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음담악담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시대의 첫차에 올라타라

음악 다큐멘터리 ‘비트의 승부사들’

  • 입력2018-11-19 11: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HBO]

    [HBO]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U2를 엮는 다큐멘터리는 많다. 스눕 독과 에미넴을 엮는 다큐멘터리 역시 많다. 애플과 비츠 일렉트로닉을 엮는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다. 그 다큐멘터리들은 각각 록, 힙합, 산업이라는 장르로 묶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한 이야기로 녹아드는 다큐멘터리는 가능할까. 

    [IMDb]

    [IMDb]

    한 치만 어긋나도 난잡하고 중구난방이 될 게 분명한 이 이야기를 놀랍도록 흡인력 있게 만들어내는 작품이 있다. 한 솥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을 원래 한 몸이던 것처럼 엮는 이 다큐멘터리는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인 ‘비트의 승부사들(The Defiant Ones)’이다.

    애플은 왜 헤드폰 회사를 거액에 인수했나

    이 다큐멘터리가 가능한 건 세계 최대 헤드폰 회사인 비츠의 설립자가 지미 아이오빈과 닥터 드레라는, 록과 힙합의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비트의 승부사들’은 그들이 음악계에서 어떻게 성장해왔고 어떤 족적을 남겼는지, 커리어의 전환점을 어떻게 넘겼는지를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그들 주변의 많은 인물이 카메라 앞에서 증언한다. 

    그 면면이 장난이 아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 보노, 패티 스미스, 스눕 독, DOC, 아이스 큐브, 트렌트 레즈너, 피 디디, 켄드릭 라마, 에미넴, 윌.아이.엠, 그웬 스테퍼니 같은 거물이 줄줄이 출연한다. 그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다큐멘터리는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약 40년에 이른다. 

    ‘비트의 승부사들’은 2014년 5월 음악산업 사상 가장 큰 거래로 꼽히는 애플의 비츠 일렉트로닉 합병으로 시작된다. 인수 금액은 30억 달러(약 3조3900억 원). 이 엄청난 거래를 두고 많은 말이 오갔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음악은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애플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며 “그게 바로 우리가 음악에 투자해온 이유이자, (비츠의) 환상적인 팀을 합류케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것으로는 30억 달러의 의미가 설명되지 않는다. 어쨌든 비츠는 ‘고작’ 헤드폰을 만드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렇게 평가했다. ‘여전히 스티브 잡스가 짜놓은 각본에 따라왔던 애플에 팀 쿡이 자신의 입김을 불어넣으려는 시도.’ 그다음이 중요하다. ‘아이오빈의 성격, 음악산업과 친분은 애플의 향후 콘텐츠 계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1년 스티브 잡스의 죽음으로 끊긴 음악산업과 연계성을 지미 아이오빈, 그리고 닥터 드레로 메우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애플은 헤드폰 회사를 산 게 아니라 지미 아이오빈과 닥터 드레라는 음악계의 거물을 30억 달러에 영입했다는 뜻이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의문이 들 것이다. 지미 아이오빈, 그리고 닥터 드레가 도대체 누구기에.

    지미 아이오빈과 닥터 드레

    지미 아이오빈 [AP=뉴시스]

    지미 아이오빈 [AP=뉴시스]

    미국 뉴욕 브루클린 출신인 지미 아이오빈은 1970년대 초반 레코드 플랜트 스튜디오의 보조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엔지니어로서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1975년 작 ‘Born To Run’이었다. 전작의 실패로 소속사로부터 퇴출 위기에 놓여 있던 스프링스틴은 엄청난 야심을 갖고 있었다. “스튜디오를 하나의 연장처럼 사용하고, 비슷한 연주를 반복하지 않겠다.” 

    그 조력자가 지미 아이오빈이었다. 마음에 드는 드럼 소리를 만들려고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스튜디오에 매달려 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능력을 키워나갔다. 첫 프로듀서를 맡은 패티 스미스의 앨범에서는 확실한 싱글을 위해 브루스 스프링스틴으로부터 ‘Because the Night’를 받아냈다. 아이오빈의 연인이던 스티비 닉스의 앨범을 위해선 톰 페티로부터 ‘Stop Draggin’ My Heart Around’를 받았다. 

    다른 이에게 좀처럼 곡을 주지 않는 당대 뮤지션들로부터 얻어낸 이 노래들은 패티 스미스와 스티비 닉스의 최대 히트곡이 됐다. 아이오빈에게는 엔지니어와 프로듀서의 재능뿐 아니라 제작자, 즉 비즈니스맨으로서 능력도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아이오빈은 점점 바빠졌다. 스튜디오에서도 콘솔 앞보다 전화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리고 1990년 그는 자신의 회사 인터스코프 레코드를 설립한다. 

    닥터 드레 [AP=뉴시스]

    닥터 드레 [AP=뉴시스]

    로스앤젤레스(LA) 근교 소도시 콤프턴 출신인 닥터 드레는 글을 깨우치기 전 음반에 붙은 레이블만 보고도 거기에 어떤 음악이 담겼는지를 알아차리고 사람들에게 틀어줄 정도였다고 한다. 힙합 초창기에 동네 나이트클럽 DJ로 데뷔한 그는 동네 친구들과 힙합 그룹을 결성했다. 이지 이, 아이스 큐브, DJ 옐라, 그리고 닥터 드레로 구성된 이 팀의 이름은 N.W.A. 그들은 ‘Fuck The Police’가 담긴 희대의 문제작이자 힙합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 ‘Straight Outta Compton’으로 데뷔한다. 

    멤버들과 불화로 닥터 드레는 팀을 떠나 새로운 레이블 데스로를 설립했고, 역시 명반 중 명반인 솔로 앨범 ‘The Chronic’을 냈다. 갱스터 힙합에 대한 음악산업계의 거부감, 닥터 드레에게 얽힌 복잡한 문제로 이 앨범을 내겠다는 곳이 없었을 때 그에게 손을 내민 이가 지미 아이오빈이었다. 아이오빈은 말했다. “‘The Chronic’을 듣자마자 이 친구가 인터스코프의 머리(head)가 될 수 있으리라는 걸 알았다.” 

    데스로는 닥터 드레의 레이블이자 인터스코프 산하 레이블이 됐다. 이 레이블은 곧 스눕 독(당시에는 스눕 도기 독), 투팍 샤커 등을 데뷔시키며 1990년대 힙합 붐을 주도한다. 인터스코프는 나인 인치 네일스, 메릴린 맨슨도 데뷔시켰다. 가장 세기말적이었으며, 가장 자극적이고 퇴폐적인 이 팀들은 그 자체로 1990년대 분위기의 청사진이나 다름없었다. 아이오빈과 드레는 각각 록과 힙합이라는 영역에서 각자의 혁명을 이끄는 동업자가 됐다.
    ‘비트의 승부사들’은 둘의 인생 역정을 교차해 다룬다. 인터스코프와 데스로를 통해 서로의 타임라인이 교차하는 순간,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음반산업이 몰락할 때 스티브 잡스와 손잡고 아이튠즈 스토어의 출범에 일조하는 순간, 그들이 비츠를 설립하고 애플과 합병하는 순간 록과 힙합과 산업은 하나가 된다. 

    장르건, 카테고리건 그런 후차적 분류가 아니라, 본질적인 주제를 꿰뚫고 들어온다. 그들은 눈치 보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시선으로 시대를 바라봤다. 막차가 아니라 첫차를 탔다. 시대를 만들었다. 성공담의 흔한 이야기지만, ‘비트의 승부사들’은 이 뻔한 이야기를 탁월한 연출과 풍부한 자료, 생동감 넘치는 인터뷰로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과거에 대한 선입견을 깨부순다. 음악에 관심이 없더라도 보면 좋을 작품이다. 장담컨대 웬만한 성공서적을 읽는 것보다 ‘비트의 승부사들’이 훨씬 직관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