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4

2018.09.05

졸기

‘미국적 가치’를 신봉하고 실천했던 매버릭

‘합리적 보수’를 상징했던 존 매케인(1936~2018)

  • 입력2018-09-04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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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의 부인인 신디 매케인. [AP=뉴시스]

    고인의 부인인 신디 매케인. [AP=뉴시스]

    매버릭(maverick)이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국내에선 그 정치적 부정성을 강조하는 ‘독불장군’이나 ‘외골수’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지만,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홀로 외로이 제 갈 길을 가는 사람을 뜻한다. 정치는 세 싸움이라 믿는 이들에게 매버릭은 ‘왕따’ 취급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위기 순간이 닥쳤을 때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 사례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다. 보수당과 자유당을 넘나들며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던 그는 동료 의원들로부터 고집 센 ‘불독’이라고 놀림 받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을 구할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8월 25일 향년 82세로 숨진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 [AP=뉴시스]

    8월 25일 향년 82세로 숨진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 [AP=뉴시스]

    8월 25일(현지시각) 향년 82세로 숨진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애리조나주)은 미국 공화당을 대표하는 매버릭 정치인이었다. 지난해 7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이 당론으로 밀던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 찬반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모습이 특히 그렇다. 당시 눈 위에 수술 자국이 선명한 상태로 표결에 참석한 그는 대체입법 없는 폐지에 반대한다는 평소 소신에 입각해 반대표를 던졌고 결국 그 1표차로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은 부결됐다. 

    매버릭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정치적 자산이 탄탄해야 하고 심지가 굳건해야 한다. 매케인은 전쟁영웅 가문 출신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미 해군 역사상 최초로 사성장군 부자(父子)가 된 집안의 장남이었다. 그 자신도 은성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전투기 조종사가 된 그는 1967년 베트남전 폭격작전을 수행하다 전투기가 격추돼 1973년 종전 때까지 5년 반에 걸쳐 전쟁포로로 생활하며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다. 그의 부친이 당시 미 태평양사령관임을 알게 된 월맹(북베트남) 측이 그의 석방을 협상용 카드로 쓰려 했지만 매케인이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후유증으로 평생 한쪽 다리를 절어야 했던 그는 1981년 해군 대령으로 예편하고 1982년 중간선거에 공화당 하원의원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4년 뒤 상원의원이 된 후 내리 6선을 했다. 



    그는 전쟁영웅이라는 칭호에 부합하고자 최선을 다한 정치인이다. 다른 공화당 의원들이 실익을 따질 때 그는 명예를 중시했고, 민주당 의원들이 협상을 내세울 때 원칙을 강조했다. 

    처음엔 외톨이였지만 국민과 동료 의원들로부터 신망을 사 3차례나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 두 번 낙마했으나 2008년엔 공화당 대선후보가 됐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선후보와 대결에서 패배했지만 “흑인 대통령을 선출한 미국인은 위대한 국민”이라고 축복했다. 그가 숨진 뒤 발표된 고별사에서도 당시 패배를 인정한 것이 “특권”이었다며 “그날 저녁 내가 느꼈던 미국의 위대함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고인의 추모행렬. [AP=뉴시스]

    고인의 추모행렬. [AP=뉴시스]

    그런데 고별사에서 미국 국민에게 절망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신신당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정적 중 오바마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9월 1일 워싱턴국립성당에서 거행될 장례식의 추도연사로 초청됐다. 하지만 올해 출간된 그의 회고록에서 “미국의 가치를 지키지 못한 인물”로 지목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겐 참석을 자제해달라는 메시지가 전달됐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공식성명 대신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메시지로 조의를 표한 백악관은 조기 게양도 딱 이틀만 하고 말았다.

    ※졸기(卒記)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마지막 평가를 뜻하는 말로 ‘조선왕조실록’에도 당대 주요 인물이 숨지면 졸기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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