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5

2017.07.05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수소가 햇빛, 바람 만나면 세상이 바뀐다

태양광  ·  풍력발전 남은 전기로 물 분해해 수소 생산 …  저장했다 연료전지로 발전, 부산물 ‘열’은 난방

  • 지식 큐레이터 imtyio@gmail.com

    입력2017-07-04 10: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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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심호흡을 하고 중학교나 고등학교 과학시간으로 돌아가보자. 물이 담긴 작은 수조 한쪽에 전기의 양극(+)을 연결하고 다른 한쪽에는 음극(-)을 연결한 뒤 전기를 흘려준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양쪽에서 보글보글 기체가 나온다. 음극 쪽 기체는 수소(H2), 양극 쪽 기체는 산소(O2)다. 바로 전기분해 실험이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좀 더 머리를 굴려보자. 전기를 흘렸더니 물이 수소와 산소로 분해됐다. 그렇다면 수소와 산소를 다시 결합시키면 어떻게 될까. 1839년 영국 윌리엄 그로브는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켜 물을 만들면 전기가 발생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바로 수소 혁명의 미래가 예고된 순간이었다.



    전기차 vs 수소차

    미국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의 ‘모델S’ 같은 자동차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전기자동차가 금세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올 분위기다. 테슬라의 전기자동차는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로 모터를 돌려 굴러간다. 전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질소산화물, 미세먼지 같은 오염물질 배출은 제로(0)다. 여기까지만 보면 참 좋은 자동차다.

    그런데 속사정까지 살펴보면 반전이다. 테슬라 전기자동차를 움직이는 전기는 도대체 어디서 올까. 만약 우리나라에서 테슬라 전기자동차를 굴린다면 그 전기는 대부분 대기오염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나 방사성물질을 내놓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온다. 이런 전기자동차를 친환경차라 말할 수 있을까. 수소연료전지자동차(수소자동차)는 내부의 수소연료전지를 이용해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켜 전기를 직접 만든다. 즉 수소자동차는 수소 탱크에서 나오는 수소와 공기 중 산소를 연료전지 안에서 결합시켜 전기를 생산하고, 그 전기로 모터를 돌려 자동차를 굴린다. 부산물은 ‘물’뿐이다.



    현대자동차는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자동차 상용화에 성공했다. 만약 수소만 펑펑 만들 수 있다면 수소자동차야말로 인류의 미래 자동차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수소자동차는 전기자동차처럼 각광받지 못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켜 전기를 만들려면 수소가 필요하다. 그럼 수소는 어디서 얻을까. 가장 쉬운 답은 ‘물’이다. 그런데 물에서 수소를 뽑아내려면 다시 전기가 필요하다. 전기를 만들려고 수소가 필요한데, 물에서 그 수소를 뽑아내려면 다시 전기가 필요한 역설적 상황이다.

    이런 상황 탓에 지금 전 세계에서 소비하는 수소는 대부분 물이 아닌 메탄(CH4) 같은 천연가스에서 나온다. 이런 상황도 역설적이긴 마찬가지다. 굳이 메탄에서 수소를 뽑아 쓸 거라면, 그냥 메탄(천연가스)을 발전소에서 태워 물을 끓일 때 나오는 증기로 전기를 생산하면 되니까.

    이 지점에서 수소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햇빛(태양광)이나 바람(풍력)이다. 태양광발전기나 풍력발전기를 이용해 생산한 전기는 두 가지 큰 단점이 있다. 첫째, 연중 고르게 생산되지 않는다. 햇빛이 좋은 여름이나 바람이 좋은 초봄에는 전기를 많이 생산하지만, 햇빛이나 바람이 나쁠 때는 생산량이 적다.

    둘째, 저장이나 이동이 어렵다. 전기를 대량 저장하는 것은 금방 닳는 휴대전화 배터리에서 확인할 수 있듯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고압 송전선을 통해 전기를 이동시키면 그 과정에서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다. 송전탑과 송전선이 지나는 지역 주민이 입어야 할 피해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이런 식은 어떨까. 일단 햇빛이나 바람으로 생산하고 쓰고 남은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만들어놓는다. 그렇게 만든 수소는 마치 석유나 천연가스처럼 저장, 이동, 충전이 쉽다. 이런 수소를 주유소 등 전국 충전소에서 자동차에 넣고, 또 지역에 전기를 공급할 때 사용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수소 혁명’ 아닐까.



    핵  -  수소 동맹 vs 햇빛  -  수소 동맹

    기왕 장밋빛 전망을 얘기했으니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 연료전지발전기에서 수소, 산소가 화학 반응을 통해 물이 되는 과정에서 전기(50%)뿐 아니라 ‘열’(30%)도 부산물로 나온다. 이 열은 지역의 온수 공급과 난방에 이용할 수 있다. 전기와 열을 한꺼번에 활용하면 효율이 80% 가까이 된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물론 이 대목에서 훼방꾼이 있다. 바로 원자력발전소다. 물을 분해하는 전기를 꼭 햇빛이나 바람 같은 재생 가능 에너지에서 얻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토 넓이를 놓고 볼 때 이미 너무 많다 싶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로도 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들 수 있다. 원자력발전소 옹호자 가운데 수소를 찬양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수소 에너지는 햇빛이나 바람은 물론, 핵과도 손잡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소 혁명’(민음사)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 같은 지식인이 전자라면, 임기 내내 핵발전소 드라이브를 걸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 같은 사람은 후자다. 2012년 5월 똑같이 수소 혁명을 얘기한 두 사람이 만났지만 대화가 엇나가기만 한 것도 이런 사정 탓이었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은 핵 대신 햇빛이나 바람과 손잡는 방향을 선택했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수소 혁명이 가능할까. 앞으로 우리는 도로에서 수소 탱크를 단 수소자동차와 충전 배터리를 단 전기자동차 가운데 어느 쪽을 목격하게 될까. 대답이 어느 쪽이든, 우리는 지금 에너지 혁명의 진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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