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0

2016.10.26

스포츠

경질 위기 자초한 슈틸리케

그라운드 안팎으로 신뢰 추락…11월 15일 우즈벡전은 단두대 매치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6-10-21 18: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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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동안 쌓은 신뢰는 단 두 달 만에 무너졌다. 11월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A조) 5차전 우즈베키스탄과 경기는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는 한국 축구는 물론, 울리 슈틸리케(62·독일) 축구대표팀 감독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일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9월 중국(홈·3-2 승)과 시리아(원정·0-0 무), 10월 카타르(홈·3-2 승)와 이란(원정·0-1 패)으로 이어진 최종예선 4경기에서 2승1무1패 승점7을 기록해 A조 중간 순위 3위에 머물러 있다. 이란(3승1무·승점10)이 1위, 우즈베키스탄(3승1패·승점9)이 2위다. A·B조로 나눠 진행하는 아시아 최종예선에선 각 조 2위까지 본선에 직행하고, 각 조 3위끼리 플레이오프(PO)를 거쳐 이긴 후 북중미 4위와 한 차례 더 PO를 해 승리한 나라가 본선행에 오른다. 최소 조 2위를 확보해야 안정적으로 러시아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는 것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참패한 한국 축구의 ‘구원 투수’로 선택된 슈틸리케 감독은 최종예선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갓틸리케’라는 말을 들으며 팬과 언론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6월 첫 유럽 원정에선 스페인에 1-6으로 대패했지만 체코전에서 2-1로 승리하며 강팀과 만나서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다.

    무엇보다 슈틸리케 감독이 신뢰를 받은 것은 그동안 보여준 빼어난 성적 덕분이다. 지난해 A매치 20번에서 ‘슈틸리케호’는 16승3무1패를 기록했다. 1월 호주에서 펼쳐진 2015 AFC 아시안컵에서 27년 만에 준우승을 차지했고, 지난해 8월 중국 우한에서 열린 2015 EAFF 동아시안컵에선 7년 만에 우승컵을 탈환하는 등 연이은 국제대회에서도 수준급 성적을 거뒀다. 지난해 6월 시작해 올해 3월에 끝난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에서도 8전승(27득점·0실점)을 거두는 등 승승장구했다.





    만족스럽지 못한 최종예선

    그런데 최종예선에선 완전히 딴 팀이 됐다. 최종예선이 갖는 무게감이 남다르고, 2차 예선이나 친선경기에서 만난 상대들과는 전력 차가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성적표다.

    중국과 카타르를 상대로 각각 3-2로 승리했지만, 내용 면에서는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다. 원정 중립 경기로 펼쳐진 최약체 시리아전에서는 졸전 끝에 0-0으로 비겼다. 당연히 이겨야 할 경기가 무승부에 그치면서 승점 2점을 손해 봤다. 그뿐 아니다. 최근 42년간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원정경기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 이란에게는 현실적으로 무승부를 기대했지만, 유효슈팅을 단 1개도 기록하지 못하며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다. 비록 1골만 내주며 패했지만 내용상으로는 3골 차 이상 완패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수비 불안이 반복됐다. 2015년 20경기에서 대표팀은 4골만 내줬다. 경기당 0.2실점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209개 회원국 가운데 경기당 최소 실점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최종예선 4경기에선 시리아전을 제외하고 매 경기 점수를 내주며 총 5실점했다. 이란전에서는 수비 위주의 전술을 펼쳤지만, 수비도 공격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상대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단조로운 공격 패턴, 해외파에 대한 높은 의존도, 가용 선수 자원의 비효율적 활용, 여기에 위기 순간에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무능까지 겹치면서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2년간 쌓아온 믿음을 두 달 만에 무너뜨렸다.

    비단 그라운드에서 나타난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납득할 수 없는 경기 내용을 보여준 이란전 직후 공식 인터뷰에서 자신의 전술적 실패는 언급하지 않은 채 한국 축구대표팀의 공격 부진과 관련해 “우리에게는 카타르의 세바스티안 소리아 같은 스트라이커가 없어서 그렇게 되지 않았다”며 선수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뒤늦게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고 발을 빼며 “선수들하고도 오해를 풀었다”고 해명했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감독은 때에 따라 공개적으로 선수단 전체를, 또는 특정 개인을 질책할 수 있다. 일종의 ‘언론플레이’로 분발을 촉구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누가 봐도 벤치의 선수 기용 실책과 전술 운용이 패착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선수에게 책임을 돌린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소리아 발언’에 대해 “잘해보자는 의미였다. 준비한 것이 하나도 나오지 않아 나 자신에게 가장 화가 나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경기 후 인터뷰라 감정이 올라온 상태에서 한 말”이라고 부연했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스스로 감정 조절을 하지 못했음을 자인한 꼴이다. 한 나라 축구대표팀 감독이라면 공식 기자회견 같은 장소에서는 자기감정을 냉정하게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신뢰를 잃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란으로 출국하기 전에도 여러 사람을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3-2 승리로 끝난 카타르전에서 승점 3점을 챙겼음에도 언론이 수비 불안 문제 등을 거론하며 비판적 시각을 내비치자 몽니 부리듯 “이러면 이란 못 간다”고 말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경기는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다. 이기든, 지든 결과에 대한 냉철한 분석은 다음 경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월드컵 최종예선 같은 중차대한 과정에 서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이란 못 간다’는 말은 그가 객관적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추지 못했다는 인상을 안겼다.

    슈틸리케 감독은 최종예선 1차전 중국과 경기에선 23명 엔트리를 제대로 꾸리지 않은, 일명 ‘배려 엔트리’로 논란을 야기했다. “뛰지 않을 선수는 부르지 않는 게 낫다”고 했던 그가 중국전 졸전 후 비난 여론이 일자 태도를 바꿔 2차전 시리아와 경기에 앞서 황의조(성남FC)를 긴급 호출했다. 그러나 황의조는 시리아전 내내 벤치만 지켰다. 잇단 3번의 ‘설화(舌禍)’는 그에 대한 시선이 바뀌는 또 다른 계기가 됐다. 두 달 사이 ‘갓틸리케’라는 별명은 ‘탓틸리케’라는 비아냥거림으로 바뀌었다.

    현재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에 승점 2점이 뒤져 있다. 만약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비기거나 패하면 조 2위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몰린다. 우즈베키스탄전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는 한국 축구대표팀에게나 슈틸리케 감독에게나 중요할 수밖에 없다. 만약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원하는 승리를 얻지 못할 경우 대한축구협회도 결단을 내릴 공산이 크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월드컵 최종예선을 치르면서 한두 번씩 고비를 맞곤 했다. 그러나 슈틸리케호가 직면한 현 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 보인다. 슈틸리케 감독은 우즈베키스탄전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분위기 반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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