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 우승자 전주연 바리스타

“순위 욕심 내려놓자 우승 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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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19-06-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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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곱게 갈아낸 원두 가루가 담긴 여과지 위로 뜨거운 물을 붓는 손놀림이 능숙하다. 드립포트가 움직이자 커피 향이 은은히 풍긴다. 한 모금 마셔보니 페루에서 생산된 ‘문도 노보’ 품종 특유의 오렌지 같은 맛이 산뜻하다. 

    “중남미지역 원두는 단맛, 신맛이 조화로워 쉽게 질리지 않아요. 원산지마다 다른 원두의 특성을 알면 커피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습니다.” 

    커피를 건넨 바리스타 전주연(32) 씨의 설명이다.

    55개국 3000여 명 꺾고 한국인 최초 우승

    4월 14일(현지시각)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전주연 씨에게 지난 대회 우승자 아그니에슈카 로예프스카가 익살스럽게 트로피를 전달하고 있다(왼쪽). 전주연 씨가 자신이 근무하는 ‘모모스커피’ 매장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제공 · 전주연, 박해윤 기자]

    4월 14일(현지시각)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전주연 씨에게 지난 대회 우승자 아그니에슈카 로예프스카가 익살스럽게 트로피를 전달하고 있다(왼쪽). 전주연 씨가 자신이 근무하는 ‘모모스커피’ 매장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제공 · 전주연, 박해윤 기자]

    전씨는 4월 14일(현지시각)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World Barista Championship·WBC)’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WBC는 매년 60여 개국 바리스타들이 출전하는 스페셜티 커피계의 올림픽. 올해 예선에는 55개국 3000여 명이 참가했다. 전씨는 결선에서 그리스, 캐나다, 인도네시아, 독일, 스위스 등 5개국 대표들을 꺾고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새로운 추출 기법으로 끌어낸 커피의 단맛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5월 17일 부산 금정구 ‘모모스커피’에서 전씨를 만났다. 그가 아르바이트생으로 커피업계에 발을 디딘 곳이자 현재는 이사직을 맡고 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다. 카페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커피를 즐기다가도 이내 전씨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거나 사인을 청한다. 매장 직원이 “전 이사님이 우승한 후 가게 매출이 30%가량 올랐다”며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손님도 적잖다”고 귀띔해준다. 



    한국인 최초 우승자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WBC에서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 아시아인으로는 세 번째 우승인 것으로 안다. 무엇보다 내 이름이 대한민국과 함께 1위로 호명됐을 때 감동이 가장 컸다. 올해부터 전 대회 우승자로부터 트로피를 전달받는 행사가 생겼다. WBC 최초 여성 우승자기도 한 폴란드의 아그니에슈카 로예프스카(Agnieszka Rojewska)가 익살스럽게 트로피를 전해줘 재밌었다.” 

    스페셜티 커피와 WBC 모두 국내에선 아직 생소하다. 

    “스페셜티 커피의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스페셜티커피협회(Specialty Coffee Association·SCA)로부터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우수한 커피’다. 하지만 스페셜티 커피의 지향점은 커피 품질만이 아니다. 커피 농가와 바리스타, 로스터 등 커피업계 종사자, 그리고 소비자 모두의 상생을 지향한다. 공정무역과도 궤를 같이한다. WBC는 이런 스페셜티 커피업계에 종사하는 바리스타들이 실력을 겨루는 경연대회다. 이 자리를 통해 커피와 관련된 새로운 도구나 추출 기법 등이 소개되기도 한다.” 

    WBC는 국내에선 전씨 우승 전까지는 ‘업계’ 사람들만 알았지만 스페셜티 커피업계의 권위 있는 대회다. 유제품업체와 계약해 커피 브랜드를 론칭한 폴 바셋도 2003년 대회에 호주 대표로 출전해 우승했고 명성을 키웠다. 유명한 대회인 만큼 경기 방식도 까다롭다. 각 선수는 15분 동안 12잔의 음료를 만들어 심사위원 4명으로부터 평가받는다. 에스프레소와 우유가 들어간 음료, 창작 메뉴 3가지 부문에서 각각 4잔씩 총 12잔의 커피를 선보여야 한다. 커피 본연의 신맛과 단맛, 쓴맛을 조화롭고 일관되게 끌어내야 함은 기본이다. 가장 어려운 점은 바리스타가 자신이 내놓은 커피의 특징을 자신만의 철학을 녹여 심사위원들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

    10년 노력 끝에 과학으로 재해석한 커피 단맛

    ‘커피와 탄수화물’이라는 주제 발표가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끌었다고. 

    “커피콩, 즉 생두가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는 영양성분이 바로 탄수화물이다. 따라서 커피 맛에서 단맛을 중요하게 여겼다. 에스프레소를 즐길 때도 특유의 보디감과 함께 단맛이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커피 본연의 단맛을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발표 과정에서도 커피 당류의 손실 방지와 최소화 방안을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인가. 

    “탄수화물은 수용성 물질이지만 보통 물로는 추출이 어렵다. 그래서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면 당류는 대부분 찌꺼기에 남는다. 그때 마침 화장품 개발 등에 응용할 목적으로 커피 속 탄수화물 추출 공법을 연구하던 부경대 식품공학과 연구팀의 도움을 받았다. 밀폐된 용기에 커피 찌꺼기를 넣고 물의 끓는점을 180도까지 높이자 당류를 추출할 수 있었다. 강한 단맛은 아니어도 커피 속에 숨어 있는 새로운 맛을 뽑아낸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선택한 커피 원두도 특별할 것 같은데. 

    “콜롬비아의 ‘라팔마 에투카’라는 농장에서 생산된 ‘시드라’ 품종을 선택했다. 현지에서 커피를 수출하기 전 여러 공정을 거치는데 이 커피는 특이하게도 발효 과정을 거친다. 밀폐된 공간에서 이틀 동안 약간의 산소에 노출시키면 젖산 발효가 일어나면서 특유의 산미가 생긴다. 커피 속 탄수화물이 분해돼 단맛도 강해진다. 이처럼 커피의 단맛이라는 주제에 일관되게 집중했다.” 

    원두를 두고 해프닝도 있었다고. 

    “선수 모두 커피농장에서 소규모로 재배해 구하기 어려운 ‘마이크로랏’을 공수해온다. 그런데 캐나다 콜 토로드(Cole Torode) 선수가 나와 똑같은 품종의 원두를 준비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커피를 재배한 농장도 같은 곳이더라. 물론 수확 시기나 이후 건조 과정에 따라 커피 품질도 천차만별로 나뉘기는 한다. 캐나다 선수가 준비한 원두와는 수확 시기가 달랐다.” 

    그가 WBC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9년 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이종훈 바리스타의 경연 영상을 통해서였다. 세계무대에 당당히 선 이종훈 바리스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전씨는 이듬해부터 국가대표 선발전에 도전했지만 처음에는 썩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2013년 2위를 하고 나니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절실해졌다. 절치부심 끝에 지난해 처음으로 국가대표로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WBC에 출전했다. 하지만 14위에 머물렀다. 

    연이은 도전 끝에 올해 우승한 비결은. 

    “지난해 첫 출전은 헤아려보면 WBC에 뜻을 품은 지 거의 10년 만에 찾아온 기회였다. 내가 오랫동안 꿈꾸던 자리에 섰다는 기쁨보다 부담감이 더 컸다. 그래서 먹고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대회 준비에 임했다. 암스테르담 본선 무대에선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번 보스턴에 가서는 대회를 즐기자는 마음으로 임했고 순위에 대한 욕심도 내려놨다.”

    13㎡ 카페에서 시작된 꿈 “이제 시작이다”

    전주연 씨가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다. [박해윤 기자]

    전주연 씨가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다. [박해윤 기자]

    준비를 위해 어학연수도 다녀왔다고. 

    “15분가량 진행하는 발표라 그냥 외울 수도 있었다. 또 커피 관련 전문용어가 대부분 영어라 단어 자체도 익숙하다. 하지만 경연뿐 아니라 대회에 참가한 바리스타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배우는 점도 많다. 이들과 소통하고 한국 커피에 대해 알리려면 영어 실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국가대표로 선발된 후 6주 남짓 영국 런던에 머물며 회화를 공부했다.” 

    이처럼 오랜 도전 끝에 우승을 차지한 전씨의 커피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그도 처음부터 바리스타가 꿈이었던 것은 아니다. 커피와 인연은 2007년 이현기 대표가 차린 모모스커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오늘날 하루 1000여 명의 손님이 찾는 부산 스페셜티 커피의 ‘성지’ 모모스커피. 하지만 처음에는 이 대표의 부모가 운영하던 식당 한켠을 개조한 약 13㎡(4평)짜리 작은 카페였다. 이 대표에 따르면 “아르바이트생 때부터 열정이 남달라 같이 일하고 싶은 친구”였단다. 아르바이트생에서 WBC 우승자로 성장한 전씨는 스페셜티 커피가 태동하는 국내 커피계에서 하고 싶은 일이 여전히 많다. 

    최근 미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의 열기가 뜨겁다. 

    “‘블루보틀’의 인기가 이제까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한 스페셜티 커피의 저변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외국 커피업계에서는 한국 커피시장을 일컬어 ‘크레이지 마켓’이라고도 하더라. 시내 거의 모든 빌딩마다 카페가 하나씩은 있지 않나. 커피시장이 커지면 스페셜티 커피도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포부는. 

    “먼저 스페셜티 커피는 물론, 업계 종사자들의 역할도 대중에 알리고 싶다. 한 잔의 커피는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커피 농가, 원두를 선별하는 ‘그린빈 바이어’와 ‘로스터, 바리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전문가의 노력 끝에 커피가 완성된다는 사실이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 또한 스페셜티 커피 본연의 의미에 발맞춰 현재 거래 중인 중남미지역 농장들과 협업해 새로운 커피 농법을 개발하고 싶다. 소비국뿐 아니라 생산국에 이르기까지 스페셜티 커피의 영역을 확장하고픈 욕심이 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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