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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교수

“북한, 음악 통해 ‘정상국가’ 이미지 만들고 있다”

“우상화보다 인민 감정 담은 음악 중시”

“북한, 음악 통해 ‘정상국가’ 이미지 만들고 있다”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피아니스트. 흔히 ‘탈북’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이지만 김철웅(44) 서울교육대 교수에겐 그냥 피아니스트면 족하다. 그는 8세 때 평양음악학교에 들어갔고 정명훈 씨 이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이후 러시아 유학을 거쳐 평양 국립교향악단에 25세 최연소 수석피아니스트로 입단했다. ‘출신성분’이 중요한 북한 사회에서 당 간부인 아버지와 대학 교원인 어머니를 둔 그는 뛰어난 실력까지 겸비하면서 승승장구했다. 이렇게 북한에서 잘나가던 그는 2002년 탈북해 이듬해 남한으로 오게 된다.


北 모든 행사 앞서 찬양 노래보다 애국가 틀어

1월 1일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영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장면. 김철웅 교수는 이 신년사를 보고 “(김 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따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평가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쳐]

1월 1일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영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장면. 김철웅 교수는 이 신년사를 보고 “(김 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따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평가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쳐]

“그때 나이 20대, 참 순진했다.” 탈북의 계기를 묻자 김 교수가 웃으며 답했다. 대학 여자 동기에게 프러포즈하려고 연습한 곡이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가을의 속삭임’. 평양 국립교향악단 수석피아니스트의 독실에서 몰래 한 연주였는데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에 신고가 들어갔다. 

“신고자가 누구인지 압니다. 사실 시말서 쓰고 끝날 일이었는데 당시 사회생활을 전혀 몰랐던 저는 보위부에 끌려간 것으로 이미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마음에 결국 탈북을 택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유학 시절 1년에 한 번은 시베리아 횡단열차편으로 평양에 돌아와 다른 유학생들처럼 강도 높은 사상 검증을 받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면 유학은 중지된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 유학 시절에는 탈북의 유혹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체제의 모범생이었다. 

“오히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됐다. 아무리 손가락질해도 열심히 배워 조선 음악에 이바지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로서 그는 북한에서 음악생활에 점점 지루함을 느꼈다. “명색이 피아니스트인데 항상 ‘조선은 하나다’ ‘원수님께 드리는 노래’ 같은 것만 연주해야 했다. 점점 지루하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런 ‘음악적 자유’에 대한 갈망 또한 탈북을 부추겼다. 

김 교수는 이제 피아니스트를 넘어 북한 인권운동가이자 북한 음악계의 동향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다. 북한은 음악을 지도자 우상화에 적극 활용해왔다. 그런 북한에서도 최근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보에서 새로운 음악을 통해 대외적인 ‘정상국가’ 이미지를 만들려는 노력을 읽어낸다. 

그는 “과거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장군의 노래를 주로 불렀고 애국가를 몰랐다. 김정은 시대에 와서 제일 먼저 바뀐 것이 모든 공연 첫머리에 애국가를 넣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상국가라는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해 첫날 발행된 북한 ‘노동신문’ 3면에는 김 위원장의 사진과 친필 서명이 담긴 글이 실렸다. 리혜정 작사·김강남 작곡의 노래 ‘우리의 국기’ 악보에 직접 ‘전체 인민의 감정이 담긴 훌륭한 노래를 창작한 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며, 대단히 만족하게 생각한다. 널리 보급할 것’이라 쓰고 서명한 것. 이 또한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를 소파에 앉아 발표하는 등 파격적인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서도 “마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따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절대 굴복하지 않으며, 당신처럼 이런 여유쯤은 갖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듯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남북 음악의 다름보다 같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2013년 이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남북 가곡의 밤’ 공연을 계속하는 이유다. “북한 음악 하면 아직도 촌스러운 곡, 이상한 발성의 노래라는 인상이 강하다. 하지만 품격 있는 가곡들도 있다.” 그는 매년 공연마다 ‘조국의 산천’ ‘사랑’ 등 남북한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북한 가곡을 소개해 문화적 이질감을 줄이는 데 힘 쏟고 있다. 탈북 후 이루고 싶은 꿈으로 미국 카네기홀 공연을 꼽던 김 교수는 실제 꿈을 이뤘지만 이제 그의 최고 자랑은 ‘남북 가곡의 밤’이다.


북한 개방 위해서는 음악으로 접근해야

그는 북한 개방을 위해서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가 음악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이 북측에 돈을 주고서라도 공연단을 보내야 한다는 것. “남한 공연단이 들어오면 북한은 ‘우리 장군님이 위대해 공연하러 왔다’고 선전할 것이다. 하지만 전국 방송을 조건으로 한다면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에 대한 친근감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면서 북한 당국의 의도와 반대로 주민들이 남한의 실상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 사례를 들려줬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그것. 북한 당국은 남한을 비난하려고 광주의 실상을 담은 영상을 입수해 방송했지만 주민들은 오히려 남한의 발전상에 놀랐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디아스포라 아리랑, 제11회 문경새재 아리랑제’에서 김 교수가 이끄는 통일앙상블은 ‘아리랑 소나타’를 공연해 호평받았다. 남북의 음악적 공통분모인 아리랑을 토대로 민요 ‘새야새야 파랑새야’에서 영감을 얻은 그가 현대적으로 편곡한 것이다. 

“동학혁명이 우리 민족사의 첫 인권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 운동 정신을 계승해 북한 인권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 그리고 우리가 같음을 인정하고 서로 부둥켜안을 날을 그려보자는 취지의 곡이다.” 

김 교수는 국내 3만여 탈북자가 북한 인권 상황의 산증인이자 먼저 온 통일이라고 강조한다. 오늘도 피아니스트 김철웅은 탈북자는 물론, 북한 주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그래서 그 자신이 오롯이 피아노 앞에 설 수 있는 날을 꿈꾼다.




주간동아 2019.01.11 1172호 (p70~71)

  •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김우정 인턴기자·서강대 사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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