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베이스볼 비키니

베이징 키즈에서 한국의 오타니를!

올해 프로 데뷔한 강백호·곽빈·한동희 등 시즌 초부터 활약

베이징 키즈에서 한국의 오타니를!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일본산 괴물’로 불리는 LA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 [스포츠동아]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일본산 괴물’로 불리는 LA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 [스포츠동아]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는 2012년 11월 ‘꿈의 이정표(夢への道しるべ)’라는 발표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오직 딱 한 사람을 위한 발표 자료였죠. 그 ‘타깃’은 바로 하나마키히가시(花卷東)고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24)였습니다. 네, 지금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에서 뛰는 그 오타니 맞습니다. 

이 30쪽짜리 발표 자료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물론 ‘우리 팀 와라’입니다. 좀 늘리면 ‘메이저리그 가겠다고 고집 부리지 말고 우리 팀 와라’가 됩니다. 좀 더 늘리면 ‘고교 졸업하고 곧바로 메이저리그 가겠다고 한 한국 선수들 다 실패했다. 그러니 고집 그만 부리고 우리 팀으로 와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두 문장을 덧붙이면 ‘그 대신 한국 프로야구를 경험하고 태평양을 건넌 류현진(31·LA 다저스)은 성공했다. 그러니 너도 우리 일단 우리 팀에서 뛰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려라’가 됩니다. 

일본 프로야구 12개 구단을 향해 “어차피 메이저리그에 갈 테니 지명권을 낭비하지 마라”고 으름장을 놓던 오타니도 이 발표를 지켜본 뒤 결국 “내가 생각지 못했던 내용이 많다”며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 뒤 오타니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야구팬이라면 다들 아실 겁니다. 덕분에 한국은 오타니 한 명에게만 두 번 패했습니다. 오타니 또래 한국 선수 가운데서는 투수와 타자 어느 쪽에서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선수가 없으니까요. 

니혼햄이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닙니다. 당시 니혼햄은 2006년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 고졸 선수 21명 가운데 단 1명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지금도 이 21명 중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건 2016년 빅리그 데뷔전을 치른 최지만(27·밀워키 브루어스)뿐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최지만도 ‘붙박이 메이저리거’라고 하기엔 2% 부족합니다.


‘젊은 피가 모자라…’

신인이지만 최다 출전 불펜 명단에 이름을 올린 두산 베어스 곽빈. [동아DB]

신인이지만 최다 출전 불펜 명단에 이름을 올린 두산 베어스 곽빈. [동아DB]

오타니는 미국 언론에서도 베이브 루스(1895~1948)와 비교할 정도로 특출한 캐릭터입니다. 통산 홈런 714개를 기록한 이 전설적인 홈런왕 역시 투수로 메이저리그에서 94승(46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이런 천재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누군가를 나무라는 건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두 번 패했다’고 쓴 건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천재는커녕 젊은 1군 선수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프로야구 전체 투구 이닝(1만2781이닝) 가운데 25세 이하 선수가 책임진 건 26.6%(3395이닝)였습니다. 10년 전(2007) 이 비율은 35.7%였고, 20년 전(1997)에는 50.1%였습니다. 갈수록 젊은 투수가 1군 무대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타자 쪽은 더합니다. 전체 5만6882타석 가운데 25세 이하 선수가 들어선 건 13.8%(7878타석)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선발 라인업 아홉 자리 중 한 자리 정도만 25세 이하 선수가 차지하는 셈입니다. 역시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0년 전에는 이 비율이 25.5%, 20년 전에는 40.5%였습니다. 

프로야구 역사가 오래될수록 젊은 선수가 자리 잡기 힘든 건 당연한 일 아니냐고요? 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한국은 좀 심합니다. 일본하고 비교하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68번째 시즌을 보낸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전체 투구 이닝 중 34.6%를 25세 이하 투수가 책임졌고, 전체 타석 가운데 26.3%에 아직 스물여섯 살이 되지 않은 타자가 들어섰습니다. 

‘야구 좀 하는 선수’로 범위를 좁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양대 리그 다승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총 20명 가운데 7명이 스물여섯 살이 되지 않았고, 홈런 역시 20명 중 4명이 25세 이하였습니다. 같은 해 한국에서는 다승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젊은 피’는 공동 7위(12승) 박세웅(23·롯데 자이언츠) 한 명이었고, 25세 이하 타자 가운데 홈런 랭킹이 가장 높았던 선수는 17위(23개)를 기록한 김하성(23·넥센 히어로즈)이었습니다. 

신인상 수상자로 범위를 좁히면 더합니다. 지난해 이정후(20·넥센) 이전 ‘데뷔 첫해’에 신인상 수상자로 뽑힌 건 2007년 임태훈(30·당시 두산 베어스)이 마지막이었습니다. 타자 쪽만 따지면 이정후는 2001년 김태균(36·한화 이글스) 이후 16년 만에 처음 나온 고졸 1년 차 신인상 수상자입니다. 

사실 예전에는 니혼햄 발표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좋은 자원은 모두 태평양을 건넜다’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최근에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미국 무대로 건너간 건 2015년 권광민(21·시카고 컵스)이 마지막입니다. 권광민은 지난해 마이너리그에서 제일 레벨이 낮은 루키와 A에서 뛰면서 타율 0.190을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내가 꿈을 이루면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

그런 이유로 야구계에서는 ‘베이징 키즈’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혹시 모르시는 분들에게 설명하자면 한국 야구가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2008년 전후로 야구를 시작한 이들이 바로 베이징 키즈입니다. 

프로야구 각 구단 스카우트 등 아마추어 야구 관계자를 만나면 ‘세대론’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시작은 2002 한일월드컵입니다. 월드컵 4강 진출로 축구 바람이 불면서 운동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이 축구로 쏠려 야구 쪽 자원이 부족했다는 겁니다. 그 대신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이후 다시 야구 쪽으로 유망주가 몰리기 시작하다 베이징올림픽 때 화룡점정을 찍었다는 게 세대론입니다. 

1999~2001년 출생자가 세대론 구분상 베이징 키즈에 속합니다. 강백호(kt 위즈), 곽빈(두산), 박주홍(한화), 양창섭(삼성 라이온즈), 한동희(롯데) 등 올 시즌 개막과 함께 열심히 이름을 알리고 있는 신인 그룹이 바로 1999년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청소년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들은 프로 데뷔 후에도 ‘단톡방’에서 서로 격려하며 프로 무대에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른들’이 할 일은 이들이 진짜 ‘야구 아이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 일단 시작은 좋습니다. 5명 모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한국 국가대표팀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거든요. 이러쿵저러쿵해도 대표팀에 승선하는 것만큼 선수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길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어린 선수가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 화제가 되지만 2008년 올림픽 때 일본전 승리투수 김광현(30·SK 와이번스)이 스무 살이었고, 류현진도 스물한 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표팀 투수 10명 중 6명이 25세 이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베이징 키즈의 아이돌이 됐습니다. 

현재 베이징 키즈가 2020 도쿄올림픽 주축 멤버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한국 야구에는 ‘도쿄 키즈’ 세대라 부르는 이들이 다시 등장할 터. 오타니도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존재는 아닐 겁니다. 이렇게 선순환 구조를 이룰 때 ‘한국의 오타니’도 나올 수 있겠죠?




주간동아 2018.05.02 1136호 (p66~67)

  •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160

제 1160호

2018.10.19

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