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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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봉곤 선촌서당 훈장

“국악진흥법 만들어야 제2의 송소희, 오정해 나온다”

협의회 만들어 국악法 제정 잰걸음…“문화산업으로 키워야”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7-10-0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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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자이자 방송인으로 맹활약하는 김봉곤 선촌서당 훈장(사진)이 요즘 국악문화산업진흥법(국악진흥법) 제정을 위해 잰걸음을 하고 있다. 지난해 국악인과 국악단체를 모아 국악단체협의회를 만들더니, 요즘은 국회의원들을 만나며 국악 문화산업 진흥을 위한 법률 제정에 나서고 있다. 9월 19일 오후 서울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 인터뷰 룸에서 그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그는 냉수 한 잔을 부탁했다. 속이 타는 모양이었다.

    어딜 다녀오는 길인가.
    “여의도 국회에서 일 보고 (충북 진천으로) 내려가는 길에 들렀다. 국회의원 만나 하루 종일 설명하다 보니 목이 마르다.”

    국회는 무슨 일로….
    “요즘 국악진흥법을 제정하려고 국회의원들을 만나고 있다. 오늘도 여러 의원을 만나 법안 발의에 협조를 요청했다.”
    앞서 김봉곤 훈장은 기자에게 전화해 “여의도 국회인데 잠시 얼굴 볼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종종 안부를 묻곤 했지만, 이날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서당 훈장이 국악 진흥을 위한 법 제정에 나서다니…
    “어허, 무슨 소리를…. 나는 지리산 청학동에서 어릴 때부터 시조를 배웠다. 정악(正樂)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판소리처럼 배웠던 거지. 1990년부터 7년 동안 국립중앙극장 국립창극단에서 활동하며 18편의 공연을 했고, 20년 전 청학동 자갈밭 판 돈으로 지구레코드사에서 국악과 대중음악을 컬래버레이션(협업)한 퓨전 국악 음반도 냈다. 지금 유튜브(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서 그 노래를 들을 수 있다.”(그는 자신의 음반에 수록된 노래를 들려줬다.)





    樂·歌·舞·劇·戱

    법 제정에 나선 이유는 뭔가.
    “예로부터 전해오는 우리 고유 음악이 국악(國樂)이고, 일반적으로 전통음악과 최근 한국적 창작음악까지 포함하는 우리나라 음악이다. 수많은 국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우리나라의 보물이면서 세계적인 보물이 국악인데, 국악을 문화산업으로 진흥하는 관련법이 없다. 우리 국악이 호적이 없다는 얘기다.”

    그의 말처럼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종묘에서 행하는 제향의식과 제례가 봉행되는 동안 연주하는 음악·이하 등재연도 2001) △판소리(2003) △강릉단오제(2005) △강강술래(2009) △남사당놀이(2009) △영산재(죽은 지 49일 만에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2009)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2009) △처용무(2009) △가곡(지식층이 애창한 노래로 정가(正歌)·2009) △아리랑(2012) △농악(2014) 같은 국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처용무나 남사당놀이도 국악 범주에 들어가나.  
    “국악이 꼭 음악으로 한정되는 건 아니다. 과거로부터 전승된 악(樂)·가(歌)·무(舞)·극(劇)·희(戱) 등을 비롯해 이를 바탕으로 창작되거나 다른 분야와 융합해 만들어진 것을 모두 국악이라 일컫는다. 이런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종합예술이 국악이다. 이러한 국악을 보존하고 전승하면서 21세기에 맞게 발전할 수 있도록 법으로 지원하자는 거다. 헌법 제9조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유엔에서도 ‘각국의 전통문화는 보호·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 이런 일을 해야 하는데 청학동 훈장이 하고 있다.(웃음)”

    공부를 많이 한 거 같다. 국악 진흥과 관련해선 문화예술진흥법 같은 관련법이 있지 않나.
    “물론 문화예술진흥법과 문화재보호법이 있지만 이들 법은 포괄적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국악진흥법(안)은 우리 민족과 궤를 같이한 국악을 진흥하고 문화산업으로 키우려는 구체적인 ‘전략’이 담겨 있다. 앞서 전통무예진흥법(2009년 3월 시행), 공예산업문화 진흥법(2015년 11월 시행)이 제정돼 시행되고 있고….”



    국악을 동영상으로 가르치는 현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겼나.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과 함께 국악인 간담회를 하고 외국 사례도 살펴보면서 많이 검토했다. 먼저 국악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계획 수립은 물론, 국악문화산업진흥원 설립 등 구체적인 내용도 담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5년마다 국악문화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신설되는 위원회가 이를 심의하도록 했다. 국악문화산업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생각해보라. 전통문화를 계승·발전한다는 것은 곧 보편화, 대중화를 의미한다. 지금도 마을 행사나 부모님 칠순잔치에 국악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만큼 우리 생활과 함께하는 ‘국악 모법(母法)’을 만들었다.”

    전문 인력도 많이 부족한가.
    “학교에서 국악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서양음악을 전공한 교사들이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진다. 유튜브를 통해 국악 동영상을 보여주거나 가끔 전문 강사를 초청한다. 그런데 국악은 현장성이 생명이다. 교육 현장에서 직접 악기를 연주하거나 공연을 봐야 하는데 그럴 여건이 안 된다. 피아노, 첼로, 플루트 등 웬만한 서양악기는 학교에 구비돼 있지만 가야금, 아쟁 같은 우리 전통악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중가수는 TV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국악인은 만나기 어려운 거 같다.  
    “옳은 말이다. 관련 규정에 국악 방송 편성에 관한 내용이 없다 보니 국악 방송을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법에는 ‘방송사업자들이 국민의 ‘문화향수권’을 확대하기 위해 국악 방송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국악 콘텐츠를 개발, 보급하는 국악문화산업진흥원을 만들어 대중음악과 협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악 진흥에 나서야 한다. 할 게 참 많다.(웃음)”



    “국악인은 뒷마당에서 전을 폈다”

    요즘 한류(韓流)를 주도하는 ‘케이팝(K-pop)’과 가야금, 판소리의 결합도 기대된다.
    “그렇다. 현재 케이팝은 수입된 서양음악에 ‘흥’과 ‘정(情)’이라는 한국 정서를 입혀 성공할 수 있었다. 한국인의 정서와 민족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국악을 서양음악과 하모니를 구성해 산업화할 수도 있다. 그래야 국악 분야에서도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저변 확대도 쉬워진다. 국악에 미래가 있다면 투자자가 생길 테고, 국악인 역시 국악만 해도 생계를 꾸릴 수 있을 거다. 제2의 송소희, 오정해, 박애리 같은 ‘인기 국악인’이 등장하고, ‘서편제’ 같은 국악을 소재로 한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문화산업도 키울 수 있다. ‘원소스(국악)’를 ‘멀티유즈’하자는 거다.(웃음)”

    그동안 국악인에 대한 처우가 열악했다고 보나.
    “케이팝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고 방송국에서도 인재를 키운다. 각 공연장이나 행사장 무대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대중음악을 하는 분은 ‘행사’를 뛰면 큰돈을 벌 수 있지만, 사실 국악인은 설 자리가 없다. 우리가 공연하겠다고 해도 ‘예산이 없다’고 말한다. 국악인은 싸구려 취급당하며 뒷마당에서 전을 펴야 했다. 조선시대 명창 이동백 선생은 정3품 벼슬(통정대부)을 할 정도로 나라에서 존중했고, 장악원(掌樂院·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을 둬 국악 진흥에도 나섰다. 이제라도 국악 진흥 시대를 열어야 한다.”

    국악단체들을 모아 하나의 협의회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 같다.
    “어휴~, 말도 마라. (그는 손사래를 쳤다.) 지난해 말부터 발품 팔아가며 국악 관련 단체 대표와 국악인들을 만났다. 국악인들은 예술에만 몰입해 자기에게 주어진 것만 열심히 하려고 하니 큰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왜 김봉곤이 나서느냐’며 나무라는 분도 있었지만 한 분 한 분 만나 취지를 설명했다. 이젠 대부분 취지에 공감하고 적극 참여한다.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회장을, 나는 간사를 맡고 있다.”

    동네 피아노 학원은 지천에 널렸는데 국악 학원은 잘 보지 못했다.
    “그래서 국악 대중화를 위해 전문 인력 양성과 국악 교육이 필요하다. 해외에 나가 아쟁, 단소, 사물놀이 같은 국악을 연주하면 기립박수를 받는다. 우리 정서와도 맞고.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게 애국 아닌가. 과거 전통문화를 강조하는 청학동 사람들은 한복을 입고 수염을 기른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경복궁이나 인사동 거리를 나가 보면 거의 한복을 입고 댕기머리를 하거나 갓을 쓴 사람이다. 한복 물결이다. 우리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요즘,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악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정책도 펼쳐야 한다. 주말 5일장에서 딸들이 공연하는 걸 보면서도 많이 느꼈다.”



    “그래, 내가 ‘총대’를 메자”

    딸들 공연이라면….
    “지난해부터 애들(도현·다현 자매)과 함께 5일 장터를 찾아 공연하고 있다. 지난겨울 손에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공연하는 애들을 보니 국악진흥법을 빨리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애들에게 네 살, 다섯 살 때부터 판소리를 가르쳤다. 문득 ‘애들이 커서 판소리로 성공하지 못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되더라. 애들을 위해 아빠가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를 고민했고, ‘그래, 내가 총대를 메자’고 생각했다. 애들을 보면서 법 제정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다.”

    김봉곤 훈장은 지난해부터 셋째(도현), 넷째(다현) 딸과 함께 ‘전국 전통시장 5일장 순회 국악버스킹’을 열고 있다. 5일장에서 판소리를 하는 두 딸과 함께 1시간 20분간 공연한다. 5일장에서 두 딸은 재능기부를 하며 전통문화를 알리고, 전통시장도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6월 자신이 운영하는 선촌서당(충북 진천군 문백면)에서 충북도와 진천문화원 후원으로 ‘제1회 정겨운 고향소리 축제’를 여는 등 판소리 알리기에도 열심이다.   

    딸들과 공연을 하면 공연비는 얼마나 받나.
    “이 사람이.(웃음) 내가 전통시장 상인연합회에 전화해 ‘거기서 공연해도 되느냐’고 묻는데 무슨 공연비를 주겠나. 공연 무대와 현수막, 악기 등도 내가 다 챙기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한다. 가끔은 ‘고맙다’며 30만 원 정도 주는 분도 있는데, 그때는 그 지역의 어려운 분들에게 전해주고 온다.”

    큰딸 자한 양과 아들 경민 군도 국악을 하나.
    “당연하다. 다들 판소리는 한 자락씩 한다. 경민이는 5~6년 아쟁을 가르쳤는데 곧잘 연주한다.”

    좋은 일을 해서인지 피부가 10년 전과 비교해 그대로인 거 같다(김봉곤 훈장의 피부는 정말 하얗고 뽀송뽀송했다. 만져보고 싶었다).

    “그런가. 산 좋고 물 좋은 진천에 살다보니 근심 걱정이 없다. 과거 강원 철원에서 서당을 운영할 때는 학생 230명이 함께 공부할 정도로 시설이 컸지만, 진천의 서당은 50명 정도 공부할 수 있는 규모다. 그러니 가르치는 일에 스트레스가 없다. 생각이 번잡해지면 서당 근처 하천에 가서 쏘가리와 장어를 낚는다. 그 재미도 쏠쏠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미지근한 물 한 컵도 마신다.(웃음)”

    추석 연휴는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
    “내가 4남 1녀 중 막내 아닌가. 당연히 청학동에 가서 성묘하고 장형에게 인사도 드려야지. 그리고 국악진흥법 홍보도 하고.(웃음) 국악은 고향이고 어머니 품 같은 거다. 나이 40이 넘으면 옛것이 그립고 향유하고 싶은 것처럼…. ‘주간동아’ 독자 여러분도 이번 추석에 우리 국악을 다양하게 접하고 국악진흥법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김두관 의원은 이날 ‘주간동아’와 전화통화에서 “그동안 간담회를 통해 국악단체 대표 및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전통예술 보존과 국악 대중화를 위해서라도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인 국악을 계승·발전시키고 국악 교육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이후 9월 26일 김 의원은 여야 의원 35명과 함께 ‘국악문화산업진흥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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