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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 선수들 손흥민과 인증샷

긴장감 없는 팀에 승리…월드컵 본선 클래스 경기 못 해

온두라스 선수들 손흥민과 인증샷

온두라스와 평가전에서 좋은 경기 모습을 보여준 이승우(헬라스 베로나FC). [동아DB]

온두라스와 평가전에서 좋은 경기 모습을 보여준 이승우(헬라스 베로나FC). [동아DB]

‘최악’이라고 표현하면 지나친 걸까. 2018 러시아월드컵으로 가는 길이 짙은 안개에 묻혔다. 전력을 극대화해 싸워도 모자랄 판에 핵심 자원이 연이어 쓰러졌다. 김진수, 김민재, 염기훈. 이미 5월 14일 명단 발표 전부터 아팠다. 이 중 김진수만 이름을 올려 마지막까지 출전 확률을 가늠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불가능하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여기에 권창훈, 이근호도 앓아누웠다. 28인 명단에 포함돼 당연히 월드컵까지 갈 것으로 점쳐지던 선수들이다. “안 아픈 것도 실력이다. 부상 조심하라”는 지도자들의 메시지가 무색해졌다. 아무리 신경 써도 이만한 불운에는 장사가 없다. 권창훈은 아킬레스건 파열, 이근호는 무릎 내측 인대 파열 진단을 받았다. 두 선수 모두 제힘으로 운동장을 나가지 못할 만큼 심각했다. 의료진의 부축을 받았던 권창훈은 경기 직후 출전 좌절 소식을 전해왔다. 소속팀 디종FCO의 올리비에 달로글리오 감독이 직접 “충격적인 부상이다.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차에 몸을 실은 이근호는 당초 ‘가벼운 부상’이란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희망고문이었을 뿐, 통증이 지속돼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상태가 훨씬 심각했다. 파주NFC(축구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 입소 뒤 다시 짐을 싸 나왔다. “내 정성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라며 자책하던 이근호의 고백이 더욱 쓰렸다. 

예비 인원 7명을 둔 터라 추가 발탁을 통해 인력풀을 확보할지에 관심이 쏠렸다. 석현준, 지동원 등이 대기했다. 하지만 신태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이대로 간다”며 선을 그었다. 5명을 떨어뜨리려던 기존 계획에서 2명이 먼저 부상으로 낙마했다. 권창훈, 이근호의 경우 전술적 쓰임새가 다양했다는 점에서 특히 타격이 컸다. 신태용호는 날개가 반쯤 꺾인 채 여정을 이어갔다.


온두라스전 통쾌했으나

축구 국가대표 데뷔전에서 골을 기록한 문선민(인천유나이티드FC). [동아DB]

축구 국가대표 데뷔전에서 골을 기록한 문선민(인천유나이티드FC). [동아DB]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축구 국가대표팀은 5월 21일 서울광장에 처음 모였다. 축구팬 앞에서 ‘통쾌한 반란’을 외치던 신 감독의 표정은 ‘통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파주NFC에서 훈련에 돌입한 대표팀은 빠르게 수습해갔다. 거듭된 부상으로 변화를 구상하는 동시에 새로운 얼굴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고민해야 했다. 5월 28일 대구에서 온두라스전, 6월 1일 전주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이 있었기 때문. 

신 감독은 온두라스전을 앞두고 4-4-2 옷을 입혔다. 플랜A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하던 그이지만, 일단은 합이 잘 맞았던 포메이션으로 나섰다. 황희찬을 손흥민의 투톱 파트너로 낙점했다. 이승우와 이청용을 좌우 날개에 배치했고, 정우영-주세종으로 중원 조합을 꾸렸다. 그 밖에 홍철, 김영권, 정승현, 조현우 등에게 기회를 줬다. 이 중엔 소속팀에서 몇 경기 못 뛴 선수도 있었다. 냉정히 말해 부상자 발생 같은 변수가 없었다면 얼굴을 비치지 못했을 이들이다. 마지막으로 담금질할 시기에 개개인의 경기력 수준을 따지고 있는 게 현 대표팀의 실정이다. 글 서두에 ‘최악’이란 표현을 쓴 이유다. 

다행히 경기는 원하는 대로 풀렸다. 다소 투박하게 굴러가던 흐름이 서서히 형태를 잡기 시작했다. 포지셔닝은 유연했다. 측면 자원이 가운데로 좁혀 들어와 다양한 공격 형태를 만들었다. 삼각 대형을 구성한 뒤 원투 패스 등을 통해 패턴 플레이를 연출했다. 여기에 측면 수비가 진격해 상대 옆구리에 부담을 안겼고, 중앙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 등이 그 뒤를 받쳤다. 공 소유권을 절반 이상 점했다. 상대를 중앙선 아래로 몰아넣은 뒤 원하는 템포로 원하는 타이밍에 공격하고자 했다. 

골망도 흔들었다. 손흥민이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골문을 열어젖혔다. 빠르게 압박해 공을 빼앗았고, 이어 개인 역량을 얹어 호쾌한 슈팅을 만들어냈다. 데뷔전을 치른 문선민도 한 골 보탰다. 황희찬이 왼쪽 측면에서 건넨 공을 받았다. 침착하게 상대를 제친 뒤 힘들이지 않고 밀어 넣었다. 에이스와 뉴페이스가 한 방씩 해낸 이상적인 그림이 나왔다. 

분위기는 좋아 보였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도배한 기사 논조도, 이에 대한 팬들의 반응도 희망적이었다. 다만 어딘지 개운치 않다. 냉정히 말해 월드컵 본선에서 볼만한 경기 레벨은 절대 아니었다. 공수를 오가는 템포는 물론이요, 압박을 하고 압박을 풀어내는 수준도 떨어졌다. 2-0 승리로 기대는 가질 법했어도, 실전에서 이런 경기를 할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는 얘기다. 신태용호가 온두라스전처럼 공을 갖고 요리할 수 있는 팀이 독일, 멕시코, 스웨덴 가운데 과연 있을까. 전력 구성에 빈틈이 많던 상대는 경기 후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에서 이름을 날린 손흥민과 줄지어 기념 촬영을 했다. 동기 면에서 딱히 얻을 게 없었다는 방증이다. 장거리 비행 후 적당히 한 경기를 치르면 됐다. 그들만의 내부 경쟁을 운운할 수는 있어도, 일단 월드컵 같은 메이저대회가 아니기에 긴장감은 바닥이었다.


이 정도로는 안 통할 월드컵 본선

실제 선수단 내부에서도 이런 얘기가 나왔다. 기성용은 경기 직후 “오늘 승리에 취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붙는 팀들이 월드컵에서 만날 팀의 수준이냐고 묻는다면 답은 ‘아쉽다’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손흥민도 같은 생각이었다. “강도 높게 훈련했다. 오늘 경기에 대해 칭찬할 건 칭찬해야 한다”라면서도 “월드컵은 이 정도로 안 된다.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월드컵이 얼마나 무서운 대회인지 몸소 경험해본 이들이다. 4년 전 한국 축구가 얼마나 부족한 실력인지 가슴 절절히 느꼈던 이들이다. 그날의 무력한 표정과 눈물이 잊히질 않는다. 

온두라스전 이후도 마찬가지다. 국내 출정식을 겸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에 이어 전지훈련지 오스트리아에서 격돌할 볼리비아, 세네갈도 그렇다. 유럽과 남미의 최정상 국가들이 서로 격돌할 동안 한국은 대부분 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한 팀들과 붙는다. 본선 진출팀인 세네갈은 일본을 염두에 둔 평가전 상대로 한국을 택했다지만, 그 외에는 온두라스가 보인 실력이나 태도와 대동소이할 것이다. 기성용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을 가리켜 “그 친구들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경기에 나설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 그렇게 크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일 테다. 

남은 경기도 이길 수 있다. 실점 없이 득점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그릴 수 있다. 자신감은 얻되, 시선은 늘 6월 18일 스웨덴전, 24일 멕시코전, 27일 독일전을 향해 있어야 한다. 더 냉정하게 준비할 건 확실히 준비해야 한다. 가령 부족한 개인 기량을 메울 조직의 완성도. 기존 선수들이 이탈했기에 언제든 삐걱거릴 수 있다. 어떻게 수비 조직을 구축하고 어떤 지점에서 최초 압박을 가할지에 대한 전술을 완벽히 확립해야 한다. 그 밖에 공을 빼앗겼을 때 어떤 타이밍에 압박할지, 선제 실점 시 어떤 형태로 대응할지 등 정비할 게 한둘이 아니다. 월드컵에서 붙을 상대들을 고려하면 네 차례 평가전에서 제대로 내성을 기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월드컵 개막까지는 보름도 안 남았다. 이제는 개개인의 몸 관리와 팀 전체의 반복 숙달만 남았다. 손흥민도, 기성용도 몸이 완벽하지 않은 상황. 나머지 선수들 역시 들뜨기보다 꾹꾹 눌러 조직의 일원으로 움직여야 한다. 헛바람이 들어가면 그르칠 위험도 높다. 도취는 곧 자멸이다.




주간동아 2018.06.06 1141호 (p66~67)

  • | 홍의택 축구칼럼니스트 releaseh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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