에 나서지 않았고, 결국 탄핵 상황을 맞게 됐다.

“지도자는 결단해야 할 때 반드시 결단해야 합니다. 어물어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지도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견하고 스스로 결단을 해야 비로소 꼬인 문제를 풀 수 있어요.”

국민이 화합할 수 있는 길

▼ 헌재가 최종변론을 마치고 마지막 평결을 위한 평의에 들어갔습니다. 박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자신의 거취에 대해 결단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헌재가 기각하면 혁명해야 한다고 하고, 태극기시위대는 인용하면 아스팔트에 피를 뿌리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많은 국민은 헌재가 어떤 결정을 하든 촛불과 태극기로 분열된 국론이 다시 하나로 통합될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있어요. 지금 상황대로라면 대한민국이 두 동강 나게 생겼어요. 헌재 재판관들도 고민이 깊겠지만,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내일을 걱정하는 정치인이라면 이런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둘로 나뉜 국민 여론을 통합할지를 고민하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헌재 결정이 나오기까지) 열흘 남짓 남았는데, 대통령이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운명이 바뀔 기로에 서 있습니다.”

박 전 의장은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라며 “결국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대통령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모든 책임을 안고 떠나겠습니다. 화합하십시오. 통합하십시오’라고 진정성 있게 호소한다면 많은 국민이 (국론 분열을 막은) ‘위대한 우리 대통령’이라고 칭찬하지 않겠어요. 난 (대통령이) 그렇게 호소한다면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대통령비서실장과 국회의장을 지낸 팔순을 앞둔 노(老)정객이 ‘눈물’까지 거론하며 대통령의 자진 사퇴로 파국을 막았으면 하는 절박한 심정이 절절하게 전해졌다.

“나는 (2012년 대선 때) 박 대통령 당선을 위해 노력한 사람입니다. 지지 연설도 수없이 했고…. 그런데 박 대통령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현 상황까지 왔다면 그로 인해 국민이 분열된 사실을 뼈아프게 뉘우쳐야 합니다. 아버지의 명예와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길은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국민이 화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뿐입니다. 자신의 억울함이나 이해관계보다 어떻게 하면 국민을 화합하게 할까에 초점을 맞추는 게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성공한 영화는 라스트신이 좋아야 하듯, 박 대통령도 스스로 은퇴하는 게 멋진 라스트신을 위한 길입니다.”

▼ 말씀과 달리 박 대통령이 최근 보이는 모습은 정반대로 여겨집니다. 2월 말에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박 대통령 지지자들이 보낸 위로 편지에 감사인사를 하기도 했는데요. 결국 박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입니다.

“그럼 결국…, 역사 속에서 후회하게 되겠죠.” 

박관용의 천기누설
필리핀 두테르테, 미국 트럼프…한국은 홍준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차기 대선에 대해 “문재인 대 반문재인의 일대일 구도로 치를 경우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선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박 전 의장은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출현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예로 들면서 “국민 마음을 직선으로 뚫고 들어가 확 뒤집어놓을 수 있는 발언을 잘하는 홍준표 경남도지사 같은 스타일이 선거에서 통할 개연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 헌법재판소(헌재) 결정에 따라서는 차기 대선이 빨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 따라 양상이 크게 달라지겠죠. 기본적으로 보수진영이 현재 갈가리 나뉘어 하나의 정당으로 뭉치기는 틀렸다고 봅니다. 다만, 대선 직전 집권을 위해 연정 파트너들과 일종의 연합체를 만들 수는 있겠죠. 각기 후보를 낸 뒤 국민의 선택으로 후보를 단일화한다면, 그래서 문재인 대 반문재인, 보수 대 진보의 일대일 대결이 성사된다면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선거가 될 것입니다.”

▼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가 무난히 당내 경선을 통과하리라고 보시는군요.

“(당내 경선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결선투표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이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밀면 (문 전 대표와) 비슷해지겠죠. 그런데 이 시장이 안 지사를 밀겠어요? 다음을 겨냥하더라도 (이 시장이) 안 지사를 지지할 수는 없겠죠. 이번에 문 전 대표를 밀어야 후계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할 거예요. 난 그렇게 봐요.”

▼ 안 지사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다 최근 주춤합니다. 차기주자로서 안 지사를 어떻게 보세요.

“(정치인으로서) 자세도 좋고, 미래 지도자 후보군으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죠. 상당히 유망주로 보이는데, 이번에는 문 전 대표에게 안 될 겁니다. 그리고 (안 지사) 지지율 속에는 보수세력이 상당히 끼어 있다고 봅니다.”

▼ 홍 지사가 보수진영을 대표할 차기주자에 도전할 뜻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선거는 공식이 없어요. 그때그때 사회 분위기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두테르테가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한 것은 참 이상한 현상이죠. 또 모든 미국 언론이 안 된다고 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한 것도 이상기류로 볼 수 있습니다. 두테르테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한 것은 대선 기간 중 막말이라며 비판받기도 했지만, 국민 마음을 꿰뚫는 얘기가 잘 먹히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죠. 전반적으로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양극화가 심화돼 실업에 고통받고 사회 부조리에 불만이 쌓인 사람들의 마음을 확 뒤집어놓을 수 있는 발언이 팍팍 먹히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도 분명히 있다고 감지되거든요. 그런 점에서 홍 지사 같은 사람이 던지는 자극적인 몇 마디가 국민 사이에서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궁금합니다. 선거와 득표에 국한해 얘기하자면 홍준표 같은 스타일이 통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지금 같은 시대에 그런 특이한 후보가 필요할지도 모르죠.”

▼ 홍 지사가 범여권, 나아가 보수진영의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고 보시는군요.

“선거와 득표 측면에서 보자면 국민 마음에 불을 지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또 그런 사람이 대통령직도 잘 수행할 수 있어요.”


입력 2017-03-03 15:50:09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