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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진짜 친구의 수는 150명!

인간관계의 비밀, 던바의 수 ‘150’에 숨어 있다

진짜 친구의 수는 150명!

진짜 친구의 수는 150명!
가끔 보는 지인은 오랫동안 굴지의 대기업 회장 비서로 일했다. 만나 수다를 떨다 보면 평소 접할 수 없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곤 한다. 한번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그 회장의 인간관계 관리법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상당히 유용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 회장은 처음 만나 명함을 받으면 그 명함에 항상 이런저런 메모를 끄적거린다고 한다. ‘◯월 ◯일 아무개가 주최한 골프 모임에서 처음 만남’ ‘베트남 사업에 관심이 많음’ ‘수다쟁이’ ‘전쟁사에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음’ ‘애연가. 하지만 술은 거의 마시지 못함’ 등 메모가 적힌 명함을 비서는 파일로 정리한다. 

이름, 직함, 연락처는 물론이고 명함에 빼곡하게 적힌 메모도 그대로 옮겨둔다. 이렇게 축적한 인물 데이터베이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유용하게 쓰인다. 회장이 누군가와 약속하면 그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전에 만난 적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예전에 봤던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와 명함에 적힌 메모 등을 회장에게 미리 제공한다.


감당할 수 있는 인간관계 상한선

[shutterstock]

[shutterstock]

그럴듯해서 몇 년 전부터 나도 따라 하고 있다. 물론 비서는 언감생심. 하지만 우리에게는 회장 비서 뺨치는 유용한 기기가 있다. 명함을 받을 때마다 ‘원노트’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사진을 찍어 저장하고, 명함 하단에 몇 가지 메모를 해둔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또 그 회장처럼 몇 가지 의미 있는 정보도 끄적거린다. 

어느 날 몇 년간 정리한 이름을 쭉 한 번 넘겨봤다. 놀랍게도 1000명에 가까운 이름 가운데 또렷이 기억에 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는 말이 있다. 로빈 던바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던바는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가 다른 포유류보다 체구에 비해 큰 뇌를 가지게 된 이유를 사회성에서 찾는 ‘사회적 뇌’ 가설로 유명한 과학자다. 인간들이 어울려 살면서 두뇌가 발달해 오늘날처럼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던바의 수는 뭘까. 던바는 뇌 크기와 영장류 집단 규모 간 상관관계를 연구하면서 한 개체의 한정된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집단 규모에 한계가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던바가 추정한 인간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집단 규모는 150명 정도다. 즉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는 150명 정도에 불과하다. 

던바는 1993년 이런 결론이 담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던바의 수 150이 탄생한 순간이다. 이 던바의 수는 얼마나 신뢰할 만할까. 

흥미롭게도 던바의 수를 지지하는 증거는 상당히 많다. 신석기 시대 수렵·채집 공동체 인구수는 150명 정도였다. 던바가 인구 기록을 구할 수 있는 20개 원주민 부족의 규모를 확인했더니 인구수가 평균 153명이었다. 던바의 고향인 전통적 영국 시골 마을의 평균 인구수 역시 공교롭게도 150명이었다. 

이뿐 아니다. 로마시대 로마군의 기본 전투 단위인 보병 중대는 약 130명이었다. 현대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현대 보병 중대의 단위도 3개 소대, 포대, 지원 병력 등을 합해 130명 정도로 구성된다. 이런 건 어떤가. 기능성 섬유 고어텍스의 제조사 고어는 수평적 조직을 지향하는 독특한 기업문화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 공장의 조직 단위가 150명이다. 

던바가 직접 진행한 재미있는 연구도 있다. 던바는 영국 시민을 대상으로 연말에 ‘크리스마스카드를 고르고 편지를 쓰며 우표를 사고 우편으로 보내는’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지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평균 68곳의 가정에 카드를 보냈고, 그 구성원을 합하면 150명 정도였다. 

던바의 수가 유명해지자 미국, 오스트리아 등의 과학자가 함께 온라인 게임의 가상공간에서 게임 참여자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연구했다. 이들은 3년 6개월에 걸쳐 게임 참여자 사이에 나타나는 동맹, 제휴, 거래, 경쟁 등의 인간관계 기록을 검토했다. 흥미롭게도 동맹의 규모에 상한선이 없는데도 가장 큰 동맹의 구성원이 136명을 넘는 경우가 없었다(던바의 수!).


소셜미디어의 친구 수천 명은 무의미

가상공간에서 수천 명의 ‘친구’를 맺을 수 있는 소셜미디어 시대에도 이런 던바의 수는 유효할까. 던바의 대답은 단호하다. “그렇다!” 던바는 자신의 가설을 다듬어 이렇게 설명한다. 아주 친밀한 관계에서 시작해 그 친밀함이 느슨해질수록 한 사람이 허용하는 인간관계의 최대 숫자는 3배수로 늘어난다. 가족 4~5명, 친한 친구 15명, 친구 45~50명, 집단 150명 등. 

던바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등의 도움으로 이 수가 500명, 1500명, 5000명으로 늘어난다 한들 일정 규모(150명)를 넘어선 이들은 ‘아는 사람’ 정도의 피상적 관계일 뿐이다. 얼굴을 대면하고 직접 관계를 맺지 않는 이런 관계는 진정한 인간관계라 할 수 없다. 당장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소셜미디어의 친구 수천 명은 도움이 안 된다. 

그러니 던바의 수를 염두에 두면 지난 3년간 내 명함 데이터베이스를 채운 1000명의 사람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연을 맺은 3000명 넘는 지인은 오히려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관계의 걸림돌이다. 아는 사람 정도의 피상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시간을 쏟느라 정작 내가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가족, 친구, 조직의 구성원을 소홀히 했을 수 있으니까. 

이참에 시간을 내 자신만의 던바의 수를 헤아려보라. 막말로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내 편이 돼줄 친구 5명이 주변에 있는가. 언제나 신뢰할 수 있는 친한 친구 15명은? 가끔 연락해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친구 50명은? 나부터 스마트폰에 저장된 이름을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주간동아 2018.05.09 1137호 (p66~67)

  • | 지식큐레이터 imtyi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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