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3

2016.08.31

스포츠

열정도 지원도 부족 방향 잃은 엘리트 스포츠

리우올림픽 ‘10-10’ 목표 달성 실패…구기종목 첫 노메달, 배구협회 무관심 도마에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6-08-29 14: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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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간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사상 최초로 남미에서 열린 리우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은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를 수확했다. 당초 목표로 한 ‘10-10’(금메달 10개 이상 획득, 종합순위 10위 이내 진입)은 이루지 못했지만 종합순위 8위로 올림픽 4회 연속 톱10 진입이라는 두 번째 목표는 달성했다.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로 종합순위 9위를 기록한 한국은 2008 베이징올림픽과 2012 런던올림픽에서 각각 역대 최다인 금메달 13개를 획득하며 각각 7위와 5위를 기록해 ‘엘리트 체육 강국’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내심 리우에서 역대 최다 금메달을 바랐지만 기대는 어긋났다. 특히 총 메달 21개는 1984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이후 32년 만에 가장 적다. 금메달 4개를 석권한 양궁과 5명이 참가해 모두 메달(금2·동3)을 딴 태권도 등 ‘종목 편식’이 없었다면 이마저도 불가능했다.

    태극 궁사들은 역시 위대했다. 장혜진, 기보배, 최미선이 호흡을 맞춘 양궁 여자 대표팀은 8회 연속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이란 금자탑을 쌓았다. 구본찬이 통산 2번째 남자 개인전 금메달을 차지하고 단체전에서 2관왕에 오르는 등 사상 최초로 남녀 개인·단체전 4종목을 싹쓸이하며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현대자동차 부회장)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 6개월 이상 진행되는 투명하고 공정한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 4년 전 런던올림픽 직후부터 시작된 철저한 준비 등이 양궁의 성공 비결이었다. 금메달 4개를 모두 쓸어 담은 양궁의 선전은 한국 선수단이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 데 주춧돌이 됐다.



    홀로 빛난 양궁, 종주국 체면 세운 태권도

    5명이 출전해 모두 메달 획득에 성공한 태권도의 성적표도 수준급이었다. 여자 49kg급 김소희와 여자 67kg급 오혜리가 금메달, 남자 58kg급 김태훈과 남자 68kg급 이대훈, 그리고 남자 80kg 이상급 차동민이 동메달을 목에 걸며 5개 체급에서 모두 메달을 수확했다. 전자 헤드기어와 팔각경기장 등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고, 무엇보다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견제와 압박감을 이겨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사격의 진종오와 골프의 박인비는 세계 스포츠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겼다. 남자 50m 권총에 나선 진종오는 2008 베이징올림픽과 2012 런던올림픽에 이어 리우에서도 같은 종목 금메달을 차지하며 세계 사격 역사상 첫 올림픽 3연패의 주인공이 됐다. ‘침묵의 암살자’란 별명을 가진 박인비는 116년 만에 부활한 올림픽 여자 골프에서 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이어 골프에서는 처음인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는 쾌거까지 달성했다.

    반면 전통적으로 ‘효자 종목’으로 불리던 유도, 레슬링, 배드민턴, 탁구의 부진은 아쉬웠다. 특히 남자 유도는 세계랭킹 1위만 4명이나 돼 최소 금메달 2개를 기대했지만 은메달 2개와 동메달 1개에 그쳐 2000 시드니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노 골드’의 수모를 당했다.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땄던 1976 몬트리올올림픽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레슬링도 동메달 1개로 몬트리올올림픽(금1·동1)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 2008 베이징올림픽까지 매번 빠지지 않고 금메달을 안겨줬던 배드민턴도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남자복식 이용대-유연성이 메달 획득에 실패하는 등 2012 런던올림픽에 이어 2회 연속 금메달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탁구 역시 무소득이었다. 1988 서울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탁구 종목에서 메달이 나오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4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각각 금메달 2개를 수확한 사격과 펜싱이 이번에는 나란히 금메달 1개에 그친 것도 아쉬운 대목 가운데 하나다.

    단체 구기종목의 부진도 뼈아팠다. 우리나라 올림픽 역사상 44년 만에 메달 획득에 실패한 것. 남자 축구, 여자 배구와 핸드볼, 하키가 모두 조기 탈락했다. 2회 연속 메달에 도전한 축구 올림픽대표팀은 8강전에서 약체 온두라스에게 덜미를 잡혔다. 여자 배구도 8강전에서 한수 아래로 여겨지던 네덜란드에게 패해 메달 획득이 좌절됐다. ‘제2의 우생순’ 신화를 꿈꾸던 여자 핸드볼은 조별리그에서 1승1무3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돌아섰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여자 배구의 메달 획득 실패에는 대한배구협회의 부실한 지원도 한몫했다는 것. 여자 배구 올림픽대표팀은 선수 12명을 제외하면 감독과 코치, 트레이너 전력분석원 등 4명뿐이었다. 통역 등 지원 인력이 전무했다. 대한배구협회는 한 명의 직원도 리우에 파견하지 않았다. 선수단에서 유일하게 영어 구사가 가능한 ‘에이스’ 김연경은 경기에 몰두해도 모자랄 판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통역하는 등 동료들 뒷바라지까지 해야 했다. 협회의 열악한 지원이 메달 획득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영국과 일본의 선전이 주는 의미

    비인기 종목의 부실한 저변도 개선해야 한다. 여자 핸드볼 올림픽대표팀의 최선참인 오영란은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다섯이다. 아이 둘을 둔 오영란은 딸뻘인 동료들을 이끌며 무서운 투지로 선수단의 핵심 노릇을 했다. 그의 투혼은 충분히 박수 받고 칭찬할 만하지만 2008 베이징올림픽 이후 현역에서 은퇴한 오영란이 다시 태극마크를 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 핸드볼의 선수층이 그만큼 얇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영국은 금메달 27개로 중국(26개)을 제치고 미국(금46)에 이어 종합순위 2위에 올랐다. 4년 전 자국 런던올림픽에서 종합 3위를 차지한 영국은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시작한 엘리트 종목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계속되며 리우에서 역대 최고 성적이란 값진 열매를 맺었다. 금메달 12개 등 총 41개로 역대 최다 메달을 따내며 종합 6위를 차지한 일본의 선전도 돋보였다. 일본은 수영에서 금메달 2개를 수확하고 육상 남자 400m 계주에선 미국을 제치고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인이 결코 욕심 낼 수 없었던 카누와 테니스에서도 메달을 획득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과감한 투자가 빛을 발했다.

    리우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 수장을 맡았던 정몽규 단장은 “영국과 일본의 약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4년 뒤 도쿄올림픽에서는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투자 지원책을 마련하고 과학적인 훈련과 새로운 전략 도입, 우리 체질에 맞는 선택과 집중, 해외 사례 벤치마킹 등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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