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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과학, ‘토끼의 눈물’을 닦다

실험동물들의 희생, 장기 배양으로 사라질 수도

과학, ‘토끼의 눈물’을 닦다

화장품 안전성 실험을 위해 희생되는 실험용 토끼. [shutterstock]

화장품 안전성 실험을 위해 희생되는 실험용 토끼. [shutterstock]

오늘은 한참 전에 나온 영화 이야기로 시작하자. 혹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2009)를 기억하는가. 이 영화는 판도라 행성에서 자원을 채취하려는 인간들이 그곳 원주민 나비족과 똑같이 생긴 분신(아바타)을 만들어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아바타는 나비족과 친구가 될 뿐 아니라 심지어 사랑도 한다.


약 개발 미명하에 고통받는 동물들

몇 년 전부터 과학자는 ‘아바타 생쥐’를 만들어 연구 중이다. 아바타와 생쥐의 조합이 어색하다고? 사정은 이렇다. 여기 암에 걸린 환자가 있다. 암을 치료하는 데 항암제를 사용할 수도, 방사선 치료를 할 수도 있다. 환자마다 처치에 따른 반응도 제각각이다. 

만약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처치 방법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바타 생쥐는 바로 이런 필요에 따라 등장했다. 환자의 암세포를 떼어 내 실험용 생쥐에게 이식한다. 그 생쥐는 환자와 똑같은 암세포를 지닌 아바타 생쥐가 된다. 이 생쥐에게 항암제·방사선 치료 등을 해보는 것이다. 만약 방사선보다 항암제로 치료할 때 아바타 생쥐의 암세포가 빠른 속도로 줄었다면 의사는 환자에게 항암제를 권할 수 있다. 실제로 2013년 이런 방법을 개발한 삼성서울병원은 “아바타 생쥐 덕분에 환자 맞춤형 암 치료가 가능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런데 아바타 생쥐를 이용한 치료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바타 생쥐로 얻은 실험 결과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다. 알다시피 사람과 생쥐는 유전자를 비롯한 많은 부분이 다르다. 그러니까 아바타 생쥐 몸에 있는 암세포를 죽이는 데 항암제가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해서 사람도 똑같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할 때 동물실험을 무작정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동물실험에서 별다른 부작용이 없던 약을 막상 인간에게 복용하게 하자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제약회사는 동물실험에서 신약의 효과를 확인한 후에도 환자 여러 명을 포함한 인간 대상의 임상시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시간과 비용도 문제다. 환자 한 명에게 맞춤한 치료법을 찾으려면 여러 마리의 아바타 생쥐를 만들고 다양한 처치 방법을 실험해야 한다. 딱 한 번만 해서도 안 된다. 환자에게 직접 적용하려면 반복 실험은 필수다. 그러려면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시간도 계속해서 흘러간다. 한시가 급한 환자 처지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말하기 불편해하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영문도 모른 채 인간의 암세포를 몸속에 지니고 갖가지 항암제나 방사선 처치를 받아야 하는 수많은 아바타 생쥐의 처지는 어떨까. 인간이 쓰는 화장품의 안전성 테스트를 위해 좁은 공간에 갇혀 수주, 수개월간 3000번가량 화장품을 눈에 바르다 결국 눈이 멀거나 죽어야 했던 실험용 토끼의 사연만큼이나 안타깝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이에 세계 곳곳의 과학자 여럿이 지혜를 모아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 그리고 마침내 방법을 찾았다. 바로 ‘장기칩(organ-on-a-chip)’이다. ‘장기칩’은 말 그대로 칩 위에 인간의 폐, 심장, 뇌 같은 기관(organ)을 올려놓은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일단 칩 위에 인간 폐를 올려놓은 ‘렁온어칩(lung-on-a-chip)’을 살펴보자. 2010년 미국 하버드대 비스생체모방공학연구소에서 개발한 렁온어칩은 인간 폐를 칩 위에 그대로 재현했다. 인간의 허파꽈리(폐포) 세포와 모세혈관 등을 칩 위에 배양한 것이다. 

이렇게 만든 렁온어칩은 인간 폐처럼 수축, 이완을 반복하면서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한다. 모세혈관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배출한다. 칩 위에 있어 생김새는 폐와 다르지만, 구성과 기능은 폐와 똑같다. 말 그대로 ‘칩 위의 폐’다.


칩 위에 폐나 심장 올려놓기

전자회로와 세포를 결합해 만든 ‘장기칩(organ-on-a-chip)’. [동아DB]

전자회로와 세포를 결합해 만든 ‘장기칩(organ-on-a-chip)’. [동아DB]

그렇다면, 이런 렁온어칩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는 흡연과 폐암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담배회사는 인과관계에 의문을 표시한다. 둘 사이가 원인(흡연)과 결과(폐암)라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인간을 상대로 한 실험이 어렵기 때문이다. 제대로 증거를 내놓으려면 폐 상태가 비슷한 멀쩡한 사람들을 대조군과 실험군으로 나눈 다음, 한쪽(실험군)만 주야장천 담배를 피우게 해야 한다. 이런 생체실험을 진행한다면 끔찍한 범죄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렁온어칩으로 이 실험이 가능하다. 렁온어칩을 여러 개 연결해놓으면 실제 폐(모양은 다르지만)와 똑같은 기능을 한다. 이런 렁온어칩이 담배를 피우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골초가 그렇듯, 하루에 한 갑(20개비)씩 말이다. 실제로 렁온어칩으로 실험했더니 폐가 망가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기칩만 있으면 아바타 생쥐도 필요 없다. 예를 들어 췌장을 칩 위에 올려놓은 다음, 그곳에 환자의 암세포를 배양할 수 있다. 그렇게 배양한 암세포에 아바타 생쥐에게 그랬듯이 항암제를 투여하고, 방사선도 쬔다. 그다음 암세포를 죽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처치 방법을 찾아내 실제 환자의 췌장암 치료에 활용하면 된다. 

‘아이온어칩(eye-on-a-chip)’도 나왔다. 화장품 회사는 이제 더는 토끼를 강제로 가둬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3000번이나 눈 화장품을 바를 필요가 없다. 인간의 눈을 칩 위에 올려둔 아이온어칩에 화장품을 발라 이상 반응이 나타나는지 확인하면 되니까. 

이렇게 장기칩은 여러 이익을 가져다준다. 먼저 그동안 동물실험 등에 의존해온 신약, 화장품 등의 효과를 장기칩을 통해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특정 개인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맞춤형으로 확인하는 일도 가능하다. 또 생쥐, 토끼, 원숭이 등 동물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과학은 이렇게 윤리와 함께 진보한다.




주간동아 2018.07.18 1147호 (p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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