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1

2017.11.01

경제 Zoom In! 기업인 열전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 ‘베디스 돌풍’은 계속된다”

‘현장수취 거절제’ ‘매트리스 3년 무상 AS’ 도입 눈길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7-10-30 11:51:34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인 9월 18일, 경기 포천시 (주)세양침대 본사에서는 5t 트럭에 침대 프레임을 싣는 지게차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베디스’의 인기몰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진정호(46·사진) 대표의 말에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바쁜 현대인이 하루 중 가장 편히 쉬는 공간이 침대잖아요? 비싼 돈 들여 유명 브랜드 제품을 안 사도 단잠을 잘 수 있는 침대를 만들어야죠. 빚쟁이라도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도록 말이죠.(웃음) 기술력은 자신 있습니다.”

    1986년 세양가구로 출발한 세양침대는 30여 년 동안 침대 프레임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다 2015년 매트리스 제조사를 인수하면서 침대 완제품 생산업체로 거듭났다. 국내에서 침대 프레임과 매트리스 제작, 물류를 동시에 하는 기업은 세양침대를 포함해 몇 곳뿐이라는 게 진 대표의 설명. 그해 가을 진 대표는 자사 브랜드이자 쇼핑몰인 ‘베디스’를 출범해 가구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침대 설치전문가가 직접 배송·설치하고, 소비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현장에서 추가 비용 없이 반품하는 ‘현장수취 거절제’를 선언했다. 평균 1년인 무상 매트리스 AS(애프터서비스) 기간을 3년으로 늘렸다.

    동종업계에선 “젊은 친구가 혈기만 믿고 밀어붙인다”는 우려와 질시가 있었지만, 세양침대는 보란 듯이 매출 성장을 이어갔다. 합리적 가격에 제품 디자인과 품질 경쟁력까지 인정받았기 때문. 결국 세양침대는 유명 브랜드 A사와 상표계약을 맺어 롯데홈쇼핑 침대 부문 매출 1위를 기록했고, 2016 우수중소기업대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진 대표와 인터뷰는 9월 18일과 10월 18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녹차 티백을 이리저리 흔들며 우려내던 그가 찻잔을 건넸고, 이후 인터뷰를 시작했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침대회사 대표 된 건축설계사

    세양침대와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대학에선 건축공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3년간 건축설계회사에 다니다 침대업계에 뛰어들었다.(웃음) 건축설계업계에선 대학원을 다니는 게 ‘기본’이어서 야간 대학원을 다녔는데, 그때 낮에 아버지 일을 도와드린 게 인연이 됐다. 아버지는 1986년 세양가구(2015년 (주)세양침대로 사명 변경)를 설립해 침대 프레임 공장을 운영했는데, 직원 몇 명과 함께하는 가내수공업 규모였다. 공장 청소도 하면서 프레임 만드는 일을 도와드렸는데, 제가 믿을 만했는지 회사를 맡아보라고 권유하시더라.(웃음) 2000년 1월 3일부터 본격적으로 출근해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낯설었겠다.
    “어릴 적부터 어깨 너머로 많이 봐서 익숙했다. 건축설계 일을 했으니 침대 프레임 설계도 금방 배웠고…. 우리 회사는 침대 프레임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회사로는 규모가 비교적 컸고, 그동안 쌓은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공급처를 늘려나갔다. 유명 침대회사에서 원하는 디자인을 요청하기 전에 나와 디자이너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낸 침대 프레임을 만든 뒤 ‘이런 걸 써주세요’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제품에 만족한 회사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공급처가 늘었고,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침대 프레임을 가장 많이 만들고 있다. 제조 설비나 공급량만 봐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침대 프레임의 특징은 뭔가.
    “프레임의 핵심은 내구성과 모서리 라운딩, 그리고 외형과 색상이다. 튼튼해야 하고, 인체 안정성을 고려해 외형을 선택한다. 사실 외형과 색상은 100% 소비자 취향이고, 각 가정의 인테리어 분위기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원목, 무늬목, 인조가죽 등 재질과 색상이 다른 제품들을 쏟아내는 것도 소비자의 기호가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유명 브랜드 침대에도 공급하나.
    “유명 회사의 경우 매트리스는 자체 생산하지만 침대 프레임은 자사 전용 외주업체에서 OEM 방식으로 공급받는다.”



    “모로 누워 잔다면 메모리폼 추천”

    침대 프레임으로 성장한 회사인데, 매트리스 제조는….
    “2015년 매트리스 제조업체를 인수하면서 침대 완제품 제조 회사가 됐다. 인수한 매트리스 회사도 오랫동안 노하우가 쌓인 곳이었고, 지속적으로 매트리스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침대회사는 매트리스나 프레임 둘 중 하나만 만드는 게 일반적인데, 매트리스와 프레임을 동시에 만들고 물류까지 하는 회사는 몇 군데 안 된다.”

    어떤 매트리스가 좋은가.
    “매트리스는 체형에 맞게 선택해야 한다. 매트리스에 누웠을 때 편안한 느낌이 들면 최고다. 일반적으로 잠을 잘 때 모로 눕는 스타일이라면 푹신한 메모리폼 매트리스가 좋고, 척추가 안 좋은 사람이나 성장기 청소년은 조금 딱딱한 매트리스를 추천한다. 온돌방에서 요를 깔고 자는 게 편하다면 라텍스 제품을 권한다. 매트리스를 산 지 얼마 안 됐는데 소리가 난다면 정확한 시방서대로 제작하지 않았을 거다.”

    기자처럼 중량이 꽤 나가는 사람은 매트리스 ‘스프링 소리’에 익숙하다.
    “아무리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 해도….(웃음) 매트리스 제조 시 재료비를 아끼려고 얇은 강선을 쓰는 식으로 ‘반칙’하는 업체도 있긴 하다. 그런데 정확한 시방서대로 제작하지 않으면 얼마 안 돼 매트리스에서 소리가 나거나 누우면 불편하다. 그런 제품은 소비자가 금방 안다.”

    2015년 11월 자사 쇼핑몰이자 브랜드인 ‘베디스’를 공식 오픈했는데.
    “30년 전통의 침대 프레임 기술력에 매트리스 회사까지 인수하면서 우리만의 독자 브랜드 제품을 출시하고 싶었다. 싱글사이즈부터 킹사이즈까지 다양한 디자인의 침대 프레임과 매트리스를 직접 설계, 제조, 유통하니 대리점 중간 마진이 사라져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할 수 있게 됐다.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게 왕도다.”

    ‘현장수취 거절제’ ‘매트리스 3년 무상 AS’는 큰 관심을 끌었는데.  
    “그동안 소비자는 비싼 가구를 집에 들여놓을 때 막상 인터넷 또는 TV홈쇼핑에서 보던 것과 색상, 느낌이 달라 당황하거나 반품을 하려다가도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베디스’ 쇼핑몰을 오픈하면서 최초로 집에서 침대를 받아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려보내는 ‘현장수취 거절제’를 실시한 거다. ‘눈에 안 들면 무료로 가져올 테니 기술력을 믿고 사보시라’는 자신감이다. 매트리스는 보통 1년 무상 AS를 하는데 우리는 이를 3년으로 늘렸다. 우려의 시선도 있었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좋았다. ‘베디스’ 론칭 후 연매출 300억 원을 넘었고, 5월에는 이탈리아 엠메그룹의 브랜드 도르미릴렉스도 론칭했다.”

    그런데 ‘베디스’는 무슨 뜻인가.
    “‘베드 이즈(Bed is)’의 줄임말인데, ‘우리가 침대에 대한 정의를 하겠다’는 뜻도 있고, ‘침대란 이거다’라고 말하고도 싶었다. 바쁜 현대인의 잠자고 싶은 욕구를 충족해주고, 중산층이 좋은 제품을 몇십만 원대 합리적 가격에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도 담았다. 우리 직원이 낸 아이디어인데, ‘에이스’ ‘시몬스’ ‘에몬스’처럼 유명 침대 브랜드는 ‘~스’로 끝난다고 해서….(웃음)”   

    온라인 판매만 하는 ‘벤더사(vendor company·판매대행사)’들과도 경쟁해야 하는데.
    “벤더사는 직접 제조하지 않고 유통만 하기 때문에 팔기만 하면 되니 제조 부담이 없는 건 장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조와 물류, 판매를 동시에 하다 보니 여러 부문에서 가격 경쟁력이 생기고, 소비자와 직거래를 통해 신뢰도 얻을 수 있었다.”



    개발·제조·물류기지 통합

    인터뷰 전 인터넷 홈페이지 댓글을 보니 제품 만족도는 높은데 간혹 배송 지연에 대한 글이 보이더라.
    “옳은 지적이다. 구매 주문이 많아 매일 트럭 15대가 물건을 나르는데, 4곳에 분산된 생산기지의 진입로가 협소해 ‘물류 소화’가 잘 안 됐다. 최근 공장을 이전해 물류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세양침대는 9월 말 새 공장과 사무실 건물을 지어 그동안 분산돼 있던 개발·제조·물류기지와 전시관을 한곳으로 통합했다.

    진 대표가 회사를 맡은 후 급성장했지만 어려움도 많았을 거 같다.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2000년대까지는 제품을 공급하면 주로 어음을 주던 시절이다. 그 어음이 부도가 나 힘든 적이 많았다. 2013년에는 유명 가구회사 A사가 홈쇼핑 방송 중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또 한 번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제품 값 8억여 원을 어음으로 받았는데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니 홈쇼핑을 통해 팔지 않으면 회사가 망할 상황이었다. 그때 홈쇼핑 회사 관계자를 찾아가 ‘우리가 (침대를) 팔 테니 방송하게 해달라’고 부탁해 직접 방송 계약을 맺고 침대를 팔아 위기를 넘을 수 있었다. 그때 가만히 앉아서 당했다면 오늘날 ‘베디스’도 없었을 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면서 970원 하던 환율이 1500원대로 올랐을 때도 애를 많이 먹었다.(웃음)”

    앞서 중국에서도 침대 프레임을 생산한다고 했는데 수입도 하나.
    “2005년 중국 기업과 함께 ‘한화(韓華)가구’를 설립했다. 우리 회사가 자본을 대고 중국 측이 기술과 인력을 담당했는데, 당시 중국에 진출하지 않으면 침대 프레임 가격 경쟁을 견뎌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중국 현지 공장은 3년 뒤부터 매월 107개 컨테이너를 보내와 국내 제조품과 함께 판매·납품했다. 그런데 그 시기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환율이 대폭 뛰었다.”



    “나만 배부른 대표는 되기 싫다”

    환율 급등으로 오히려 손해가 났을 거 같은데.
    “당시 한국 기업이 투자한 중국 현지 가구 업체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나도 고민이 많았다.” 그는 당시가 생각나는지 볼펜을 쥐고는 입으로 가져다 댔다. 몇 해 전 담배를 끊었다고 했지만, 그때를 떠올리니 담배 생각이 나는 듯했다.  

    “계약한 지 얼마 안 된 중국 파트너를 내치려 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서로 약속한 게 있어 ‘그래, 손해를 보더라도 중국 파트너사와 함께 살자. 약속을 지키자’고 생각했고, 손해 보고 물건을 들여와 팔았다. 중국 파트너사도 우리를 믿고 설비를 꾸렸는데 내가 모른 체하면 되겠나. 당시 18억 원가량 손해 봤지만 지금까지 공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 파트너사도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좋은 제품을 비교적 저렴하게 들여온다. 그럼 된 거다.(웃음)”

    경영철학은 ‘어려워도 함께 가자’인가.
    “‘안 된다’고 생각하면 계속 안 된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 와도 거기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관찰자적 시점으로, 제3자적 시각으로 상황을 냉정히 바라보고 해결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판단해야 할 상황에서 고민하고 미뤄선 안 되고, 결정과 진행을 더 빠르게 해야 한다. 여러 제품 가운데 ‘이게 된다’ 싶으면 개발해 밀어붙이는 것처럼 판단과 추진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건 회사 대표의 개인적 소임이고, 사실 제조업은 직원들이 제일 중요하다.”

    비단 제조업종만은 아닐 거 같은데.
    “판매는 가족이나 친구를 데려와 할 수 있지만, 제조는 숙련된 직원이 못 받쳐주면 어렵다. 직원은 최고 파트너라는 생각으로 함께 호흡해야 하고, 회사 사정을 다 얘기하고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숨길 것도 없다. 많이 벌면 직원들도 많이 가져가고, 적게 벌면 함께 허리띠 졸라매는 거다. 사실 나도 20여 년 동안 회사를 운영했지만 회사에서 급여 이외 잉여금을 가져간 적이 없다. 현재 공장 이전과 회사 발전을 위해 잉여금은 투자하는 단계고, 이 부분은 100명 넘는 직원도 다 안다. 나만 배부르게 챙기고 손가락질 받는 대표는 정말 되기 싫다. 요즘 직원들과 임금협상을 하면서 한 번 더 회사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진 대표는 500만 원 조금 넘는 급여와 경기 남양주 아파트 한 채가 재산의 전부라고 했다. 학교 보건교사인 아내와 맞벌이를 하면서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데, 아내가 학교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면 ‘조금만 더 참자’며 만류한다면서 웃었다. 그러고 보니 진 대표는 여느 회사 대표와 달리 꾸밈이나 ‘보여주기식’ 행동이 없었다. 기자가 대표실을 찾았을 때도 그는 청바지 차림으로 테이블을 치우며 의자를 권했다. 직원이 차라도 내올 법한데도 그는 직접 녹차를 우려냈다. 몸에 밴 솔직함과 소탈함,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언행은 ‘변화에 빠르고 유연한 젊은 기업’이라는 ‘베디스’의 기업철학을 대변하고 있었다.  

    임금협상은 어떻게 하나.
    “일반적으로 정확한 데이터를 펼쳐놓고 대화를 한다. ‘회사가 이만큼 성장했으니 이만큼 급여를 올려주겠다’고 말하는데, 가끔 직원 중에는 ‘내가 이만큼 했고, 또 이만큼 할 테니 올려달라’고 먼저 요구하기도 한다.”

    그럼 올려주나.
    “웬만하면(올려준다). 올려주면 직원들도 자신의 몸값을 하려고 함께 노력한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다양한 침대를 많은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찾아가는 수면차량’을 운영할 생각이다. 현재 본사와 포천 가구 물류장, 파주출판단지 등에 전시장을 운영 중인데 한계가 있다. 아파트나 단체 행사장을 찾아가 ‘베디스’의 기술력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베디스 침대에서 자니까 정말 편하더라’는 평가와 함께 기술력과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점도 인정받고 싶다. 너무 욕심이 많나.(웃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