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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은 잘 갈았다, 이제 방패 챙길 때

축구대표팀 ‘E-1 챔피언십’ 우승… 공격은 합격점, 수비는 더 다듬어야

칼은 잘 갈았다, 이제 방패 챙길 때

한국 남자축구 국가대표팀이 12월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17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 일본전에서 4-1 대승을 거둔 뒤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동아DB]

한국 남자축구 국가대표팀이 12월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17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 일본전에서 4-1 대승을 거둔 뒤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동아DB]

‘비교체험 극과 극!’ 20년 전 인기를 끌었던 TV 예능프로그램 코너가 떠올랐다. ‘2017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에 나섰던 한국 남자축구 국가대표팀의 우승에 대한 감상평이다. 이렇게까지 냉탕과 온탕을 오갈 수 있나 싶었다. 반전으로 유명한 영화도 이 정도는 아니다. 

사실 잘해야 본전인 대회였다. 한국, 일본, 중국에 북한까지. 과거 6자 회담을 이루던 국가 가운데 미국, 러시아 빼고 다 모였다. 이쯤 되면 단순히 친선 축구경기라 보기 어렵다. 정치·역사적 감정이 얽힌 일종의 전쟁이다. 신태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게도 부담이었다. 규정상 유럽에서 뛰는 정예 멤버는 부르지도 못했다. 다른 나라도 같은 조건이었으나 의존도는 한국이 좀 더 높다. 지휘봉을 잡은 지 반년에 6경기밖에 치르지 않았다. 척박한 상황 속에서 이 선수 저 선수 끌어모아 일본 도쿄로 날아갔다.


결국 본무대는 월드컵

‘극과 극’은 대표팀 경기력만이 아니다. 신 감독의 인터뷰 스킬도 이에 해당한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향연이다. 우승 뒤 스스로 ‘난 놈’이라고 표현할 만큼 화통한 맛이 있다. 대중이 열광할 만하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못할 때도 있는 법. 대중이 물어뜯기 딱 좋다. E-1 챔피언십 중국과 1차전에서 2-2 무승부가 그랬다. 한국은 만 23세 이하를 데리고 나온 상대를 끝내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신 감독은 “경기 과정은 완벽했다.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중국은 이긴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상대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해 공분을 일으켰다. 과거 사석에서 한 인터뷰 발언과 관련해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라고 후회했다는 일화도 있지만, 그 역시 신태용이란 인물의 일부였다. 

참 묘한 게 그 속에서도 결과로 답했다는 점이다. 북한전을 신승한 뒤 “한일전은 반드시 승리하겠다”라던 그는 적지에서 일본을 4-1로 박살 냈다. 대표팀 통산 최초로 대회 2연속 우승까지 챙겼다. 항간에는 이면에 담긴 긍정적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경기 내용이나 결과가 좋지 못했을 때 화살을 본인에게 돌려 선수단 사기를 챙긴다는 것이다. 해몽이야 어찌 됐든 가장 중요한 시기에 성과를 냈다는 것만큼 안심되는 일도 없다. 한국 축구가 거듭해온 부침, 이런 위기 속 월드컵 기적을 바라는 기대도 핀다. 이를 바탕으로 E-1 챔피언십을 돌아본다. 포인트는 다섯 가지다.


01 일희일비보다 진중하게
어차피 축구 국가대표팀이 제 실력을 발휘해야 할 곳은 월드컵 본선 무대다. 지켜보는 이들도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표팀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동안 여론도 요동쳤다. ‘한국 축구 살려내라’며 공항 귀국장까지 달려가 항의하는 일도 있었고, ‘모처럼 희망을 봤다’는 찬사가 댓글란을 뒤덮기도 했다. 조금은 여유 있는 시선으로 힘을 합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2018년 1월 유럽파 없이 중동 전지훈련을 갖는 대표팀은 3월 원정 평가전, 5~6월 최종 모의고사 뒤 바로 월드컵에 나선다. 이번 E-1 챔피언십 우승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묵묵히 다음 단계를 준비할 때다.


02 전술무기 갈고닦은 기회
얼마 안 남은 시간에 정말 다행인 것은 메인 포메이션을 확실히 구비했다는 점이다. 신 감독은 E-1 챔피언십 기간에도 여러 형태를 실험했다. 중국전은 스트라이커를 하나만 두는 4-2-3-1, 북한전은 그간 실패로 귀결한 변형 스리백, 일본전은 11월 A매치에서 재미를 본 4-4-2였다. 이 중 합격점을 받은 건 사실상 일본전뿐이다. 선수단 전술 이해도가 가장 높아 보였다. 적장도 인정했다. 바히드 할릴호지치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은 “한국의 경기력 수준은 매우 높았다. 우리보다 한 수 위”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대표팀 정우영(충칭 당다이 리판)은 “4-4-2는 심플한 전술이다. 선수들이 이해하기 좋은 포메이션”이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03 골문으로 쏠 총알은 충분하다
공격수 경합도 재밌어졌다. 최종 엔트리는 23명이다. 이 중 골키퍼 셋은 고정이다. 4-4-2 전략을 가져갈 경우 필드 플레이어 포지션당 2배수씩 선발한다는 단순 계산법이 나온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근호(강원FC)를 첫 번째 옵션으로 삼는다는 가정 아래 나머지 공격수 구성을 지켜봐야 한다. 파워, 스피드, 체력, 압박, 수비 가담 등을 두루 떠올렸을 때 황희찬(레드불 잘츠부르크)이 이들의 유력 대안이다. 여기에 공중전을 겸할 플랜B도 필요하다. 힘과 높이로 싸울 정통 스트라이커가 대상이다. 울리 슈틸리케 체제에서 각광받던 이정협(부산 아이파크)이 주춤한 동안 김신욱(전북현대모터스)과 석현준(트루아AC)의 대결 구도가 형성됐다. 김신욱은 2014 브라질월드컵 경험이 큰 자산이며, 석현준은 유럽무대 활약이 장점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김신욱이 주가를 높였다. 2m에 육박한 장신임에도 발기술이 괜찮다는 것을 증명했다. 무작정 공중으로 띄우는 것만이 답이 아님을 확인했다. 프랑스 리그 앙에서 연속 득점 중인 석현준은 신 감독의 현지 점검을 앞두고 있다.


04 방탄조끼가 좀 부실하긴 한데
전방은 행복한 고민이지만, 후방은 답답하다. 선택지가 있는 공격진에 비해 수비진은 딱히 믿을 만한 자원이 없다. E-1 챔피언십에서도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 팀원 간 호흡이 맞지 않았고 개개인의 치명적인 실수도 잦았다. 과거와 비교해 중국, 일본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진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개선의 여지가 별로 없어 더 문제다. 전방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수비해 하중을 줄인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 남은 준비 기간을 고려했을 때,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의 주장처럼 K리그 클래식 우승팀 전북현대의 수비진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05 매 경기 강호 상대하듯
정신 상태도 한 번쯤 짚어야 한다. 피 흘리는 통증에도 붕대를 감고 뛰는 것만이 정신력은 아니다. 해볼 만하다고 여긴 상대를 만나 방심 없이 경기에 임하고, 리드할 때도 긴장을 풀지 않으면서 완벽한 승리를 쟁취하는 것 역시 정신력이다. 안일하게 그라운드를 밟았을 때 발생하는 대표적 현상이 이른 실점이다. 일본전에서도 전반 3분 만에 선제골을 헌납했다. 중국전 첫 실점 시점은 전반 7분이었다. 결과적으로 중국전 무승부, 일본전 승리를 일궈냈지만 그 상태로 고꾸라질 우려도 매우 컸다. 월드컵에서 만날 상대는 뒤집기가 쉽지 않은 강팀이다. 이른 시간에 득점을 허용하면 그대로 끝날 공산도 농후하다. 

대표팀의 다음 일정은 1월 중동 전지훈련이다. 유럽 팀들이 따뜻한 곳으로 넘어올 것에 대비해 연습 경기 등을 기획하고 있다. E-1 챔피언십처럼 중동 전지훈련도 유럽파 소집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일은 아니다. 유럽에서 뛰는 이들이 합류하기 전 판을 완성해두는 것도 필요하다. 김진수, 최철순(이상 전북현대), 장현수(FC도쿄), 권경원(톈진 콴잔), 정승현(사간 도스), 고요한(FC서울) 등이 나섰던 수비진을 좀 더 담금질할 기회다. 또한 손흥민, 기성용(스완지 시티 AFC), 권창훈(디종FCO), 황희찬 등의 대안도 꾸려봄 직하다.




주간동아 2017.12.27 1119호 (p70~71)

  • 홍의택 축구 칼럼니스트 releaseh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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