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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카스트로 시대’를 이끌 ‘쿠바의 후진타오’

미겔 디아스카넬 신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포스트 카스트로 시대’를 이끌 ‘쿠바의 후진타오’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2019년 쿠바혁명 60주년을 맞는 쿠바는 가장 큰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 포스트 카스트로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1959년 풀헨시오 바티스타 친미정권을 무너뜨린 피델 카스트로(1926~2016)가 건강 악화로 동생 라울(87)에게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물려준 것이 2008년. 이후 10년간 쿠바를 이끌었던 라울이 4월 19일(현지시각) 그 자리를 미겔 디아스카넬(58)에게 넘겼다. 

쿠바혁명 이후 군 출신이 아닌 첫 최고지도자인 디아스카넬은 여러모로 후진타오(胡錦濤) 전 중국 국가주석을 연상케 한다. 1942년생인 후진타오는 중국혁명에 참여하지 않은 첫 최고지도자였다. 디아스카넬은 쿠바혁명 다음 해인 1960년 태어난 ‘혁명 후 세대’다. 이공계 출신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서 경력을 쌓았고 지방정부에서 낸 성과를 토대로 중앙정계에 진출한 뒤 과묵하면서도 온화한 성격으로 혁명 원로들로부터 신망을 얻어 최고권좌에 올랐다는 점도 같다.


고물선을 물려받은 관리자형 지도자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새 국가평의회 의장(왼쪽)이 4월 19일(현지시각) 수도 아바나 국가평의회에서 라울 카스트로 전 의장과 함께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새 국가평의회 의장(왼쪽)이 4월 19일(현지시각) 수도 아바나 국가평의회에서 라울 카스트로 전 의장과 함께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디아스카넬은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3년간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곤 공청단을 배경으로 성장했다. 비야클라라주, 올긴주 당서기로서 이들 주의 관광자원을 개발해 해외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을 인정받아 2003년 최연소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됐고 2009년 고등교육장관, 2012년 국가평의회 부의장으로 승승장구했다. 라울은 2013년 그를 수석부의장으로 임명하며 사실상 후계자로 지명했다. 후진타오 역시 이공계 출신으로 공청단과 티베트자치구 및 구이저우(貴州)성 당서기로 혁명 1세대의 신망을 얻었고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일찍부터 ‘포스트 장쩌민(江澤民) 시대’ 지도자로 낙점됐다. 

이를 토대로 쿠바의 후진타오가 걸어갈 길을 엿볼 수 있다. 후진타오는 철저한 관리자형 지도자였다. 덩샤오핑에서 시작된 개혁·개방을 안착하게 하는 임무를 수행한 뒤 정확히 10년 임기를 채우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 후계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시황제’로 불릴 정도로 패권지향적 권력추구자인 것과는 달랐다. 라울이 디아스카넬을 후계자로 지명한 이유도 쿠바의 공산주의체제가 급격히 자본주의화하는 것을 막으면서 중국형 또는 베트남형 경제개발을 추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진타오가 타륜을 물려받을 당시 중국이 순풍에 돛 달고 달리는 쾌속선이었다면, 디아스카넬이 타륜을 물려받은 쿠바는 돛대도 부러지고 삿대로 망가진 고물선에 가깝다. 인구 1100만 명의 섬나라 쿠바는 1962년 도입된 배급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전체 근로자의 75%는 정부 부문에서 일하고 자영업을 하는 근로자는 25%에 머물고 있다. 정부 부문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월 30달러(약 3만2000원) 선밖에 안 된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식량을 받으려면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하지만 겨우 굶주림만 면할 정도로만 배급되고 있다. 많지 않은 식량 배급을 정부가 통제하다 보니 창고에 쌓아둔 식량이 썩어서 버려야 하는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 

그 식량과 에너지도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한 것이다. 그나마 우고 차베스 대통령 시절부터 남미 최대 산유국 베네수엘라로부터 공짜로 원유를 공급받았지만 2014년 이후 유가 급락의 직격탄을 맞은 베네수엘라 경제가 파탄 위기에 빠지면서 그 혜택도 급감하고 있다. 2015년 하루 평균 공급량이 11만 배럴이었으나 현재 4만 배럴까지 줄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이던 2014년 미국과 수교가 이뤄지면서 탈출구가 보이는 듯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다시 수렁에 빠지는 형국이다. ‘55년 만의 수교’ ‘88년 만의 미국 대통령 방문’으로 장밋빛으로 보이던 양국관계는 다시 급격하게 냉각되면서 기대했던 외국인 투자와 관광자원 개발이 무산되거나 유예되고 있기 때문이다. 

쿠바 수도 아바나의 미국대사관 직원과 가족에 대한 정체불명의 ‘음파 공격’으로 청각장애를 호소하는 일이 늘어나자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대사관 인력을 3분의 2 수준으로 줄였고 비자 업무도 마비됐다. 그로 인해 미국인의 쿠바 여행이 제한되고, 쿠바 군부가 운영하는 국영기업과 교역 역시 중단됐다. 미국의 경제봉쇄 조치는 제3국과 교역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 국제금융기구에도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차관 도입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2015년 경제성장률 4%로 반짝 성장세를 보였던 쿠바는 2016년 -0.9%, 2017년 0.5%로 다시 주저앉았다. 

미국과 외교관계 복원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디아스카넬이 그런 돌파구를 마련할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국가평의회 의장직은 내놨지만 공산당 총서기직은 2021년까지 유지하기로 한 라울의 꼭두각시 내지 얼굴마담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투철한 라울리스트

2000년 4월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77그룹 정상회담에 나란히 참석한 피델(왼쪽)과 라울 카스트로 형제. [뉴시스]

2000년 4월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77그룹 정상회담에 나란히 참석한 피델(왼쪽)과 라울 카스트로 형제. [뉴시스]

라울은 원래 민족혁명으로 시작된 쿠바혁명을 공산혁명으로 변형한 주역이었다. 형 피델은 쿠바혁명 성공 후 미 NBC 프로그램 ‘미트 더 프레스’에 출연해 “쿠바혁명은 공산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한 민족주의자였다. 그러다 열혈 사회주의자인 라울의 설득으로 1962년 쿠바가 사회주의국가임을 선포한다. 형에게 불멸의 혁명 동지가 된 체 게바라를 소개해준 것도 라울이었다. 

라울은 이후 쿠바군 총사령관과 국방장관을 맡으며 옛 소련으로부터 받는 군사·경제적 원조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는 쿠바의 동성애 문화가 군부를 오염시킨다고 판단해 1965~68년 UMAP로 알려진 군사훈련 및 강제노역 캠프를 운영하며 수천 명의 동성애자를 탄압했다. 

디아스카넬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복장도착자 축제와 문신 축제를 허용하며 동성애 문화에 대해 유화적 태도를 보인 점이 이런 라울과 차별성의 증좌로 언급된다. 디아스카넬이 쿠바에서 한때 금지된 로큰롤을 좋아하고 청바지를 입고 모터사이클을 즐겨 탄다는 것도 보수적 사회주의자 라울의 이미지와 대비해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애나 퀸타나 미국 헤리티지재단 정책분석가는 이에 대해 쿠바인의 뇌리에 각인된 풍운아 ‘체 게바라’의 이미지 덧씌우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1980년대 쿠바를 탈출한 보트피플 2세인 퀸타나는 시사월간지 ‘애틀랜타’에 기고한 ‘이것은 한 시대의 끝이 아니다’라는 글에서 디아스카넬이 공산당과 군부를 여전히 장악한 라울의 충복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디아스카넬이 쿠바혁명 이후 카스트로 성을 소유하지 않은 첫 국가평의회 의장이라는 보도는 오보”라고 밝혔다. 1959~76년 국가평의회 의장은 오스발도 도르티코스(1919~83) 였지만 실권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할 뿐이라면서 공산당과 군부를 장악한 사람이 최고권력자라는 점을 상기시킨 것. 

쿠바 헌법 제5조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이 쿠바 사회와 국가를 지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쿠바 군부는 1959년 이래 줄곧 라울의 손아귀에 있었다. 쿠바 최대 기업은 가에사(GAESA)다. 항공, 호텔, 통신, 주유소, 외환, 소매점 등 50개 업종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문어발식 기업으로 쿠바 경제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가에사는 쿠바 군부 산하 기업으로 ‘래디슨, 매리엇, 힐튼을 한꺼번에 소유한 펜타곤’에 비유되곤 한다. 가에사 회장인 루이스 알베르토 로드리게스 장군은 라울의 사위다. 또 라울의 외아들인 알레한드로 카스트로(53)는 쿠바 군부와 내무부 산하 정보기관의 수장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한 2016년 한 해에만 1만 명에 가까운 반체제 인사를 구속했는데 그중 498명은 오바마 전 대통령 방문 기간에 체포됐다.


라울의 아들을 위한 과도기 지도자?

결국 쿠바 사회주의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라울이기 때문에 쿠바에 진정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수 있느냐는 라울리스트이냐, 아니냐로 구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디아스카넬은 라울이 발탁하고 라울이 후계자로 지명한 철저한 라울리스트다. 실제 그는 국가평의회 의장이 된 후 취임사에서 “라울 동지가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결정을 선도할 것임을 확고히 밝힌다”며 “라울은 정치의 선봉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라울은 한 번도 탈사회주의를 언급한 적이 없는 골수 사회주의자다. 2년 뒤 자신이 국가평의회 의장에서 물러날 것임을 밝힌 2016년 쿠바 공산당 전당대회에서도 “사유화를 일부 인정한 것을 놓고 쿠바에 자본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첫 조치가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결코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라울리스트인 디아스카넬이 아무리 현실주의적 실용주의자라 해도 쿠바의 탈공산화를 주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그가 카스트로 가문이 아니기 때문에 라울이 집권하던 시기의 경제개혁 조치보다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라울이 아들인 알레한드로에게 권력을 넘기기 전까지 과도기 지도자로 활용하는 카드에 불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체 게바라를 연상케 하는 낭만적 이미지를 앞세워 쿠바 민심을 다독이는 동시에 대외적으로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는 척 하며 알레한드로가 당과 군부를 완전 장악하면 그에게 권좌를 넘겨주는 역할이란 것. 

하지만 한편에선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끈 중국과 베트남 모델을 적극 도입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냉전기엔 옛 소련, 탈냉전기엔 베네수엘라라는 후원국을 확보했듯이 중국과 베트남을 새로운 후원국으로 찾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3월 아바나에서 쿠바와 베트남 최고위급 회담이 열린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디아스카넬의 지도력을 평가할 시금석은 화폐통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쿠바에는 2가지 화폐가 통용되고 있다. 내국인 전용인 쿱(CUP·쿠바 페소)과 외국인 전용인 쿡(CUC·태환 페소)이다. 1쿡은 1달러 정도로 대략 24쿱으로 환산됐지만 최근엔 가치가 요동치고 있다. 이중 화폐가 통용되다 보니 거래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데다 달러 공급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몇 년째 있어 왔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두 화폐 가운데 어느 쪽에 유리하게 통합이 진행되느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빈부격차가 가속화되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화폐통합이 이뤄질 가능성이 큰데 그 성패에 국민적 지지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주간동아 2018.05.02 1136호 (p58~60)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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