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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용의 俗 담은 우리말

글 읽을 줄 알아도 문해력 없으면 ‘실질문맹’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글 읽을 줄 알아도 문해력 없으면 ‘실질문맹’

글 읽을 줄 알아도 문해력 없으면 ‘실질문맹’

2월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청교육연수원에서 열린 ‘2016학년도 문해교육 초등· 중학 과정’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이 사각모를 던지며 자축하고 있다.[동아일보 양회성기자]

얼마 전 모 방송사의 요청으로 성인 문해(文解)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겨우 문맹(文盲)을 벗어나신 70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속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 배우지 못한 한 때문에 그 연세에도 학습 의지를 불태우시는 모습을 뵈니 마음이 묵직했습니다. 저 역시 어릴 때 집에 교과서 말고는 책이 없어 친구 집에서 늦도록 책을 읽다 어두운 밤길을 헤치며 돌아온 적이 많았으니까요.

‘문해’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문맹’, 속칭 까막눈이란 단어와 잇닿아 있지요. 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의 기록에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조선인 비율이 중국이나 인도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점이 놀랍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글이 배우기 쉬워서이기도 하겠지만, 배우기 쉬운 만큼 한글을 모르면 어울려 살기 힘들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도 싶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문맹률이 70~80%까지 높아집니다. 일제의 각종 수탈로 인한 빈곤과 고유문화 파괴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문맹 이야기가 나오면 꼭 거론되는 속담이 있습니다. 바로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입니다. 비슷한 표현으로 ‘고무래 놓고 정(丁) 자도 모른다’ ‘흰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씨라’ ‘눈 뜬 장님’ 같은 것도 있습니다. 요즘은 영어를 전혀 모른다는 뜻으로 ‘빨래집게 놓고 에이(A) 자도 모른다’라고 하지요. 컴퓨터나 인터넷을 전혀 모르는 사람을 ‘컴맹’ ‘넷맹’이라고도 합니다. 이제는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만으로는 살기 힘든 세상이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문맹인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의무적으로 기초교육을 다 받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문맹이 있습니다. 문장이나 도표 등이 나타내는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질문맹’ 말입니다. 1994년부터 98년까지 국제성인문해조사를 했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실질문맹률이 가장 높았습니다. 대졸자조차 문해력이 매우 낮았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그 이유는 아마도 독해력 부족 탓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초중고 시절 공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지만 성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성인이 되면 독해력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책이 아닌 영상기기나 스마트기기로 정보를 습득하는 일이 많다 보니,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독서는 자기 언어로 타인의 언어를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책은 글쓴이의 정제된 생각이 함축된 문장으로 구성돼 있기에 자기 생각을 가지고 풀어 읽어야 합니다. 독서를 많이 하면 생각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지는 이유입니다.

흰 건 화면이요, 검은 건 글씨인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행간을 놓치고 그저 의미 없는 정보, 아니 가치를 갖지 못한 데이터만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독해력은 곧 사고력입니다. 사고하지 않고 단지 훑어보는 건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빨리 달릴수록 시야는 좁아집니다. 숙맥불변(菽麥不辨)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른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우리가 빠르게 훑다 놓친 맥락이 사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일지 모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 진짜 정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현대의 문맹이자 ‘쑥맥’ 아닐까요.

김승용은 국어학과 고전문학을 즐기며, 특히 전통문화 탐구와 그 가치의 현대적 재발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속담이 우리 언어문화 속에서 더욱 살찌고 자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자 10년간 자료 수집과 집필 끝에 2016년 ‘우리말 절대지식’을 펴냈다.




입력 2017-05-15 15:55:22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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