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0

2017.03.22

최성자의 문화유산 산책

옛돌에 담긴 한국인의 숨결

서울 성북동 우리옛돌박물관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sjchoi5402@naver.com

    입력2017-03-20 10: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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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6월 13일 승무예능보유자 이애주 씨가 살풀이춤을 췄다. 장소는 일본 미에현 이치시(一志)군의 한 묘목농장. 문인석과 무인석, 동자석이 늘어선 사이로 너울거리는 하얀 천에 귀기가 서린 듯했다. 본래 조선의 옛 무덤을 지키던 석인상들이 일본 이세완(伊勢灣) 연안의 작은 도시에 모여 있었다. 거기서도 우리 옛돌은 갖가지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고요한 자세로 한국에서 온 일행을 맞이했다.

    이 문화재들을 소장한 일본 구사카 마모루(日下守) 씨는 소장품 70점 가운데 16점은 1600만 엔(약 1억6000만 원)에 팔고, 54점은 기증 형식으로 한국에 넘겨줬다. 인수자는 천신일 ‘우리옛돌박물관’ 관장. 환수식 현장에서 기증서에 서명하던 구사카 씨는 “딸을 시집보내는 것처럼 반은 슬프고 반은 기쁘다”고 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돌문화재들을 보라. 웃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16년 전 필자는 그 자리에서 분명히 봤다. 무표정하던 문인석과 무인석이 빙긋이 웃는 듯했다. 바위같이 서 있던 석인상들은 마치 조선의 석수가 불어넣은 혼을 지켜온 것처럼 보였다.

    이 환수 옛돌문화재는 현재 서울 성북동 우리옛돌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서울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2번을 타고 길상사를 지나 종점에 도착하니 돌솟대가 마중한다. 2015년 개관한 이 돌 전문 박물관의 전시품 1250점은 뽐내지 않고 자연스럽다. 천 관장은 1979년 서울 인사동 고미술 가게에 들렀다 돌문화재를 보고 관심을 가진 후 옛돌을 모으기 시작해 36년 만에 이 박물관을 개관했다. 사전 정보 없이 이곳에 가면 다들 놀란다고 한다. 성북동 주택가에 자리한 약 1만8181㎡(5500평)의 넓은 대지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사립박물관 건물 안팎에 있는 다양한 전시품 때문이다.  

    박물관 1층에는 고려 금강역사가 버티고 있고, 그 옆의 여인상 한 쌍도 마치 살아서 관람객을 맞는 것 같다. 환수유물관에 들어서면 문인석이 신하가 임금을 알현할 때 두 손으로 잡고 있는 ‘홀’을 들고 있다. 프랑스 파리 기메박물관 1층 로비, 워싱턴 스미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한국실에서도 이런 문인석이 관람객을 맞는다. 2층 동자관에는 다양한 모습을 한 동자석 63점이 있다. 종이에  소원을 적은 뒤 동자석을 선택해 소원을 빌고 그 종이를 벽에 설치된 소원의 벽에 꽂게 돼 있다. 그러면 동자석은 그 소원을 들어주는 전달자가 된다. 자수관에는 천 관장의 부인 전경자 씨가 수집한 다양한 옛 베갯모와 옛 보자기가 전시돼 있다. 3층에서는 강익중, 김환기, 이우환, 권옥연, 남관 등 근현대 화가의 명화도 감상할 수 있다.

    옛돌문화재 전시는 야외 전시관에서 절정에 이른다. 석인상이나 동물상, 돌솟대는 햇빛과 바람, 눈비 속에서도 무덤 앞이나 마을 어귀를 지키던 수호자였다. 사계절 변화하는 다양한 상황이 옛돌 전시를 더 돋보이게 한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비온 후의 옛돌 모습이다. 명암이 뚜렷해지며 돌꽃과 돌이끼가 자태를 드러낸다. 큰 키의 미륵불과 와불, 그리고 호랑이 돌조각이 나무숲, 잔디와 조화를 이뤄 더 빛난다. 우리옛돌박물관의 실내와 야외 전시 비율은 4 대 6이다.       



    이 박물관의 또 다른 특징은 2년마다 관람객을 대상으로 전시품 사진 공모전을 연다는 것이다. 일반 카메라와 휴대전화 카메라로 분야를 구분해 수상자에게는 해외 왕복 항공권을 상품으로 준다. 1년 입장 이용권은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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