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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그림, 미국 ‘반문화’에 올라타다

도메 카루코스키 감독의 ‘톰 오브 핀란드’

동성애 그림, 미국 ‘반문화’에 올라타다

[사진 제공 · 아이 엠]

[사진 제공 · 아이 엠]

핀란드 중견 감독 도메 카루코스키의 ‘톰 오브 핀란드’는 동명의 예명으로 활동했던 동성애 화가의 전기영화다. 시대는 주인공이 20대인 1940년대부터 에이즈(후천면역결핍증)로 동성애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던 1980년대까지다. 대략 40년에 걸친 삶이 전개된다. 화가의 전기영화이고, 또 주인공이 동성애자라는 점은 별로 새로울 게 없다. 단, 동성애자라는 정체성 자체가 처벌 대상이던 과거 핀란드의 완강한 사회적 제도는 특별한 조건이다(지금 핀란드에서는 동성 간 결혼이 합법화됐다). ‘톰 오브 핀란드’가 강조하는 것은 ‘어떤’ 동성애인가 하는 점이다. 

토우코 라크소넨(페카 스트랑 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 전선에 투입된 대공 포병대의 장교다. 죽음의 공포와 맞선 전선에서 삶을 통해 그는 역설적으로 강렬한 에로스를 경험한다. 라크소넨은 ‘군복’에 페티시즘을 갖고 있다. 불온하게도 나치 제복에 특히 반한다. 그리고 전쟁 때 그가 죽였던 소련 공군 조종사의 ‘가죽’ 전투복에도 큰 매력을 느낀다. 

‘제복’과 ‘가죽’, 이것은 화가 라크소넨에게 일생의 테마가 된다. 하지만 당시 핀란드는 동성애자를 적극적으로 처벌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낮에는 광고디자이너로 일하고, 밤이면 숨어서 가죽 제복을 입은 남자들을 그렸다. 그러고는 경찰의 단속이 무서워 그림들을 벽 속에 숨겨놓았다. 

라크소넨이 그림으로 묘사한 남성들은 당시 일반적인 동성애 남자와 달랐다. 과거 동성애자에 대한 이미지는 ‘여성화’ 혹은 ‘희화화’한 것이었다. 그런데 라크소넨이 그린 남성들은 근육질에 군복 또는 경찰복을 입고 있거나, 가죽점퍼 차림에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남성성’이 과장된 마초맨이다. 이런 그림들이 비밀리에 미국 출판사에 전달되고, 그곳 편집장이 ‘톰 오브 핀란드’라는 예명으로 작품집을 내면서 라크소넨은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과거 말런 브랜도가 가죽점퍼 차림에 오토바이를 타고 갱들과 돌아다니는 청춘물 ‘위험한 질주’(The Wild One·1953)가 있었지만, 그 영화에서 동성애 테마는 저 깊이 내면에 숨어 있었다. 마초맨과 동성애 테마의 연결은 미국 아방가르드 감독인 케네스 앵거의 컬트영화 ‘스콜피오 라이징’(Scorpio Rising·1963)이 촉발했다. 라크소넨의 그림은 마침 이때 미국에 도착했다. 1960년대 미국의 ‘반문화(反文化·Counterculture)’ 흐름과 만나며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라크소넨의 남자들’은 숨지 않고, 밖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록 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 같은 경우다. 

‘톰 오브 핀란드’는 라크소넨의 시도가 승리를 거둔 게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에이즈의 도전을 받았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숨어 있다고 본다. 영화 속 어느 소년이 라크소넨의 작품집을 자기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보는 장면이 많은 걸 대신 말해준다. 반문화, 곧 주류에 반하는 문화적 흐름을 통해 우리는 주류의 통념을 성찰하게 된다. 누군가는 통념을 부수고, 또 누군가는 통념의 폭을 확장할 것이다. ‘톰 오브 핀란드’ 역시 그런 영화다.




주간동아 2018.09.12 1155호 (p74~74)

  • | 영화평론가 hans42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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