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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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의 즐거움

굿샷이 나온다면 이깟 바지쯤이야

‘팬티 샷’ 선수들

  • 남화영 헤럴드경제 스포츠에디터 nhy6294@gmail.com

    입력2017-03-20 10: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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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 선수가 경기에 몰두하는 모습은 멋지다. 개울 근처 경사진 진흙밭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공을 치겠다며 신발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행동에는 난국을 극복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넘어 대담한 용기까지 필요하다. 1998년 6월 미국 위스콘신 주 콜러 블랙울프런골프클럽(GC)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US여자오픈에서 제니 추아시리폰과 연장전을 벌이던 박세리의 모습이 딱 그랬다. 18번 홀에서 친 티샷은 언덕을 타고 개울 옆까지 굴러 내려갔다. 보통 선수라면 벌타를 받고 드롭한 뒤 다음 샷을 이어갔을 테지만 루키 박세리는 직접 내려가서 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양말을 벗어 그대로 드러난 검고 튼실한 종아리와 허벅지. 그와 대조적으로 발목 아래는 유독 하얗게 빛났다.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맨살을 드러내는 부끄러움은 어느덧 잊혔다. 박세리가 친 공은 멋지게 창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갤러리는 탄성을 질렀다. 그 홀에서 보기로 무승부를 일군 박세리는 결국 재연장 두 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아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년간의 LPGA투어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은퇴한 박세리의 최고 샷은 뭐니 뭐니 해도 이 ‘맨발 샷’이다.    



    남자 선수들은 대회에서 신발과 양말은 물론, 상의와 바지까지 벗는 경우가 종종 있다. 2월 25일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 혼다클래식이 열린 플로리다 주 팜비치가든스의 PGA내셔널GC 챔피언스코스 2라운드에서는 팬티만 입고 친 이른바 ‘팬티 샷’이 나왔다. 워터해저드가 많고 페어웨이가 좁기로 유명한 이 코스 6번 홀(파4, 479야드 · 약 438m)은 티샷이 약간만 벗어나도 물에 빠지기 십상이다. 숀 스테퍼니(미국)의 티샷이 왼쪽으로 밀리는가 싶더니 공은 페어웨이 옆 248야드(약 227m) 지점의 호숫가 진흙에 빠졌다. 

    컷 탈락을 걱정한 스테퍼니는 벌타를 받지 않으려고 그냥 치기로 결심했다. 신발, 양발, 바지를 벗은 그는 흙이 튈까 봐 셔츠까지 벗고 팬티만 입은 채 두 번째 샷을 했다. 노력은 허사였다. 진흙과 함께 튕겨나간 볼은 고작 44야드(약 40m)를 전진하는 데 그쳤고, 홀까지 164야드를 남겼다. 세 번째 샷으로 홀 3m로 보내면서 보기로 마친 스테퍼니는 결국 이날 이븐파 72타를 치면서 컷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홀에서 바지를 내린 선수가 또 있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이 대회 4라운드에서 장타자 게리 우들랜드(미국)가 스테퍼니와 거의 비슷한 지점에 공을 보냈다. 우들랜드는 진흙에 빠진 공을 치려고 바지를 벗어 상의와 팬티 차림이었다. 카메라가 촬영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을 쳐내는 데만 집중했다. 산뜻한 타구음과 함께 탈출한 공은 아쉽게도 그린 오른쪽 벙커에 빠졌다. 그는 멋진 벙커샷을 쳐 파 스코어를 지켜냈다. 하지만 그 역시 이 홀에서 기력을 소진했는지 보기 7개를 적어 내 78타를 치면서 61위로 대회를 마쳤다.



    팬티 샷의 대표적인 선수는 지난해 디오픈 우승자인 헨리크 스텐손(스웨덴)이다. 2009년 월드골프챔피언십(WGC) 캐딜락챔피언십이 열린 플로리다 주 도럴리조트 3번 홀에서 공이 호숫가 진흙에 빠지자 바지와 상의를 벗고 흰 팬티만 입은 채 두 번째 샷을 한 것. 스텐손은 라운드가 끝나고 난 뒤 “흰 바지와 노란 셔츠에 진흙이 묻지 않게 하려고 벗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웃으며 당시 사진을 “무덤까지 가져갈 것”이라고 회고한다. 혈기왕성한 스테퍼니와 우들랜드가 앞으로 얼마나 활약할지 모르지만, 그들 역시 평생 간직할 기념 샷을 하나씩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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