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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아이언맨보다 강한 스누맥스

소프트 로봇이 만드는 인간을 위한 미래

아이언맨보다 강한 스누맥스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한 철갑 로봇슈트의 슈퍼히어로 아이언맨. [shutterstock]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한 철갑 로봇슈트의 슈퍼히어로 아이언맨. [shutterstock]

1992년 봄에 있었던 일이다. 서울대 공과대학에 한 학생이 입학한다. 당시만 해도 80년대에 이어 사회를 바꾸려는 열망이 캠퍼스 곳곳에 남아 있을 때였다. 그가 입학하자마자 처음 접한 구호는 ‘인간을 위한 기계, 해방을 위한 설계!’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새내기 대학생이었지만 그 생경한 구호는 왠지 머릿속에 남았다. 

그러고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공학도는 일찌감치 공부와 연구에 뜻을 뒀다. 로봇 개발을 목표로 공부하다 미국으로 유학도 갔다. 미국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8년에는 모교 교수가 됐다. 그사이 대학 새내기 때 봤던 구호는 희미하게 잊혔다. 서울대에서 로봇공학을 연구 중인 조규진 교수의 이야기다.


신세대 로봇은 ‘소프트’가 대세

조규진 서울대 교수(맨 오른쪽) 연구팀과 ‘스누맥스’. [동아DB]

조규진 서울대 교수(맨 오른쪽) 연구팀과 ‘스누맥스’. [동아DB]

먼저 ‘로봇’ 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요즘 유행하는 ‘4차 산업혁명’ 같은 말이 떠오를 테고, ‘일자리를 빼앗는 재앙’이라는 걱정도 들 것이다. 어렸을 때 봤던 ‘로보트 태권V’ ‘마징가Z’ 등 애니메이션 속 기계 덩어리나 ‘아이언맨’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 나온 철갑 로봇슈트도 떠오를지 모르겠다. 

그런데 실제 로봇의 모습은 상당히 다르다. 최근에는 디즈니 영화 ‘빅 히어로’에 나온 의료 로봇 ‘베이맥스’처럼 딱딱한 금속 대신 유연한 소재로 만든 ‘소프트 로봇’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조 교수는 소프트 로봇의 권위자다. 소프트 로봇은 유연성이 떨어지고 동작이 둔한 금속 로봇보다 훨씬 다양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어 현실에서 더 크게 활약할 전망이다. 

생각해보라. 딱딱한 금속 로봇은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진 지진 후 재난 현장이나 이곳저곳 장애물이 가득한 전쟁터에서 이동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소프트 로봇은 움직임이 유연하기 때문에 험지에서 이동할 때 훨씬 유리하다. 조 교수와 학생이 함께 만든 소프트 로봇 ‘스누맥스(SNUMAX)’는 그 좋은 예다. 

스누맥스는 2016년 4월 30일 이탈리아 리보르노에서 열린 세계 최초 소프트 로봇 경진대회에서 우승했다. 미국, 싱가포르, 영국, 이탈리아 등 전 세계에서 참가한 23개 팀의 로봇 가운데 스누맥스는 계단 오르기, 장애물 피하기, 물체 집기 등 6가지 미션에 유일하게 성공했다. 특히 종이 접기의 원리를 응용해 만든, 자유자재로 모양이 바뀌는 스누맥스의 바퀴는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런 소프트 로봇에 제일 눈독을 들이는 곳이 어디일까. 맞다. 바로 군대다. 지형지물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소프트 로봇은 전쟁터에서 정찰용이나 살상용으로 사용하기에 제격이다. 소프트 로봇은 재난 현장을 누비면서 생명을 구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용도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로봇의 3원칙은 △로봇은 인간에게 피해를 입혀선 안 되며 방관해서도 안 된다 △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따른다 △1, 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지킨다 등이다. 로봇이란 존재가 인간을 돕고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프트 로봇은 어떻게 실생활에 도움이 될까.


소프트 로봇, 장애인과 손잡다

조 교수는 손을 쓸 수 없는 장애인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장갑형 로봇슈트 ‘엑소 글로브 폴리(Exo-Glove Poly)’를 개발했다. 로봇슈트 하면 영화 ‘아이언맨’의 철갑 슈트만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조 교수의 로봇슈트에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Exo-Glove Poly’를 검색하면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장애인이 이 장갑형 로봇슈트를 착용하면 그동안 쓰지 못했던 손을 움직일 수 있다. 남의 도움 없이 물건을 집고 문을 연다. 당연히 컵에 든 물도 마실 수 있고 심지어 칫솔질도 혼자서 가능하다. 조 교수는 손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 여러 명과 머리를 맞대고 이 장갑형 로봇슈트가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개발했다.

소프트 로봇 기술을 응용한 플라스틱 소재도 장애인 맞춤이다. 플라스틱이라 가벼울 뿐 아니라 착용하기도 쉽다. 장애인에게 가장 반가운 점은 착용해도 티가 안 난다는 것이다. 슈퍼 히어로는 철갑 로봇슈트를 입고 티를 내며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장애인은 일상생활에서 티가 안 나는 것을 오히려 선호한다. 

조 교수가 소프트 로봇 기술을 장애인을 위해 쓸 궁리를 하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그는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를 탄 채 강의를 하는 동료 교수의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과 로봇의 행복한 만남을 꿈꾸게 됐다. 그러다 휠체어를 탄 어느 장애인이 “손만 움직이게 해주면 좋겠다”고 한 호소를 듣고 장갑형 로봇슈트를 떠올렸다. 

실제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가운데 절반가량은 손을 사용하지 못한다. 이러한 장애인은 휠체어를 타더라도 일상생활을 혼자서 할 수 없다. 조 교수는 장갑형 로봇슈트를 개발하는 내내 장애인들로부터 조언을 들었다. 장갑형 로봇슈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조 교수의 기술뿐 아니라 장애인의 경험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흔히 로봇 하면 우리는 ‘인간 없는 로봇’을 떠올린다. 사람 한 명 찾아볼 수 없는 공장에서 로봇 팔이 제품을 만드는 모습이 대표적 예다. 로봇의 미래에 항상 대량실업 사태가 겹쳐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손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을 위한 장갑형 로봇슈트 같은 전혀 다른 로봇의 등장이 가능하다. 

요즘 유럽이나 일본에서 개발 중인 로봇은 공장에서 인간과 협력하는 유형이다. 이런 공장에서 로봇은 노동자를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힘을 덜 쓰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전 같으면 은퇴해야 할 고령의 노동자도 무겁고 위험한 물건을 다루는 힘든 일을 로봇이 도와주니 좀 더 오랫동안 일할 수 있다. 

장애인을 돕는 로봇슈트를 개발하면서 조 교수는 대학 입학 당시 봤던 구호를 떠올렸다고 한다. ‘인간을 위한 기계, 해방을 위한 설계!’ 공부와 연구에 몰두하느라 그 구호와 멀어진 듯했지만 결국 조 교수는 장애인과 함께 앞장서 그 구호를 실천 중이다. 

그 구호를 살짝 비틀면 ‘인간을 위한 로봇, 해방을 위한 과학기술’이 된다. 바로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기술이다. 그리고 과학기술에 인간의 얼굴을 새기는 일은 조 교수 같은 과학자나 엔지니어뿐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장담컨대, 이 미션이 얼마나 성공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좀 더 밝아질 것이다.




주간동아 2018.06.06 1141호 (p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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