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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제왕적 대통령의 실패, 한 번이면 족하다”

개헌의 큰 방향은 대통령 · 국회 권한 축소… “임기 내 반드시 개헌” 정치권 다시 약속해야

“제왕적 대통령의 실패, 한 번이면 족하다”

허영 교수 약력

1936년 충남 부여 출생
1971년 독일 뮌헨대 헌법학 박사
독일 뮌헨대, 연세대 등 교수
초대 헌법재판연구원장



“제왕적 대통령의 실패, 한 번이면 족하다”

 [홍중식 기자]

국민의 눈과 귀가 헌법재판소(헌재)에 쏠리고 있다. ‘탄핵정국’이 마무리된 지 근 반년 만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당시엔 헌재가 헌법 수호의 보루 구실을 한 반면, 지금은 외풍에 거세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가 대통령이 지명한 헌재소장 후보를 비토하자 청와대는 ‘권한대행 체제 장기화’를 예고하는 것으로 맞섰다. 결국 헌법재판관 전원이 회의를 연 뒤 ‘빈자리를 채워달라’고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0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유남석 광주고등법원장을 헌법재판관 후보로 지명하면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마련됐다. 그러나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사진)를 만난 건 이 때문이다.

허 교수는 명망 있는 헌법학자로, 한국과 독일 양국에서 헌법학 교수를 지냈다. 1988년 우리나라에 헌재가 설립된 데는 허 교수의 헌법이론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정설이다. 그는 1월 31일 박한철 전 헌재소장 퇴임 후 9개월 가까이 이어지던 ‘헌법재판관 8인 체제’가 조만간 막을 내리게 된 데 대해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잘된 일”이라며 입을 열었다.

10월 16일 헌법재판관 전원이 회의를 열어 ‘소장 및 재판관 공석 사태 장기화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시하자 이틀 만에 청와대가 헌법재판관 후보를 발표했다.
“헌법재판관들 성향을 감안하면 그런 식의 의견 표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죽했으면 저렇게까지 했을까’ 싶었다. 청와대가 그에 부응해 뒤늦게라도 헌법재판관 후보를 지명한 건 잘한 일이다. 어서 헌법재판관 9인 체제를 갖추고, 그중 후임 소장을 임명해야 한다.”

헌법재판관과 헌재소장을 공석으로 두는 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헌재는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최고사법기관이다. 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9인의 재판관’(헌법 제111조 2항)이 필요하다. 헌재는 2014년 ‘헌법재판관 공석 상태가 장기화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인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2012헌마2)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소장을 장기 공석 상태로 두는 것도 큰 문제다. 헌재는 대통령도 파면할 수 있는 기관 아닌가. 그런 기관의 장(長)을 합리적 이유도 없이 지명하지 않는 건 대통령의 중대한 직무유기라고 본다.”
 


비정상적 헌재 운영은 국민 기본권 침해

청와대는 ‘입법 미비’를 이유로 들고 있지 않나.
“헌법에 ‘헌재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규정이 있다. 헌법재판관 임기는 헌법재판소법에 6년으로 정해져 있다. 단, 헌재소장 임기에 대한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다 보니 헌법재판관이 재임 중 소장에 임명되면 새로 6년 임기를 시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잔여 임기만 채우는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청와대가 지적하는 게 그 부분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큰 문제라면 5월에는 왜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헌재소장으로 지명했나. 그때는 ‘이 문제를 추후에 국회가 해결해달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이 문제가 풀려야 후임을 지명할 수 있다’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동안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왔는지 전례를 살펴봤다. 1988년 헌재 출범 후 역대 소장은 모두 5명이다. 그중 1~4대 4명은 애초에 헌법재판관 겸 소장으로 임명됐다. 임기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었다. 헌법재판관 재임 중 소장으로 발탁된 5대 박한철 전 소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때 스스로 “잔여 임기만 소장직을 맡겠다”고 밝혔다. 이후 3년 10개월 만에 퇴임했다. 허 교수는 “이번에도 선례를 따르면 된다”는 의견이다. 그는 “그렇잖아도 지금 정치권이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헌재소장 임기 문제를 입법적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지, 그것을 이유로 헌재소장 임명을 미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애초에 국회가 대통령이 지명한 헌재소장 임명을 거부한 게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 아닌가.
“그건 대통령이 섭섭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만약 ‘국회가 내 뜻을 안 들어줬으니 나도 후임 헌재소장 임명 안 하겠다’고 몽니 부리듯 시간을 끌고 있는 거라면 큰 문제다. 민주주의의 바탕은 국가기관 간 견제와 균형 아닌가. 대통령에게 헌법기관 구성권이 있다면, 국회에는 이에 대한 통제권이 있다. 우리 헌법이 이를 명확히 규정했다. 우리 법에 따르면 헌법재판관은 국회 인사청문 절차 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 헌재소장은 안 된다. 국무총리, 대법원장처럼 반드시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자리에는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도 동의할 수 있는 인물을 앉히라는 의미다. 대통령이 애초에 이를 염두에 두고 인사권을 행사하는 게 옳다.”



대통령 · 국회 권한 줄이는 방향의 개헌

허 교수는 문 대통령이 10월 10일 정세균 국회의장, 김명수 대법원장,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이낙연 국무총리, 김용덕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이른바 ‘5부 요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연 데 대해서도 ‘부적절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행정부와 입법부 대표가 자주 만나는 건 바람직하지만 사법부는 경우가 다르다는 설명이다. 허 교수는 “독일의 경우 최고법원이 아예 수도 밖에 있다. 사법부가 물리적으로도 정치의 영향력 밖에 놓여 있는 것”이라며 “우리도 사법부 수장과 대통령은 국가 행사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정도의 관계에 그치는 게 좋다”고 밝혔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줄이려면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한 것으로 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각종 권한을 분산하는 건 이번 개헌의 큰 목표 가운데 하나다. 그 일환으로 대통령의 헌법기관 구성권을 축소하자는 게 내 의견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통령은 대법원장, 헌재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감사원장 등 여러 헌법기관장 임명권을 상당 부분 자의적으로 행사해왔다. 서양에 비해 사명의식이 희박한 우리나라 환경에서 이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서양 사람들은 어떤 공직을 맡으면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소명을 중요하게 여긴다. 임명권자 눈치를 안 본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임명권자에게 종속되는 경향이 있다. 헌법기관장을 대통령이 사실상 임명하면 권력 분립, 견제와 균형 등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흔들릴 수 있다.”

헌법재판관을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인씩 임명하도록 돼 있는 현행 헌법 규정은 어떤가.
“그것도 이번에 고쳐야 한다. 입법·사법·행정부가 헌법기관 구성권을 명목상 3분의 1씩 나눠 갖는 건 유신헌법에서 처음 도입한, 말 그대로 ‘적폐’다. 이렇게 해놓고 사실상 독재권력 입맛에 맞게 헌법기관을 좌지우지했다. 특히 헌재의 경우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재판관 임명권을 가질 이유가 없다. 이제는 헌법재판관 전원을 국민 대표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국회 다수당뿐 아니라 소수 세력도 동의할 수 있는 균형감각을 갖춘 사람이 헌법재판관이 되도록 ‘가중다수결’ 방식을 도입하는 게 좋다고 본다. 독일의 경우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헌법재판관이 될 수 있다. 우리도 헌법재판관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기관의 추천을 받은 인사 가운데 적합한 사람을 국회가 선출하면 대통령이 형식적으로 임명만 하는 방식으로 관련 제도를 개선하면 좋겠다.”

‘국회 개혁’도 이번 개헌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 아닌가.
“물론이다. 지금 국회가 개헌 논의를 주도하면서 의원내각제 도입 등 국회 권한 확대 방안을 검토하는 것 같은데, 이는 국민이 바라는 개헌 방향이 아니다. 국민은 일 안 하는 국회, 품격 없는 국회에 분노하고 있지 않나.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번 개헌을 통해 일단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폐지하고 면책특권도 크게 축소해야 한다. 또 제한적으로나마 국민소환제도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 헌법은 ‘사회적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아니한다’(제11조 2항)고 규정하는데, 국회의원은 사실상 사회의 특수계급 대우를 받는다. 국회의원이라도 죄를 지으면 예외 없이 처벌하고, 국민의 손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원칙을 세워 국회의원이 경각심을 가져야 정치 환경이 달라질 것이다.”

이외에도 개헌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현행 헌법을 제정하던 1987년 당시 국민의 요구는 ‘장기집권 싫다, 대통령 내 손으로 뽑겠다’ 두 가지였다. 그런데 이후 30년이 흐르면서 5년 단임제 대통령제의 폐단이 상당 부분 드러났다. 그렇다고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매우 낮고, 정책 중심 정당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데다, 심지어 남북이 대치 중인 상황에서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대통령이 외치, 국무총리가 내치를 맡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원정부제 구상도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나눠 가질 수 없다. 많은 이가 이원정부제의 모범으로 여기는 프랑스에서도 대통령과 총리가 국제무대에서 서로 자신이 ‘프랑스 대표’라고 나서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사르코지, 올랑드 등이 대통령을 맡은 뒤로는 아예 총리의 존재가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최근에는 외치와 내치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자유무역협정(FTA)만 봐도 외교 문제이면서 경제 문제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환경에 가장 적합한 권력구조는 대통령 권한을 지금보다 축소하고, 부통령을 러닝메이트로 추가해 위기상황에 대응하게 하는 4년 중임제 정·부대통령제라고 생각한다.”



모든 정당 ‘조속한 개헌’ 약속해야

“제왕적 대통령의 실패, 한 번이면 족하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9월 11일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다(위). 10월 13일 오전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이날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정감사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체제 유지에 관한 여야 간 설전 끝에 파행됐다.[뉴스1]

당초 정치권은 내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에 맞춰 개헌 관련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실현될 것으로 보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권력구조와 기본권 조항 등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데다, 야당 움직임도 협조적이지 않다. 최근 자유한국당(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언론 인터뷰에서 ‘지방선거에 덧붙여 개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까지 했다.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려면 먼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200명)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107석을 가진 한국당이 협력하지 않으면 어떻게 개헌을 하겠나.”

▼하지만 많은 국민과 전문가가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지 않나.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개헌을 이뤄내지 못하면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이번엔 대통령 임기와 20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기 전 반드시 개헌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갖고 관련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만약 국정감사와 예산심의, 지방선거 등 각종 정치 일정 때문에 6월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을 마무리하지 못하겠다는 판단이 서면, 이를 솔직히 국민에게 공개하고 ‘늦어도 내년 안에는 헌법을 고치겠다’는 식의 대국민약속을 해야 한다. 한국당까지 포함한 정치권 전부의 약속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헌법학자로서 문재인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
“헌법을 준수하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헌법이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비선(秘線)에 의지해 국정을 운영한 것이다. 우리 헌법 제89조는 ‘국정의 기본계획과 정부의 일반정책’ 등 17개 사항에 대해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비서실 정치를 했다. 그 과정에서 온갖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도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모임에서 각종 국정 현안을 논의하는 모습이 자주 비친다. 그러면 안 된다. 비서실 권한을 축소하고 국무위원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라. 국무위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좀 더 책임 있게 국정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특정 정책을 추진할 때 국무위원의 찬반 의견을 모두 국정기록에 남기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입력 2017-10-23 14:35:53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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