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4

2017.04.19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살아 숨 쉬는 파랑

파란색 하늘의 고귀함과 영원함

  • 신연우 아트라이터 dal_road@naver.com

    입력2017-04-17 16: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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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와트니는 온통 적황색인 화성에서 홀로 561일 동안 생존한다. 지구에서 8000만km 떨어진 화성에서 살아 있는 생명체는 어쩌면 와트니 혼자일지도 모른다. 와트니는 동료들과 화성을 탐사하다 모래 폭풍을 만나 사고를 당하고 홀로 남겨졌다. 그는 물과 거름을 만들어 감자를 기르고, 지구와 교신할 방법도 찾아낸다. 부단히 생각하고, 도전하고,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인내하며 살아나간다. 그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료들과 다시 연락이 닿았을 때 안부를 묻는 동료에게 이렇게 말한다.

    “매일 밖에 나가서 광활한 지평선을 바라봐. 왜냐하면 그럴 수 있으니까.”
    할 수 있으니까 한다! 와트니가 화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방법이다. 희뿌연 하늘과 붉은색 모래가 만드는,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바라보며 와트니는 마지막 식사를 한다. 무한 긍정의 사나이도 드디어 지구로 떠나는 날만큼은 두려운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무게를 줄이려고 구조선 뚜껑도 버렸다.

    얇은 비닐막 하나만 덮은 채 무한한 우주로 날아가야 한다. 아무도 성공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와트니는 또다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와트니는 눈을 질끈 감는다. 마침내 구조선이 붉은 지평선을 떠나 새까만 우주로 날아간다. 영화 ‘마션’(The Martian·2015)의 주인공 와트니는 적황색 화성에서 18개월 넘게 지내며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파란 지구로 돌아가고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지구는 파란색이다. 지구를 뒤덮은 바다와 대기층의 색은 푸르지만 하늘과 바다 외에는 자연에서 파랑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파랑은 흔하지 않은 소중한 가치와 신비로움을 상징한다. 와트니가 위험을 감수하고 돌아가려는 지구 또한 소중한 가치를 지닌 파랑이다. 파랑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는 틸틸과 미틸이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통해 그토록 손에 넣기 어려운 파랑새가 저 멀리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항상 함께 있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던 고귀한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 파랑이다. 파랑은 성스럽고 고귀하며 완전한 상태를 의미한다.



    프랑스 파리의 샤르트르 대성당(Chartres Cathedral)에는 ‘샤르트르 블루’라고 부르는 176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성당에 들어서면 어둠 속에서 벽면을 가득 채운 푸른색이 빛을 발하는 장관을 만나게 된다. 뾰족한 고딕양식의 건축물에 자리 잡은 기다란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면 높은 하늘의 파란색이 떠오른다.



    소유하지 않기에 빛나는 파랑

    그러나 요즘 서울의 하늘색은 영화 속 화성의 하늘색과 비슷해 보인다. 매일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일이 일상화된 요즘 도심에서 파란색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언제나 하늘이 청명하던 시절이 그립다. 최근 부산에 가려고 탔던 비행기에서 공기 색을 확인한 적이 있다.

    50분간의 비행시간으로 부산에 도착한다는 장점이 있다지만 미리 공항에 도착해 티켓을 받고 신분증 검사에,  보안대를 통과하기 위해 겉옷을 벗고 노트북컴퓨터를 꺼내야 하는 등 번거로운 교통편이다. 그럼에도 비행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하늘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서다.

    비행기가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미니어처 같은 수많은 아파트단지와 논밭을 가르는 선들의 모양, 구불구불 곡선을 그리는 산의 형태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장면은 변화하는 공기 색이다.

    뿌연 황토색의 공기를 지나 더 높이 떠오르면 갑작스레 새파란 하늘이 나타난다. 지상의 공기와 높은 하늘의 공기가 샌드위치처럼 보인다. 공기의 속살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지상의 공기 색을 알아차리게 된다.

    훼손된 적이 없는 청명함, 그 투명한 파랑에 빨려 들어가 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와트니가 찾아 떠난 새파란 지구를 만난 기분이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무한함을 선사하는 파랑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하늘의 파란색은 사실 대기층에서 파란색을 흡수하지 않고 놓아버림으로써 드러난다. 태양광선이 질소와 산소 등 대기 입자와 부딪칠 때 빨강, 노랑, 초록 등 파장이 긴 색은 흡수되지만 파장이 짧은 파랑은 입자에 부딪혀 사방으로 퍼지면서 빛을 반사하는 것이다. 그 색을 소유하지 않아서 오히려 드러나는 원리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인간의 삶도 비슷하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이 ‘소유냐 존재냐’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두려움은 ‘가지고 있는 것을 잃는’ 데 대한 공포가 아닌가.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다음엔 하늘에 맡기는 마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파란색 빛을 비추고 기다리면 하늘이 알아서 파랑을 반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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