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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의 심중일언

한국의 드레퓌스인가, 하이데거인가

‘제국의 위안부’ 이후를 다룬 책 2권 동시 펴낸 박유하 세종대 교수

한국의 드레퓌스인가, 하이데거인가

[사진 제공: 홍태식]

[사진 제공: 홍태식]

박유하(61)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엄청 유명해졌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송사 때문이다. 이 일로 박 교수를 ‘일본 우익의 앞잡이’로 유명한 혐한작가 오선화와 동렬에 놓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판단의 근거를 제대로 대는 경우는 드물다. 송사의 직접 대상이 된 박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읽은 사람 중 상당수는 ‘아니, 이 책이 뭐가 문제라는 거지’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에 대한 이런 반응은 살짝 과장을 섞으면 ‘한국의 드레퓌스’냐 ‘한국의 하이데거’냐로 대별할 수 있다. 드레퓌스는 프랑스인의 집단적 반유대주의에 희생돼 군법회의에 회부되고 유죄판결을 받아야 했던 프랑스 육군 대위다. 그 부조리함을 고발한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하이데거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 철학자이지만, 나치독일 치하에서 나치즘에 면죄부를 부여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승과 동료 중 상당수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받는 상황에서 나치당에 가입하고 나치즘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가 지난달 2권의 책을 동시에 냈다. ‘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1460일’과 ‘ ‘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한다’이다. 전자는 2014년 6월 소송이 제기된 이후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인 현재까지 4년간의 법정투쟁기다. 후자는 그 법정싸움 도중에 자신에게 가해진 수많은 지식인의 비판과 공격에 대한 반박의 기록이다. 논란의 불씨가 된 ‘제국의 위안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단죄하기 바쁜 분위기에서 그의 항변을 읽어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직접 만나 항변의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책 출간 뒤 영국 옥스퍼드대 초청 강연 발표를 위해 2주간 영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그를 7월 11일 서울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몸살 기운으로 인터뷰를 하루 뒤로 미룬 터라 건강에 대한 질문부터 던졌는데 의외로 “잘 이겨내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두 갈래 투쟁에 대한 기록

[사진 제공: 홍태식]

[사진 제공: 홍태식]

“처음엔 정말 힘들었지만 초기에 비하면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매국노로 몰리면서 온갖 인신공격을 받으니 정말 외롭고 힘들었는데, 제 책을 읽은 일반인들이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고 격려해줘 큰 힘이 됐습니다. 제 책을 오독하는 학자나 전문가를 보면서 절망했지만, 오히려 일반 독자들이 제 책을 편견 없이 이해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품게 됐습니다.” 

박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한 시점은 2013년 7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위안부 지원단체는 그 후 10개월 뒤인 2014년 6월 9명의 할머니 이름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낸다. 2017년 1월 형사1심 판결은 무죄. 하지만 원고 측이 항소했고, 그해 10월 27일 2심에선 1000만 원 벌금형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사흘 만에 박 교수는 대법원에 상고했고 현재 3심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1심 판사는 제 책은 물론, 제가 제출한 방대한 자료를 꼼꼼히 읽고 판결을 내려 감동했습니다. 그런데 50대였던 고등법원 판사님들은 검찰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더군요. 대법원에 상고하면 보통 1년가량 걸린다는데, 제 사건을 맡은 판사님 임기가 올여름 끝나 새로운 판사님이 배정돼야 하는 데다, 어려운 사건일수록 뒤로 미룬다고 하니 올해 안에 판결이 나오기는 힘들 듯합니다. 손해배상 민사소송도 진행 중인데 형사소송이 끝날 때까지 중지된 상태입니다.” 

그에게 왜 책을 한 권으로 안 내고 두 권으로 나눠서 냈는지를 물었다. 학문 영역에서 다뤄질 사항이 법정에서 재단되는 아이러니에 대한 박유하식 대응이었다. 

“한 권은 재판기록 중심입니다. 제가 소송을 겪게 된 것이 책 내용 때문이 아니라 지원단체들이 저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해서임을 법정공방 기록을 통해 보여주려 했습니다. 저에 대한 소송이 책 출간 직후가 아니라 1년 가까이 지나고 이뤄진 이유가 뭘까요. 책을 내고 나서 사죄와 보상에 대한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할머니들을 다시 만나자 위안부 지원단체들이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일부 할머니와 깊은 대화를 통해 2014년 4월 ‘위안부 문제, 제3의 목소리’라는 심포지엄을 개최한 게 결정적이었고요. 제3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핵심 인물인 배춘희 할머니가 그해 6월 9일 작고하시자 이레 만인 6월 16일 소송이 제기된 것을 우연의 일치로 봐야 할까요?” 

다른 한 권은 법정 밖에서 벌어진 학자 내지 전문가들의 비판에 대한 반박이다. 2008년 ‘화해를 위해서’(2005)에 대해 “우익세력과 구별되면서도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일본 리버럴의 대변인”이라고 비판한 ‘재일 지식인’ 서경식, 소송 일주일 전 ‘파시스트는 화해가 아니라 단죄의 대상’이라는 비판의 글을 올린 박노자, 1심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일 때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을 출간한 정영환…. 

“저를 진짜 힘들게 한 것은 법정소송을 제기한 지원단체와 검찰이 아니라 동료 학자라고 믿었던, 그것도 진보적 지식인임을 자임하던 이들이 저를 향해 쏟아놓은 비난이었습니다. 그들은 제 글의 취지를 비튼 뒤 난도질하더군요. 게다가 그들이 저에 대한 비판이라고 쓴 글이 검찰에 의해 증거자료로 제출됐기에, 학술적 비판은 재판이 끝난 뒤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는데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래서 재판 중에 힘겹게 반론을 써야 했던 글도 있고 당시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에 시간이 날 때 추가로 쓴 글도 있습니다.”


허수아비 논법 타파

[사진 제공: 홍태식]

[사진 제공: 홍태식]

박 교수에 대한 비난은 상당수가 글의 전체 취지를 각설하고 ‘그의 글은 이런 뜻’이라며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허수아비 논증이다. “박유하가 이렇게 말했다”고 비판을 가하면 언론과 대중을 통해 다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나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는 식으로 네거티브 대응을 해왔다. 기자는 그런 방식으론 그에게 붙은 주홍글씨를 떼어내기 어렵다는 생각에 허수아비 논제들에 대한 직접적 해명을 요구했다. 

박유하는 “위안부는 본질적으로 매춘부”라고 했는가. 

“책에서 ‘가라유키상의 후예라는 점이 위안부의 본질’이라고 말한 대목에 대한 왜곡입니다. 가라유키상은 ‘외국으로 돈을 벌러 가는 여성’을 뜻하는 일본어입니다. 가난한 지역의 젊은 여성을 남들이 가지 않으려 하는 해외로 보내 힘겨운 일을 떠맡게 한 것을 미화하는 용어죠. 그 역할이 식민지 조선의 가난한 여성에게 떠넘겨졌다는 취지로 말한 겁니다. 그런데 가라유키상의 상당수가 매춘부라며,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에 있다고 곡해한 것입니다. 책에서도 썼듯이, 거기서 제가 말한 본질은 ‘국가 간 이동이 더 쉬워진 근대에 제국주의 세력 확장을 위해 해외로 보내진 남성들을 현지에 묶어두려고 동원된 이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라유키상 얘기를 꺼낸 것은 조선인 위안부가 민족적 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가난한 일본인에게 가해지던 차별이 식민지 조선인에게 투영됐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이었고, 그것이 국가에 의한 계급적 착취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박유하는 “위안부는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고 했는가. 

“그런 표현을 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일본인으로 동원된 식민지 조선 여성의 인식이 당시 일본의 적국이던 중국, 네덜란드 여성의 인식과 같을 수 없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서양 위안부는 마음대로 강간하고 죽여도 되는 ‘전리품’이었다면 일본, 조선, 대만에서 동원된 위안부는 일본군이 패망 순간까지 보호하려 한 ‘군수품’이었다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는 조선인 위안부 역시 전쟁터에서 곧 죽게 될 일본군 병사-여기엔 조선인 병사도 포함돼 있었습니다-에게 동병상련을 느낄 여지가 있었음을 다양한 증언이 뒷받침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도하기 위한 표현이 아니라, 동지적 관계를 강요한 제국주의적 구조의 문제를 비판하려고 사용한 것입니다.” 

박유하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했는가. 

“일본 군대가 직접 나선 강제연행의 증거는 조선인에 관한 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은 맞습니다. 지금까지 일본군으로 알려진 사례들을 저는 군속 대우를 받아 일본군복이 지급되기도 했던 민간인 업자들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또 너무 어리거나 속아서 끌려왔다고 호소하는 여성들을 돌려보낸 사례가 여럿 보인다는 점에서 국가가 직접 나서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 왔다는 주장은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민간인 업자나 포주를 앞세웠다 해도 위안소라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단속한 주체가 일본군이라는 사실 때문에 궁극적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식민지인들에게 불법행위를 전담케 해 동족에 대한 가해자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식민지배의 구조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도 명확히 했습니다.”


왜 마녀몰이의 대상이 됐을까

일본군 위안소의 격문. 왼쪽은 ‘몸과 마음을 바치는 야마토 나데시코(일본여성의 대명사)의 서비스’, 오른쪽은 ‘성스러운 전투에서 대승한 용사를 대환영한다’고 적혀있다. [사진 제공 · 뿌리와이파리]

일본군 위안소의 격문. 왼쪽은 ‘몸과 마음을 바치는 야마토 나데시코(일본여성의 대명사)의 서비스’, 오른쪽은 ‘성스러운 전투에서 대승한 용사를 대환영한다’고 적혀있다. [사진 제공 · 뿌리와이파리]

이처럼 박 교수에 대한 비난의 상당수는 왜곡과 곡해에서 출발한다. 그럼 도대체 왜 그는 그토록 격렬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 것일까.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진보적 지식인과 운동가가 독점해온 일본관에 균열을 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과거사를 사죄하지 않는 일본을 절대악으로 상정하고 그런 일본과 관계회복을 타협, 굴종으로 여기는 민족주의 좌파의 시각에 대해 가난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계급 착취와 남성의 성 착취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제 주장이 몹시 거슬렸던 것 같습니다. 진보적이라고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창부와 정숙한 여성을 구별하는 가부장적 젠더 규범에 젖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위안부를 자꾸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소녀로 이상화하는 데 집착합니다. 그런 가부장적 민족주의 시각에서 힘이 없어 딸과 누이를 지키지 못한 것은 용납돼도 돈벌이를 위해 딸과 누이를 팔아치운 자아상을 수용하기는 어렵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균일한 민족주의적 자아관에 균열을 내는 저에게 어떤 식으로든 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두 가지 고정관념을 겨냥한 책이다. 하나는 일본군 위안부를 ‘일본군 군홧발에 짓밟힌 열다섯 소녀’로만 각인하려는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이다. 미성년 위안부도 존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자료는 20세가 넘은 성인여성이많았음을 보여준다. 또 일본군에 의해 강제 연행된 것보다 조선인 업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가거나 아버지 또는 남편에 의해 팔려간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소녀상에 집착하는 이유는 일본에 대한 증오를 강화하면서 정작 우리의 딸과 누이를 팔아먹은 죄책감은 덜어내려는 집단무의식 때문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죄와 보상이 없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기억 문제였다. 대다수 한국인은 이로 인해 일본에 대한 반감이 크지만, 반대로 상당수 일본인은 속죄의 마음(쓰구나이)을 담아 성의 표시를 했음에도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1993년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면서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 고노 담화와 1995년 무라야마 내각이 일본 정부의 돈과 국민성금으로 조성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이 그 증좌다. 한국에선 당시 이를 평가절하하고 퇴짜를 놨다. 하지만 아베 내각이 들어선 이후 고노 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에 대한 평가가 치솟은 것을 보면서 ‘완벽하진 않지만 그때 사죄와 보상을 받아줬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박 교수는 ‘일본이 잘못한 건 맞지만 사죄와 보상 노력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우리의 분노를 야기한 면도 있다”면서 ‘제대로 알기, 정확한 비판’으로 위안부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위안부 문제를 고리로 헤게모니를 장악해온 ‘진보적 지식인 세력’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됐을 개연성이 크다. 

“저 역시 진보적 지식인 그룹에 속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민족주의적 감성에 지배되는 일원적 시각에서 벗어나 계급 착취 및 페미니즘 관점에서도 이 문제를 바라보자는 제 주장이 이렇게까지 거부반응을 일으킬 줄은 몰랐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제 뒤에 한미일 삼각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한일 간 화해와 협력이 필요한 신자유주의 세력이 숨어 있다고 공격합니다. 한일 화해라는 목적을 위해 견강부회하는 책을 썼다는 거죠. 그런 발상이야말로 학문이 중립을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정치 또는 운동 논리를 위해 종속시켜야 할 대상이라는 그들의 무의식을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옳고 지원단체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목적의식이 더 앞선다는 점을 드러냈다고 봅니다.”


분노를 넘어 아량을

2017년 1심 무죄판결을 받은 직후 박유하 교수. [동아DB]

2017년 1심 무죄판결을 받은 직후 박유하 교수. [동아DB]

미국 정치철학 석학인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교수는 최근 국내 번역된 ‘분노와 용서’에서 분노와 용서의 감정 밑에 깔린 불순함을 비판했다. 분노는 대부분 피해자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겨냥하고 있으며, 그에게 굴욕감을 맛보게 하려는 가학성의 발톱을 감추고 있다고 고발했다. 또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용서의 드라마’에도 상대에게 모욕감을 안기려는 가학성이 숨어 있다고 고발했다. 즉 잘못을 고백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드라마에도 가해자의 굴욕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르시시즘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누스바움 교수는 이런 분노와 용서의 악감정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분노는 과거지향적 인과응보의 감정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 제도 개선을 지향해야 하고, 용서 역시 상대를 무조건적으로 포용하는 아량과 사랑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국 사회에 이를 적용하면 한국 우파와 좌파의 과거지향적 분노와 조건부 용서의 대외적 대상이 상호교차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우파가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을 부르며 상대의 굴욕이 없는 한 결코 용서도 있을 수 없다며 이를 가는 대상이 북한이라면, 한국 좌파가 역사적 정의 실현을 위해 꼭 국가적 사죄를 받아야 한다고 집착하는 대상은 일본이다. 한국 좌파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미래지향적 남북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분노의 분출을 억제하고 아량을 통해 북한을 무장 해제시킬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반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해 한국이 과거사에 대한 분노를 살짝 거두고 먼저 아량을 베풀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분노는 어찌 보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한국에서 피해 경험이 다른 피해자에 대한 이해로 발전하지 않고 ‘내 피해가 더 크고 아프다’를 주장하는 식으로만 표출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피해 경험이 가해자를 향한 울분과 타자 거부밖에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피해 경험이 다른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이해로 발전할 때 인류 사회 차원에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모든 민족주의는 수난을 겪기 마련인데 한국인만 유독 내 수난이 더 크고 아프다며 퇴행적 반응을 보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먼저 일본을 용서하면 일본이 변화하지 않을까’라는 말을 돌아가신 배춘희 할머니로부터 들었어요. 말로는 당사자주의라고 하는데, 위안부 할머니 가운데 이미 그런 마음을 지닌 분도 계셨음을 우리는 몰랐잖아요. 일본이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 당시 사죄의 마음이 있다고 답한 일본인이 대다수였지만, 그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20년이 지난 지금 혐한사회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위안부 운동가 중에는 ‘일왕을 무릎 꿇리는 게 우리 목표’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결국 당사자들의 마음 치유와 양국 국민 사이의 호혜가 우리의 목표라면 상대에게 굴욕감을 안기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일까 물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기자는 기사 첫머리에서 박 교수가 한국의 드레퓌스일지 한국의 하이데거일지를 물었다. 물론 과장된 질문이긴 하지만, 기자는 그가 드레퓌스도 하이데거도 아니기를 바란다. 한국 사회의 익숙한 통념에 문제제기를 했다고 지식인의 양심을 감옥에 가둘 만큼 한국 사회가 야만적이지 않듯이, ‘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에서 ‘제국’이 제국주의 일본을 비판하기 위해 단 것임을 눈치 못 챌 정도로 어리석다고 믿지도 않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18.07.18 1147호 (p26~30)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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