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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왕은 4번이 아니라 2번?

한국에도 강한 2번 타자 시대 오나

홈런왕은 4번이 아니라 2번?

LG 트윈스의 강한 2번 타자 전략에서 핵심인 김현수. [동아일보]

LG 트윈스의 강한 2번 타자 전략에서 핵심인 김현수. [동아일보]

“2번 타자 질문은 좀….” 

류중일 LG 트윈스 감독은 3월 28일 경기 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인사하며 더그아웃으로 들어섰습니다. 류 감독은 전날 경기에서 김현수(30)를 선발 2번 타자로 내보냈지만 김현수는 5타수 무안타에 그쳤습니다. 

김현수만 그랬던 게 아닙니다. 올해 개막전에 선발 2번 타자로 나선 LG 양석환(27)과 다음 날 경기에 같은 자리로 선발 출전한 김용의(33)도 각각 3타수 무안타로 물러났습니다. 여기에 김현수까지 합치면 LG 선발 2번 타자는 개막 후 3경기에서 11타수 무안타였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질 게 뻔하자 류 감독이 선수를 치고 나간 겁니다. 이날도 류 감독은 김현수를 선발 2번 타순에 배치했습니다. 김현수는 이날 4회 세 번째 타석에서 2루타를 때려냈습니다. LG 선발 2번 타자로서는 올시즌 14타수 만에 처음 기록한 안타였습니다. 

올해 LG 2번 타자 자리가 중요했던 제일 큰 이유는 ‘150억 원의 사나이’ 김현수 활용법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류 감독 본인이 ‘강한 2번 타자’를 선호하는 대표적 지도자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그는 삼성 라이온즈 지휘봉을 잡고 있던 시절(2011~2016) “내가 감독일 때 양준혁(49·현 MBC스포츠플러스 야구해설위원)이 있었다면 2번 타자로 기용했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美선 2번 타자가 클린업트리오

그러면서 그는 “(전성기 양준혁은) 콘택트 좋고, 출루 잘하고, 일발 장타력도 있고, 베이스 러닝도 열심히 했다”며 “1, 2번 타자는 경기 시작할 때나 1, 2번이지 그다음부터는 큰 의미가 없다. 잘 치는 타자가 한 번이라도 더 쳐야 한다. 8, 9, 1번에서 나가고 2번에서 장타를 ‘빵’ 치면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삼성 감독 시절 상황에 따라 박석민(33·현 NC 다이노스)을 2번 타순에 기용하면서 자기철학을 실제 경기에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는 LG 상대팀 넥센 히어로즈 역시 외국인 타자 마이클 초이스(29)를 2번 타순에 배치했습니다. 초이스는 지난해 전체 201타석 중 150타석(74.6%)이 3번 타순이었습니다. 이제 강한 2번 타자가 대세가 되는 걸까요. 

지난해까지는 2번 타자가 그리 강하지 않았던 게 현실입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최근 10년(2008~2017)간 2번 타자가 기록한 전체 OPS(출루율+장타력)는 0.732로 전체 아홉 자리 가운데 6위였습니다. 지난해 5위(0.782)로 오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세가 바뀌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본도 비슷합니다. 한국 프로야구처럼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퍼시픽리그 기록을 살펴보면 지난해 선발 2번 타자가 기록한 OPS는 0.675로 역시 6위였습니다. 퍼시픽리그에서는 지난해까지도 ‘2번 타자 = 희생번트를 대려고 존재하는 자리’라는 공식이 통했습니다. 전체 희생번트(687개) 가운데 30.7%(211개)를 2번 타자가 성공시켰습니다. 9개 타순 가운데 제일 높은 숫자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9번 타자(142개)가 2번 타자(126개)보다 희생번트가 더 많았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사정이 다릅니다.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아메리칸리그 기록을 살펴보면 지난해 2번 타자 전체 OPS는 0.781로 3번(0.811), 4번(0.798) 타자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습니다. 아메리칸리그에서도 10년 전(2008)에는 OPS 7위 선수가 들어서는 자리가 2번 타순이었고, 2014년만 해도 5위였습니다. 그러다 2015년 3위로 뛰어오르면서 분위기가 변했습니다. 2016년에는 4위로 순위가 내려갔지만 당시 3위였던 1번 타순(0.758)과 OPS가 0.001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꼭 아메리칸리그만 그런 건 아닙니다.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내셔널리그에서도 2번 타자는 OPS 0.791로 5번 타자와 함께 공동 3위였습니다. 결국 미국에서는 팀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타자를 2번 타순에 배치하는 게 일반적 현상이 된 셈입니다. 

그러니까 강한 2번 타자 이론은 ‘팀 내에 강한 타자가 많으니까 2번 타순에도 좋은 타자를 넣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전까지 흔히 중심 타선이라 생각했던 3~5번에서 한 명이 2번 자리로 옮기는 형태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변화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가 지난해 마애애미 말린스에서 뛰었던 장칼로 스탠턴(29·현 뉴욕 양키스)입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홈런을 가장 많이(59개) 때린 스탠턴은 총 159경기에 출전했는데 이 중 110경기(69.2%)에서 2번 타자로 나섰습니다. 이 110경기에서 스탠턴은 홈런 47개를 때려내면서 OPS 1.057을 기록했습니다. 홈런 11개를 때린 4번 타자 출전 때 OPS(0.901)보다 더 좋았습니다.


홈런왕을 2번에 배치한다고?

넥센 히어로즈 마이클 초이스. 팀 내 손꼽히는 강타자지만 최근 2번 타자로도 기용되고 있다. [동아일보]

넥센 히어로즈 마이클 초이스. 팀 내 손꼽히는 강타자지만 최근 2번 타자로도 기용되고 있다. [동아일보]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의 고전이라고 부를 만한 ‘더 북(The Book)’ 역시 이런 변화를 지지합니다. 이 책을 지은 야구전문가 3명은 각 타순에 따라 어떤 아웃 카운트와 주자 상황에 가장 많이 놓이는지 통계학적으로 검토했습니다. 그런 다음 팀 내 최고 타자 두 명 가운데 출루 능력이 더 좋은 타자를 2번, 장타력이 더 좋은 타자를 4번에 각각 배치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 한국 야구도 이런 방향으로 변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일단 관점에 따라 접근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2008~2017년 한국 프로야구에서 2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 건 총 5만5618번. 이 가운데 31.2%인 1만7351타석은 주자가 득점권에 있는 상태였습니다. 2번 타자보다 이 비율이 적었던 건 1회에 무조건 (주자가 없는) 선두 타자로 나오는 1번 타자(27.3%)밖에 없었습니다(사실 1번 타자는 1회 이후에도 선두타자로 나오는 비율이 다른 타순보다 높습니다). 

이 비율이 제일 높은 건 역시 4번 타자(38.4%)였고 이어서 5번 타자(37.0%), 3번 타자(36.5%) 순이었습니다. 중심 타선을 부를 때 주자를 쓸어 담는다는 뜻에서 ‘클린업 트리오’라고 하는 게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입니다. 

그런데 이건 전통적인 스타일로 타선을 짰을 때 나온 결과입니다. 현재도 2번 타자는 득점권 주자 비율을 5.3%p(3번 타자 기록 36.5%-2번 타자 기록 31.2%) 높이는 구실을 합니다. 만약 2번 타순에 더 많이 살아 나가고 공을 더 멀리 보내는(장타력이 뛰어난) 타자가 들어서면 이 기록이 더욱 올라갈 수 있습니다. 

타순을 짜는 방식에 따라 득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장영재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연구팀이 ‘마르코프 체인’이라는 모델을 통해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장 교수는 “타순에 따라 한 팀의 경기당 득점이 0.6~0.9점가량 차이가 났다.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것 못지않게 선수를 잘 배치하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에서도 2번 타자 홈런왕을 보게 된다 해서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주간동아 2018.04.18 1134호 (p66~67)

  •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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