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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부끄러운 중첩

가면이 선사하는 자유와 씁쓸함

부끄러운 중첩

부끄러운 중첩

루카 조르다노가 그린 ‘피네우스와 그의 부하들을 돌로 변화시키는 페르세우스’(1670). [위키피디아]

유난히 수줍어하는 성향을 타고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칭찬받거나 실수를 해 주목받으면 부끄러워한다. 얼굴을 가리면 자신이 보이지 않는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거나 들고 있는 책 또는 물건, 아니면 휴대전화로 눈과 입을 가려 자신만의 공간으로 숨는다.

타조도 머리를 숨기는 습성이 있다. 큰 몸집과 긴 목을 타고난 타조는 적이 쫓아오는 위기 상황에 맞닥뜨리면 땅에 머리를 묻고 꼼짝하지 않는다. 커다란 덩치를 내놓은 채 머리만 땅속에 넣은 타조의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타조의 이러한 엉뚱한 행동은 체온을 유지하려고 땅에 머리를 대는 습성이 잘못 알려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타조의 영어 표기 ‘ostrich’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두 번째 항목에 ‘문제를 외면하려 드는 사람, 현실도피주의자’라고 나와 있는데, 이는 현실 문제를 회피하고 행동하지 않는 성향을 뜻하는 ‘타조증후군’과도 일맥상통한다.

가면으로 쌓는 또 다른 정체성

부끄러운 중첩

일본에서 고안한 ‘Libera tion Wrapper(해방 포장지)’는 여성에게 마음껏 입을 벌려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선사했다. 사진은 프레시니스 버거와 광고회사 덴쓰 도쿄가 제작한 해방 포장지 디자인(2013). [프레시니스 버거 홈페이지]

원 모습을 숨기는 욕망에 대해 얘기할 때 종종 ‘페르소나(persona)’를 떠올린다. 벵자맹 주아노의 저서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를 보면 그리스어로 가면을 뜻하는 ‘프로소폰(prosopon)’이라는 단어가 다른 이들의 눈앞에 제시되는 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비밀이 없고 감춰야 할 속내도 없는, 겉과 속의 조화를 추구한 그리스문명의 사람들에게 얼굴은 마음과 영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그러나 로마시대로 넘어오면서 얼굴의 개념이 변화한다. 로마인은 얼굴을 감추거나 속일 수 있으며 깊은 내면을 보여주지 않는 가면으로 여겼고 그때부터 페르소나, 즉 사회적 가면이라는 의미가 됐다.

저자는 페르소나라는 말이 로마시대 전 에트루리아(Etruria·고대 이탈리아 지명)어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메두사의 목을 베어 죽인 영웅 페르세우스(Perseus)의 에트루리아 이름인 ‘페르수(Phersu)’가 손에 넣은 메두사의 가면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누구든 그 눈을 보면 돌로 변하는 메두사의 머리를 손에 넣은 페르세우스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셈이었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얼굴을 이용해 적과 싸우는 장면을 그린 그림을 보자. 루카 조르다노(Luca Giordano)가 그린 그림은 안드로메다를 구출해 신부로 맞는 페르세우스의 결혼식 장면이다. 결혼식장에 들이닥친 피네우스 일당과 싸우는 페르세우스가 자루에서 메두사의 머리를 꺼내 들자 적들이 돌로 변하고 있다.

메두사의 머리는 어떤 상대도 물리칠 수 있는 막강한 무기다. 자기 자신보다 더 강한 얼굴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는 중첩은 약한 나 자신에게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줘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 중첩은 가볍게 점심을 해결하려고 들어간 햄버거 가게에도 등장해 진짜 나를 숨긴다.

빵과 패티, 치즈, 채소 등을 겹겹이 쌓은 햄버거 크기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한 입 베어 먹으려고 입을 찢어질 만큼 벌려본다. 소스가 입가에 묻어 닦아내는 동안 떨어진 양상추를 주워 담고, 비뚤어진 빵과 그 사이 내용물들을 먹기 편하게 정리하느라 바쁘다. 패스트푸드(fast food)라는 이름 그대로 분주한 점심시간이다. 매너를 지켜야 하는 자리에서 여자에게 두꺼운 햄버거는 도전하기 어려운 음식이다.

햄버거 포장지가 선사한 자유  

일본 햄버거 브랜드 프레시니스 버거(Freshness Burger)와 광고회사 덴쓰 도쿄(Dentsu Inc. Tokyo)는 여성을 위한 햄버거 포장지를 개발했다. ‘Liberation Wrapper(해방 포장지)’라고 이름 붙은 포장지를 통해 작게 오므린 입으로 조신하게 말하고 웃어야 하는 문화의 여성들에게 자유를 선물한다. 햄버거를 먹는 시간 동안 주어진 최소한의 자유다.

포장지에는 우아하게 미소 짓는 여성이 그려져 있다. 언제나 고상하고 깔끔한 얼굴로 사회적 지위를 지켜주는 포장지 인물 뒤에서 여성은 안전하게 햄버거를 즐길 수 있다. 포장지 뒤에서는 마음껏 입을 벌려도 된다. 크기가 큰 클래식 버거가 여성 사이에서 인기가 없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개발한 포장지로, 이 포장지를 도입한 후 매출이 늘었다는 결과는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하는 여성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러나 그 자유가 언제나 우아한 미소를 짓는 가면 뒤에서나 가능하다는 사실에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인간처럼 가리기를 좋아하는 동물도 없을 것이다. 태초에 금단의 열매를 먹고 수치심을 알게 된 아담과 하와가 에덴의 동산에서 쫓겨날 때 손과 나뭇잎으로 육체를 가리기 시작한 이래로 가리는 능력은 꾸준히 발달했다. 중첩은 내보이기 부끄러운 나를 가려주는 유용한 장치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이 있다.

가려진 아래의 대상은 제거된 것이 아니라 원 상태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똑 부러지게 일처리를 못 하고, 주장 한번 못하는 소심함에 지식까지 부족하며, 나누기에 인색하고, 비천한 유머감각에 인기까지 없는 작은 나 자신을 인정하기가 어려워 아닌 척하기 바쁘다. 불끈 용기를 내 메두사의 가면을 던져버리면 신기하게도 맨 얼굴의 힘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입력 2017-04-12 11:11:03

  • 신연우 아트라이터 dal_roa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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