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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독감, 대한민국을 덮치다

A형, B형 동시 유행…낙관하단 큰 코 다쳐

독감, 대한민국을 덮치다

독감, 대한민국을 덮치다
스티븐 킹의 소설 가운데 ‘스탠드’(황금가지)라는 작품이 있다. 이 소설은 치사율 99.7%인 독감이 유행하면서 인류 문명이 몰락하는 과정을 생생히 그리고 있다. 독감의 대유행을 막겠다는 대통령의 긴급 담화를 생중계하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들려오는 기침 소리. 결국 독감은 인류 문명을 결딴낸다. 

요즘 대한민국은 마치 ‘스탠드’ 속 한 장면 같다. 공공장소 어디서나 마른기침 소리가 들린다. 병원마다 독감 (의심)환자로 북새통이다. 질병관리본부가 1월 5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독감 (의심)환자가 지난해 12월 1일 외래환자 1000명당 7.7명에서 한 달 만에 71.8명으로 10배나 증가했다. 앞으로 환자가 줄기는커녕 더욱더 늘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세계보건기구 유행 독감 전망 어긋나

질병관리본부 자료를 보면 이번 독감의 전파 경로가 그려진다. 지난해 12월 1일부터 한 달간 독감 (의심)환자 발생 수치는 7~12세 1000명당 7.7명, 13~18세 1000명당 121.8명이었다. 독감이 학교에서 학생을 숙주로 삼은 다음 자연스럽게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등을 통해 직장이나 지역사회로 전파된 것이다. 

다행히 방학을 해 학교를 통한 전파는 줄었다. 하지만 이제 직장이나 지역사회에 똬리를 틀고 당분간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크다. 유행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독감 유행을 체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직장이나 지역사회에는 독감 백신접종을 하지 않은 이도 많다. 

알다시피 독감은 바이러스(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는 독감 바이러스는 크게 A형과 B형으로 나뉜다. B형 독감은 통상 A형 독감 유행이 지난 후인 2~3월부터 유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B형 독감이 A형 독감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 더구나 전체의 절반가량으로 그 비중도 크다. 

이 대목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A형 독감이 상대적으로 독성이 강하다. A형 독감은 이론적으로 144종의 변종이 가능하다. 2009년 우리나라에서 사망자 수십 명을 낸 ‘신종플루(H1N1)’도 A형 독감이었다. 당시 전 세계를 강타했던 H1N1 바이러스는 이제 계절독감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유행하는 독감 가운데도 같은 바이러스가 있다. 

B형 독감은 딱 2종(빅토리아, 야마가타)이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세계보건기구(WHO)는 겨울이 오기 전 유행 독감을 전망한다. 그래야 제약업체가 맞춤한 백신을 독감 유행 전에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WHO는 보통 A형 두 종류, B형 한 종류의 독감을 꼽는다. 이번에도 A형 두 종류(H1N1, H3N-)와 B형 한 종류(빅토리아)가 선정됐다. 

제약업체는 이 전망대로 백신을 제조, 공급했다. 보건소, 병·의원 등에서는 바로 이 백신을 65세 이상 노인과 어린아이에게 무료 접종했다. 이른바 ‘3가 백신’이다. ‘4가 백신’은 WHO가 권장한 세 종류의 독감에 B형 독감의 나머지 한 종류(야마가타)까지 예방이 가능하도록 추가한 것이다. 

그런데 WHO의 독감 유행 전망은 종종 빗나갔다. 이번에도 그랬다. A형 독감 두 종류는 WHO의 예상대로였는데, B형 독감은 애초 예상한 종류(빅토리아)가 아닌 다른 것(야마가타)이 유행했다. 결국 3가 백신을 접종받은 노인, 어린아이 상당수가 미처 유행을 예상치 못한 다른 종류(야마가타)의 B형 독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이들은 바이러스 전파의 숙주가 됐다. B형 독감이 전체 환자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기승을 부린 데는 이런 사정 탓도 있다.


독감을 이기려면? 백신 맞고 손 씻자

1월 4일 울산 한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왼쪽)과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 모습. [뉴스1]

1월 4일 울산 한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왼쪽)과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 모습. [뉴스1]

보건당국은 B형 독감의 유행을 놓고 상대적으로 걱정을 덜 하는 분위기다. 앞에서 언급했듯, B형 독감은 A형에 비해 독성이 약하다. 더구나 ‘건강한 사람’은 B형 독감 바이러스 한 종류에 항체가 생기면 나머지 바이러스까지 예방 효과(교차 보호)가 있다. 한 종류(빅토리아)를 예방하는 백신이 다른 종류(야마가타)를 막는 데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이런 낙관에 경고를 보낸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최근 기록을 보면 입원, 사망 환자의 B형 바이러스 독성이 A형과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만성질환이 있는 노인은 B형 독감과 폐렴의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보건당국이 언급한 B형 독감 바이러스 두 종류의 상호 예방 효과도 제한적이다. 이런 상호 예방 효과의 덕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은 평소 건강한 이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건강한 사람은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대증요법만으로 나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몸살감기로 여기며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반면 독감이 치명적일 수 있는 노인, 어린이, 임신부,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는 이런 상호 예방 효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다. 이재갑 교수는 “권장 백신(빅토리아)과 유행 바이러스(야마가타)의 불일치(미스 매치)가 일어나는 현 상황에서 노인,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항바이러스제 처방이 중요하다”며 B형 독감에 경각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앞서 언급한 소설에서는 군대에서 생물무기용으로 만든 바이러스가 외부로 유출되면서 대유행이 시작한다. 하지만 현실 속 독감도 충분히 치명적이다. 계절독감이나 끊임없이 돌연변이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는 조류인플루엔자 등이 발생할 때마다 의사, 과학자, 보건당국이 긴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감 바이러스를 이겨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나는 백신접종. 여러 이유로 그 효과가 제한적이라 해도 안 맞는 것보다 낫다. 봄까지는 독감이 유행할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백신을 맞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일상생활 속 감염 관리. 평소 제발 손을 자주 씻는 것은 물론, 독감이다 싶으면 마스크를 끼고 병원부터 찾자. 이것만 잘해도 독감을 이겨낼 수 있고 민폐도 줄일 수 있다.




주간동아 2018.01.17 1122호 (p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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