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8

2018.03.07

인터뷰 | 김희정 ACC 아시아문화원 공연사업본부장

“아시아 문화는 ‘우리’라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 번 보는 공연 아닌 이해와 공감대 바탕…‘글로벌 인권’ 작품 만들 것”

  • 입력2018-03-06 10:36:4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김희정 ACC 아시아문화원 공연사업본부장

    김희정 ACC 아시아문화원 공연사업본부장

    2월 22일 오후 7시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극장 1’ FOH(주조종실). 김희정(50) ACC 아시아문화원 공연사업본부장이 분주히 손을 놀리며 스태프들과 함께 조명, 영상, 음악 점검을 마쳤다. 

    “자, 갑시다. 고!” 

    7시 30분, 그의 ‘큐사인’에 빨강, 파랑, 노랑 형형색색의 조명이 춤을 춘다. 말레이시아 출신 모델이 기다란 천으로 몸을 감싼 전통복 ‘사롱’을 입고 힘차게 무대를 걷자 객석에선 감탄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무대 3면에 배치된 대형전광판에는 모델들이 등장할 때마다 펄럭이는 각국 국기가 나타났다. 이날 ACC는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을 기념해 ‘ACC 아시아 전통복 패션쇼’를 열었다.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23개국 모델들의 경쾌한 발걸음에 맞춘 음악과 조명은 현대적 감각의 뉴욕 패션쇼를 연상케 했다. 이날 행사 사회와 축하공연을 맡은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 에릭 남은 각국 모델들과 올림픽이나 전통의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가 축하공연을 할 때는 모델들과 관객이 함께 박수치며 분위기를 돋웠다.

    “우리라는 맥락으로…”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이라는 세계적 이슈를 활용해 아시아 문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패션쇼를 기획했어요. 광주에는 다문화가정도 많아 아시아 문화를 향유하며 함께한다는 의미도 있고요.” 

    이날 공연을 기획한 김 본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2016년 3월 아시아문화원 공연사업본부장 개방형 공모에 응모해 선발, 임명된 뒤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 맥락 속에서 ‘아시아 문화 코드’를 드러내는 공연으로 호평받았다. 아시아문화원은 ACC 운영에 필요한 아시아 문화 연구와 콘텐츠 창작·유통 등을 위해 설립된 준정부기관. 다음은 김 본부장과 일문일답이다. 



    전통복 패션쇼가 현대적인 느낌이다. 

    “전통의상을 ‘유물’처럼 보여주는 게 아니라 현대 문화로 접근하려 했다. 아시아 모든 나라가 ‘우리’라는 맥락으로 접근해야 공감대가 형성되고 미래지향적 교류로 이어갈 수 있다. 다양한 아시아 문화가 세계무대의 주류로 떠오른 만큼 우리도 차근차근 대비해야 한다.” 

    ‘우리’라는 맥락은…. 

    “예를 들어 아리랑을 한국 전통음악으로 소개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해외 작곡가들이 아리랑을 재창작하면서 함께 연주하면 더 깊고 더 오래 공감할 수 있다. 한 번 보고 마는 공연이 아닌, 함께 공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매년 평균 160여 회 공연을 ACC 무대에 올렸고, 다양한 콘텐츠 사업도 하고 있다.” 

    콘텐츠 사업에는 어떤 게 있나. 

    “2016년부터 시작한 ‘중앙아시아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의 전래동화를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었고, 이후 동화책으로 제작해 각국 도서관에 보냈다.” 

    왜 중앙아시아인가. 

    “중앙아시아 나라들은 자원부국이지만 문화적 기반이 약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의 ‘문화 소스’를 연구개발해 스토리텔링으로 만들면 동화책은 물론 영화, 연극, 드라마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 중앙아시아 전래동화 20여 권을 한국어, 영어, 러시아어로 출판했고 동화책을 바탕으로 음악극 ‘작은 악사(A Little Musician)’를 제작해 무대에 올렸다. 사실 미국과 유럽은 아시아 문화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싶어도 그런 기반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아시아 인구는 늘고 있지만 향유할 만한 문화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 다양성에 대한 서구의 필요성을 이해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이러한 콘텐츠 사업을 통해 세계에 대한민국 위상을 자연스레 알릴 수 있다. 우리 문화도 함께 알리면서 하나 된 아시아, ‘원아시아’도 구현할 수 있고…. ACC 슬로건도 ‘세계를 향한 아시아 문화의 창’이다.(웃음)”

    ‘글로벌 인권’이라는 모멘텀

    2016년 11월 ‘ACC 아시아를 위한 심포니’ 공연에 앞서 유명 작곡가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는 김희정 공연사업본부장. [ICKHEO]

    2016년 11월 ‘ACC 아시아를 위한 심포니’ 공연에 앞서 유명 작곡가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는 김희정 공연사업본부장. [ICKHEO]

    음악극 ‘작은 악사’는 우즈베키스탄 동화작가의 그림책을 원본으로 삼았다. 떠돌이 악사인 모비치가 엄마처럼 따뜻함을 선물하는 햇살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ACC의 ‘아시아스토리커뮤니티’ 사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지난해 12월 이란 하마단에서 열린 제24회 국제 어린이·청소년 연극 축제에서 3회 공연이 전석 매진됐고, 최고 영예인 연출상을 비롯해 음악상, 무대디자인상, 최우수 여배우상을 석권했다. 

    공연사업본부장에 도전한 이유가 궁금한데. 

    “나는 주로 미국 필라델피아와 런던, 파리 등에서 공부해 아시아 문화에 대한 갈증을 많이 느꼈다. 정체성이라고 해야 할까.(웃음) 그래서 1990년대 후반부터 홍콩차이니즈오케스트라, 대만국립극장, 싱가포르차이니즈오케스트라 등과 일했고, 2002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주제가도 작곡했다. ACC는 선진국 공연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새롭게 도전하고 싶었다.” 

    일본군 위안부 등 여성 인권과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선보여 해외에선 ‘역사와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작곡가’로 알려졌는데. 

    “일본군 병사가 가르쳐준 엔카(演歌)만 기억하는 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육성을 바탕으로 현악 4중주 작품을 만들었다. ‘사운드 다큐멘터리’ 장르를 개척했는데, 독일에서 큰 관심을 보여 여러 차례 공연했다. 반면 친일파와 결혼한 일본 여성들의 해방 이후 기구한 삶을 담은 ‘로스트 홈(Lost Home)’도 작곡했다. 위안부 할머니나 일본 여성이나 인권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ACC가 들어선 전남도청은 광주 인권을 대변하지만, 전 세계 인권 문제를 껴안을 때 더 큰 모멘텀(동력)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올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권지도자 넬슨 만델라의 탄생 100주년이고, 흑인들만 등장하는 오페라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를 창작한 조지 거슈윈의 탄생 1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들의 ‘글로벌 인권’ 의식을 담은 작품을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공연사업본부장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지방마다 문화 콘텐츠가 굉장히 많은데 (문화예술계가) 서울을 중심으로 일하다 보니 이를 놓치는 거 같다. 그 결과 문화권이 서울과 비서울으로 나뉘는 듯해 안타깝다. 각 지역의 극장과 기관들이 나서 지역의 우수 콘텐츠를 서울 등 전국에 알리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김희정 공연사업본부장은… 상명대 예술문화산업대 교수. 연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대와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ICCE에서 연구했다. 중국 민족교향악단, 알래스카 크로스사운드음악제 등 국내외 주요 무대의 위촉 작곡가로 참여했고 뮤지컬, 연극, 국악 등에서 활동하는 ‘토털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2003년 세계여성음악제 진행위원장, 미국 국제여성음악인연맹 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외교부 대변인실 PR 커뮤니케이션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